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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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기도 한 힘들고 고된 나무꾼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4. 3. 03:39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취사와 난방을 위한 연료가 필요하다. 옛날에는 나무뿐이었다. 나무꾼은 삼국시대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직업이다. 고려시대에는 전업 나무꾼이 없고 어린이나 젊은이가 틈나는 대로 도성 밖의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해 왔다. 조선시대에는 도성과 그 주변 4km까지 벌목을 금지했다. 새벽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니 생업이 따로 있는 사람은 할 수가 없다. 도성 사람들은 나무를 시장에서 사다 쓸 수 밖에 없었고 나무꾼은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 도성 근처가 아니라고 아무 데서나 나무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곳곳이 국유림이다. 왕릉의 나무라도 베었다가는 사형이다. 사대부의 선산은 양반과 노비가 직접 순찰을 하여 나무꾼을 발견하면 도끼를 빼앗고 했다. 나무꾼은 깊은 산속으로 내몰렸다 인적 드문 산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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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 상인들의 조직된 힘인 보부상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3. 27. 03:42
새우젓 사려 조개젓 사려 초봄에 담은 쌀새우는 세하젓이요, 이월 오사리는 오젓이요, 오뉴월에 담은 젓은 육젓이요. 갈에 담은 것은 추젓이요, 겨울 산새우는 동백젓이요. 조선 시대에 이러저리 떠돌며 물건을 팔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보부상이다. 보부상은 봇짐장수 보상과 등짐장수 부상을 합친 말이다. 보상은 비단, 금은으로 만든 세공품, 필목, 피혁제품, 나무 제품, 토기 등 비교적 저렴하고 부피가 큰 물건을 지게에 지고 다녔다. 도로가 발달하지 않아 상품의 유통이 어렵던 시대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고 오일장이 생겨난 뒤로는 장날로 맞추어 순회하는 장돌뱅이가 되었다. 매매 알선과 금융, 숙박업 등을 하던 객주에 소속되어 일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농공상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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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볏집으로 만든 짚신은 고무혁명으로 변했다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3. 20. 03:22
토정 이지함이 고을 사또가 되자 큰 집을 지어서 빌어먹는 백성을 모여 살게 하고 수공업을 가르쳤다. 가장 손재주가 없는 사람은 볏집을 주고 짚신을 삼게 했다. 하루에 열 켤레를 만들어 팔아 하루 양식을 마련하고 남는 것으로는 옷을 지어 주니 몇 달 만에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졌다 - 정약용 -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이지함이 포천 현감을 지낼 적 일이다. 먹고살 길 없는 백성들을 한집에 모아 놓고 기술을 가르쳤다.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짚신 삼기였다. 땅이 없고 농사도 못 짓고, 밑천이 없어 장사도 못 하고, 특별한 기술도 없다면 짚신 삼기가 제격이다. 별다른 손재주가 필요없는 단순 반복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루 열 켤레만 만들면 먹고살기 충분했다. 정약용은 옥바라지할 사람이 없는 죄수도 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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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에 주로 이용된 전인과 궁궐에서 활약한 글월비자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3. 13. 03:21
몇 달 소식이 막혀 늘 궁금했으나 인편을 구할 길이 없고 전팽도 보내기 어려워 내내 걱정만 했다. 어제 유산에 도착하여 갑자기 네가 쓴 편지를 보니 기쁘기 그지없었다 - 조병덕 편지중 - 조선시대에 편지는 멀리 떨어진 이와 소식을 주고받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우체국이 없던 당시 편지는 인편으로 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오가는 사람에게 편지를 부탁하는 방식이었다. 인편이 있어도 거리가 멀면 언제 도착할지 기약할 수 없었다. 충청도 예산에 살던 예안 이씨가 제주도에 유배 간 남편 추사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7개월이 지나서야 도착했다. 인편과 달리 품삯을 받고 일정에 맞게 편지를 전달하는 전문 배달꾼도 있었다. 이들은 전인, 전족, 전팽이라 불렀다. 전인 품삯을 받고 편지를 수취인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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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때 책쾌 100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책쾌는 누구인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3. 6. 03:06
합강과 같은 판본의 책이라면 경사와 제자서, 잡기, 소설을 따지지 말고 한 책이든 열 책이든 백 책이든 구해만 주시오 - 유만주 - 이덕무는 생활이 궁핍해지자 맹자 한질을 200전에 팔아 처자식을 먹였다. 그 소식을 들은 유득공은 춘추좌씨전으로 술을 사서 이덕무와 함께 마시며 서로 처지를 위로했다. 서점이 없는 시절 책은 책쾌를 통해 거래됐다. 책쾌는 책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중개인으로 서쾌, 책거간꾼으로도 불렸다. 이덕무처럼 가난하거나 권세를 잃어 망해 가는 집안에서 흘러나온 책을 시세의 반값에 사들였다가 제값에 되팔아 이익을 보았다. 종이가 귀해 편지를 빈 공간 없이 쓰던 상황이었으니 책은 말할 나위 없다. 분량이 적어 단권으로 엮인 대학이나 중용도 품질이 좋은 옷감인 상면포 서너 필을 주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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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유행을 이끈 출판 기획자인 세책점주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2. 27. 03:20
쾌가에서 깨끗이 베께 쓴 소설을 빌려주는 값을 받아 이익으로 삼았다. 지각이 부족한 부녀자가 비녀와 팔찌를 팔거나 빚을 내면서까지 다투어 빌려 그것으로 긴긴 하루를 보냈다 - 체제공 - 17세기 후반은 상업이 크게 활기를 띠며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이 거래된 시기다. 소설책 역시 사고팔았다. 소설책을 전문으로 베껴 쓰는 필사업자가 나타났고 대여료를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이 서울 곳곳에 들어섰다. 도성 안에만 열다섯 곳이 성업했다. 세책점주는 책을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 세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책과 목록을 들고 외판하는 책쾌와 달리 세책점주는 깨끗이 필사한 소설책을 갖춰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독자를 매료시킬 작품을 골라 구비해야 했으므로 서책점주는 작품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과 유행을 읽는 감각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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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합 운수 사업가인 세미꾼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2. 20. 03:22
세마 세필을 내었으니 돈이 얼마나 들었겠니 ? 노자와 함께 열 냥이나 들되 집에 돈이 턱없이 모자라 근이에게 돈을 빌렸단다 - 김성일파 종택 한글 사찰 -1847년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세마란 빌리는 말을 가리킨다. 명문 종가에서도 말을 빌리는데 돈이 모자라 근이라는 친척의 신세를 지었다는 것이다. 당시 말은 노비보다 더 비샀다. 노비 한명을 면포 150필 정도에 사고팔았는데 말은 그 세배에 달하는 최대 500필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말을 먹이고 관리하는 비용도 들기 때문에 말을 소유하려면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래서 말이 필요한 이들에게 빌려주는 서비스가 생겨났다. 이들을 세마꾼이라고 하였다. 지금의 렌터카로 조선판 종합 운수 사업가라고 하겠다 왕실 기록에는 궁녀들이 궐 밖으로 나가거나 물건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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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물류 유통의 중심으로 車夫에 대해서 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2. 15. 17:45
용산의 한 차부가 도성 안으로 짐을 운반하고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죄수가 형장으로 끌려갈때는 용산 차부가 수레로 실어 가는 것이 상례였다 - 구순훈 -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물길을 제외하면 원거리 물류 유통을 위한 도로 시설이 매우 열악해서 우마차 사용이 원활하지 못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우마차를 수단으로 하는 운송업은 도시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여기에 종사하는 운송업자를 차부라 했다 조선 초기 문헌에 자주 나오는데 용산지역에는 일찌감치 많은 차부들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예종실록에는 용산 차부들이 살인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구수훈이 지은 이순록에는 용산 차부들이 전문적으로 사형수와 그 시신을 이송한 것으로 소개했다.소가 끄는 수레로 사형수를 형장까지 옮기는 사극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