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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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희 전문가였던 助房꾼은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9. 26. 05:55
한양의 기생 중에 누가 가장 유명하지 ? 소아라고 한다. 그녀의 조방꾼은 누구냐 ? 최박만이라고 하지 - 박지원 - 조방은 기생의 일정과 수입을 관리하는 직업이다. 춘향전과 배비장전 등의 고전소설과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기생의 이미지 때문에 기생 하면 으레 접대부를 떠올리지만 이들은 관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했고 다양한 직군에서 활동했다. 각종 국가 행사에 동원되어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우는 것 역시 기생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따라서 국가의 소유물인 기생이 사사로이 일반 남성을 접대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수요가 있는 곳에 반드시 공급이 따른다. 연산군 시대에 이미 사사로운 욕심을 부려 기생을 차지한 기부(기둥서방)의 명단인 기부안이 작성되었다. 여기에 이름이 올라간 모든 사람은 처벌했다. 특히 가장 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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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과거에 합격시켜 드리는 거벽은 어떤 역할을 했는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9. 19. 05:55
유광억은 경남 합천군 사람이다. 시를 대강 할 줄 알았으면 과체를 잘한다고 남쪽 지방에서 소문이 났으나 집이 가난하고 신분도 미천했다. 먼 시골 풍속에 과거 글을 팔아 생계를 삼는 자가 많았는데 유광억 또한 그것으로 이득을 보았다 - 이옥 (유광억전) - 조선은 국가를 운영하는 관리를 시험으로 뽑았다. 그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인가 하겠지만 고위 공직자들을 시험이라는 객관적 평가로 선발한 나라는 중국, 한국, 베트남뿐이다. 정치권력이 세습된 귀족 사회에 비하면 합리적이고 진일보한 사회임에 틀림없다. 귀족사회인 신라시대의 입장에서는 고려와 조선을 보면 참으로 놀라운 세상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시험이 공정했을까 ? 성종실록과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따르면 과거시험장에 대놓고 책을 갖고 들어갖고 들어갔다 하니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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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맞아야 산다는 매품팔이는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9. 13. 05:23
이때 본읍 김좌수가 흥부를 불러 하는 말이 돈 서른 냥을 줄 것이니 내 대신 감영에 가서 매를 맞고 오라 흥부 생각하되 서른 냥을 받아 열 냥어치 양식 사고 닷 냥어치 반찬 사고 닷 냥어치 나무 사고 열 냥이 남거든 매 맞고 와서 몸을 조섭하리라 - 흥부전 - 흥부는 곤장을 맞아 주면 서른 냥을 주겠다고 제안받는다. 몇 대를 맞는 조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곤장의 최대 한도인 100대는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전까지 흥부가 하던 일을 말 편차 박기,(5푼) 분뇨 수거,(2푼) 빗자루 만들기 (1푼) 따위였다. 100푼이 한냥이니 서른 냥을 벌려면 말 편자 600개를 박거나 화장실 1500곳을 청소하거나 빗자루 3000여개를 만들어야 한다. 당시 일용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 20푼 정도였다. 서른 냥이면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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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저잣거리의 소매치기인 표낭도는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9. 7. 05:51
소매치기는 남의 자루나 전대 속에 무엇이 든 것 같으면 예리한 칼로 째어 빼 간다. 소매치기를 당한 줄 알고 쫓아가면 식혜 파는 골목으로 요리조리 달아난다...거의 따라가 잡을라치며 대광주리를 짊어진 놈이 불쑥 광주리 사려 !하고 튀어나와 길을 막아 버리니 더 쫓지 못하고 만다 - 이옥 - 조선시대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소매치기가 활개를 쳤다. 재빨리 주머니 속의 물건을 훔치는 이들을 빠를 표 자를 써서 표낭자 혹은 표낭도라 불렀다 이홍전에는 간사한 속임수를 쓰는 사람의 하나로 표낭자가 등장한다. 이글에 등장하는 표낭자는 2인 1조로 활동했다. 1명이 시장에서 자루나 전대를 칼로 째어 물건을 훔쳐 달아나고 다른 한명은 광주리장수로 위장하여 쫓아오는 사람을 막았다. 이옥이 지은 에서는 고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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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無에서 시간을 만들어내는 시계 제작자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8. 17. 06:00
자명종이 처음 들어왔을 때 동래 사람들이 왜인에게 태엽 감는 법을 배워 서울에 전했다. 그러나 자세하지 않아 시계가 있어도 쓸 줄 몰랐다...내 숙부 이민철이 조용한 곳에 자명종을 들고 가서 시계 축 도는 것을 응시하고는 나사를 모두 뽑아 분해했다. 보던 이들이 모두 경악했으나 이내 조립해 이전처럼 완성했다 - 이이명 1631년 정두원은 명나라에 갔다가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게스를 만났다. 정두언은 그를 통해 서양 화포, 자명종, 망원경, 서양 과학서를 사 왔다. 인조는 서양화포를 구입한 공을 기려 정두언에게 상을 내리려 했으나 조정 신료는 반대했다. 구입한 물건은 쓸모없는 게 많고 자명종은 예쁜 쓰레기라고 하였다 자명종은 서양 과학기술의 정수였으나 조선에서는 골동품처럼 집안 한구석을 장식하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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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종이를 만드는 사람인 지장이 있었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8. 12. 05:01
중국에서는 종이를 금처럼 귀하게 여겨 한 조각도 땅에 버리는 것을 볼 수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종이를 흙처럼 하찮게 쓰니 그만큼 많이 생산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윤원 조선사람들은 종이와 함께 살아가고 세상을 마쳤다. 책과 편지는 물론이고 벽지, 장판, 창호지에 종이로 만든 옷과 갑옷을 비롯한 다양한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쓰이지 않는 데가 없다 초상이 나면 종이로 부조하는 풍습도 있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한 필수품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종이는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아 조공품이나 뇌물도 활용되었다. 종이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태종은 1415년 조지소를 설치했고 세조는 1446년 조지서로 개편했다. 이곳에는 종이 제작을 담당하는 지장이 배속되었는데 서울에만 81명, 지방 221개 군현에 692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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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문집 40억 추정, 여기에 글씨 새기는 사람을 각수라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8. 3. 05:04
가야산 늙은 각수승 묘순은 / 재주가 뛰어나지만 성품은 순박하다네 / 글씨 새기는 것은 이번 생의 업이고 / 스님 노릇은 허깨비로다 - 이수광 고려시대 발명된 금속활자는 조선에 들어서도 여러 차례 주조되며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금속활자는 한번에 10만자 이상을 주조해야 했으므로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커서 나라에서 반포하는 책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었다. 민간이나 사찰에서는 여전히 글자를 새겨 찍어내는 전통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이때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을 刻手라고 한다. 각자장, 각공, 각원으로도 불렀다. 옥이나 비석 등에 글씨나 문양을 새기는 사람도 각수라고 부른다 앞의 시는 조선 중기의 문인 이수광이 가야산 용봉사의 승려 각수 묘순에게 준 것이다. 당신의 이번 생은 스님이 아니라 각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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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천하제일의 붓 제작자 필공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7. 27. 06:05
경상도에 붓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두세 자루를 얻어 썼는데 국내에서 으뜸일 뿐만 아니라 천하제일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김정희 조선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는 그가 천하제일이라고 인정한 붓은 중국 붓도 아니고 일본 붓도 아닌 경상도의 이름없는 필공이 만든 붓이다. 필공은 붓 만드는 사람으로 필장이라고도 하다. 경상도 필공이 모처럼 서울에 올라오자 추사는 역시 명필로 이름난 친구 심희순에게 서둘러 편지를 보냈다. 이 기회를 놓지지 말고 붓을 만들라는 당부였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추사는 이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추사는 조선의 붓을 최고로 쳤다 중국사람도 조선의 붓을 최고로 쳤다. 명나라 사람 주지번이 조선에 왔다가 허균에게 중국제 붓 다섯 자루를 주었다. 허균이 써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