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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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25. 목)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25. 04:43
오늘 예수님꼐서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유다인들에게 가장 소중했던 도시인 예루살렘의 멸망, 임신한 여자에게 가장 소중한 배 속의 아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젖먹이 아이...그 소중함을 더 이상 볼 수도, 만질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는 두려움이 닥쳐온다. 나약한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거대한 자연의 힘이 이제까지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린다는 공포가 밀려온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두려움을 온몸으로 맞이할 뿐이다.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순간일지라도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며 한번이라도 더 바라볼 수 있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이다. 이제까지의 삶이 행복했다고, 미안하다고 안아 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종말의 때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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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24. 수)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24. 04:36
언제나 자신이 참고 인내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상대가 나를 더 많이 참아주고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인내한다. 삶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 앞에서 비굴하게 견뎌 내고, 곁에 있는 가족들은 늘 마주하여야 하기에 또 서로를 견뎌 낸다.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아무 일 없는 듯 견뎌 내기도 하고 모든 것을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상대를 견뎌 내기도 한다. 분란과 분열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참기도 하고, 나보다 내가 바라보는 이가 더 행복해지게 하려고 인내하기도 한다. 생명을 얻고자 하는 인내는 자신을 위한 인내가 아닐 것이다. 자신을 위한 인내는 한계가 있지만, 사랑을 위한 인내는 한계가 없지 않을까 ? 예수님께서 그러셨고 성모님께서 그러셨다. 순교자들은 아프지 않아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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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23. 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23. 04:26
우리는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때로는 무겁고 힘겨운 십자가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십자가 때문에 행복해하고 삶의 이유를 찾기도 한다.유다인들에게 성전은 삶의 중심이었다. 종교가 그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였기에 성전 없는 삶은 상상도 못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성전을 지었고, 유다인이라면 누구나 성전을 민족의 자긍심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 성전이 무너진다고 예수님꼐서 말씀하신다. 자신들의 삶의 중심이고 자랑이며 자부심인 그 성전이 무너지면서 재난이 시작되고 또한 그 재산에서 구하여 줄 그리스도, 구원자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고 하신다. 전쟁과 반란, 큰 지진과 전염병의 표징 또한 종말의 징조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있다. 일상의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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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22. 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22. 05:14
우리는 봉헌금과 교무금을 냈던 마음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들 수 있다. 봉헌금을 낸 이유가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은 아니었나 싶기 때문이다. 교무금도 좋은 의도라기보다는 본당 신부도 교무금을 낸다. 그러니 당신들도 십일조의 원칙에 따라 교무금을 내라하는 암묵적 지시였는지도 모른다.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봉헌금이 많고 적음을 떠나 그들의 마음과 자세에 집중하신다. 오늘 복음에서 가난한 과부가 넣었던 렙톤 두 닢은 지금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1500원정도이다. 예수님께서는 과부를 보시고는 보잘 것 없지만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봉헌하는 마음, 그리고 많이 내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칭찬하신 것이다. 과부처럼 우리도 봉헌의 마음과 자세를 살펴보아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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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21. 일)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21. 06:17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 감사를 때로는 염원을 때로는 아픔과 고통을 그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십자가에 매달아 조롱하고 심판한다.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빼앗아 갔다고 여기면서 나의 생각이 다른 누군가를 선동하여 행동하게 하고는 자신을 고귀한 척 정당한 척한다 또한 우리 가운데 그 누구도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조롱하고 빈정거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예수님을 조롱하고 심판한다. 약하다는 이유로, 나보다 잘못을 한 것 같다는 이유로, 내것을 빼앗아 갔다는 이유로, 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십자가에 매달아 빈정거리며 조롱하고 못 박아 죽인다.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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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20. 토)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20. 02:48
텔레비전의 토론이나 청문회에서 질문을 보면 정말 궁금해서 질문을 하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답은 정해져 있고 질문에 답하는 사람들을 궁지에 몰기 위해 질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아가 상대방 자체를 판단하고 규정지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을 비판하고 잘못된 것으로 몰아간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질문을 받는다.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고 있는 그들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질문을 통해서 그분을 고발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런 그들에게도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의미와 하느님의 구원에 대하여 설명해 주신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가두사이들은 그들의 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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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19. 금)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19. 04:33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참 사랑을 실천하는 진리의 말씀인 것 같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분노를 하셨다. 성전에서 물건을 팔고 있는 사람들을 보시고 분노하시며, 그들의 탐욕과 잘못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날마다 하느님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시며 그들이 성전 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마침내는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외면당하시기까지 그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시면서도 그들 또한 포기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싸울 수 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 잘못 때문에 미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싸움과 다툼, 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만을 위해서 다투고 싸웠지만 예수님꼐서는 하느님을 위하여 그리고 싸우고 있는 상대를 위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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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 11. 18. 목)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11. 18. 04:39
눈물의 의미는 감동과 공감의 있어 나올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공감해 주지 못할 때 그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억울해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오늘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흘리신 예수님의 눈물은 어떤 의미일까.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하시며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엿보인다. 예수님의 눈에 보이는 뻔한 결과를 그들이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억울함도 있으셨을 것 같다. 당신께서 그들을 위해서 그렇게 많은 말씀과 사랑을 베푸셨지만 그들은 변하지도 달라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안타까움은 또한 그들이 겪을 아픔에 대한 공감이다. 예수님꼐서는 제자들이 혼란에 빠져 얼마나 힘들어할지 걱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