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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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동산 중개업자인 집주름에서 PROTECH로 진화했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2. 6. 03:06
특별히 집주름이 나타나 생업을 꾸리니 큰 집인지 개딱지인지를 속으로 따진다. 천냥을 매매하고 백 냥을 값으로 받으니 동쪽 집 사람에게 서쪽 집을 가리킨다. -성서전도시 - 조선시대에는 부동산 중개업자를 집주름이라 불렀다. 이들이 직업으로 자리를 잡은 시기는 18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1753년 영조실록 기사에는 부마도위의 후손 윤성동이 집주름으로 전락한 사실이 소개됐는데 그를 무뢰배라고 표현할 정도로 집주름의 이미지는 부정적이었다. 박지원 역시 마장전에서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으로 말 거간꾼과 집주름을 거론했다. 18세기 후반 들어 집주름은 매우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한양의 부유층이 몰려 있는 청계천 북쪽 일대 북촌은 물론 몰락한 양반들과 선비들이 모여 사는 남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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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에게 소금을 유통하여 판매했던 鹽商은 어떠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1. 30. 03:42
염전에 가서 소금꾼들과 약정을 하되 서른 냥을 염전에 맡겨 3년동안 소금을 받아다가 장사를 하고 3년 후에는 맡겨 놓은 돈을 찾아가지 않겠다고 하면 소금꾼들이 좋아한다. 소금을 지고 백리 안쪽을 두루 돌아다니되, 값을 당장 받아 낼 일이 아니라 외상을 남겨 두어 인정을 맺고 단골로 만들며 반드시 이득이 많을 것이다 - 동패낙송 -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쌀가게와 더불어 소금가게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산업화 시대에 트럭에 소금을 싣고 돌아다니며 판매하고 김장철이 되어 많은 양의 소금이 필요하면 직접 배달해 주었다. 광개토 대왕이 연나라와의 전쟁에서 소금 획득을 언급하고 탐라가 소금을 얻기 위해 남해안을 괴롭힐 만큼 한반도에서 소금은 예로부터 생활필수품이자 귀한 상품이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한반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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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매사냥꾼인 鷹師(응사)에 대해서 살펴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1. 16. 03:30
매사냥꾼은 팔뚝에 매를 얹고 산을 오르고 / 몰이꾼은 개를 몰고 숲을 누비네 / 꿩이 깍깍 울며 산모퉁이로 날아가니 / 매가 회오리바람처럼 잽싸게 날아오네 - 정약용 - 옛날에는 고기가 귀했다 소는 농사에 필요한 데다 법으로 금지해 먹을 수 없었다. 돼지와 닭을 먹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댈야 사육이 가능한 형편이 아니었다. 따라서 고기를 구하려면 사냥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멧돼지와 사슴을 찾기도 어렵고 잡기도 어렵다. 그나마 흔한 것이 꿩인데 역시 잡기가 쉽지 않다. 그대서 매를 길들여 꿩을 잡았다. 이렇게 매를 이용하여 사냥하는 매사냥꾼을 응사라고 한다. 매사냥은 중앙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고구려 벽화에 매사냥 그림이 있고 백제의 아신왕과 신라의 진평왕은 매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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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미래를 보는 눈인 判手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1. 9. 03:37
맹인은 사농공상에 끼지 못해 생계를 꾸릴 방법이 없으나 주역을 배워 점을 치고 겸해서 경문을 외워 살아간다...저잣거리를 다니며 노래하듯 문수라고 외친다. 운수를 물어보라는 그 소리가 마치 노랫소리 같아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도 맹인이 지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규경 - 심청전의 심학규는 맹인으로 변변한 직업도 없이 심청이가 동냥하여 온 식량으로 근근히 살아갔다. 일부 맹인은 악공이나 점술가를 하도록 국가에서 장려했다. 조선시대에는 시각을 잃은 맹인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여겼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맹인은 관현맹으로 삼았다. 관현맹은 관악기와 현악기를 다루는 맹인이다. 관현맹은 나라에 소속된 전문 악공으로 큰 행사 때 연주했다. 암기력과 점술에 뛰어난 맹인은 관상감 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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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집안을 돌보는 집사 역할을 했던 傔人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1. 2. 03:40
노비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면서 집안일을 맡아보는 자를 겸인이라 한다 - 화양문견록(최신) - 집사하면 항상 검은 턱시도 차림을 하고 있는 노신사가 떠오른다. 영국 귀족 가문에나 있을 법한 존재지만 주인을 대신해 집안일을 관리하는 직업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겸인도 그중 하나다. 겸인은 청지기 또는 소사 , 통인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중인신분이므로 노비가 하는 허드렛일은 하지 않았지만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주인이 먹고 입을 것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관혼상제를 비롯한 집안 행사를 거들었다. 사무보조와 문서작성에도 능숙했다. 집안 사정을 꿰고 있으며 바깥의 정보를 입수하는데도 빨랐다. 역모가 발각되면 관련자들의 겸인부터 잡아들였다. 그들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공 집안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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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성의 변호사인 외지부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26. 03:15
외지부라 불리는 자들은 항상 관아 근처에 있다가 원고나 피고를 몰래 사주한다. 또 이들은 송사를 백성 대신 진행하며 시시비비를 어지럽게 만들어 관리를 현혹하고 판결을 어렵게 한다. 해당 관부에 명하시어 조사해 처벌하소서 ! - 성종실록(1471) - 조선은 소송 없는 나라를 꿈꾸었다. 왕이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어울한 백성이 한명도 없는 세상을 꿈꿨던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억울함을 풀려는 소송이 넘쳤다. 조선시대 소장과 판결을 정리한 민장치부책에 따르면 양반은 물론이고 노비나 여성도 거리낌 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옥에 갇힌 죄수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법을 모르고 글을 몰라도 소송은 가능했다. 민간에서 활약한 법률 전문가 외지부가 있었다. 외지부라는 명칭은 고려 도관지부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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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학 수사대인 오작인에 대해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19. 03:53
관원이 율관, 의관과 함께 한성부 서리, 하례, 오작인 등을 거르니고 시체를 안치해 둔 곳에 도착하여 먼저 진술을 받는다. 그다음에 검시를 실시한다. 날이 저물었을 경우 이튿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검시한다 - 심리록 - 조선시대에 살인이 일어나면 고을 사또가 검시관을 맡았다. 검시는 변사체를 만지는 험한 일인데다 사체의 상흔을 판돈하는 법의학 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을 담당하는 전문가가 오작인이라고 했다. 오작인은 법의학서에 근거해 사인을 찾았다. 대표적인 법의학서는 무원록이었다. 무원록은 중국 원나라떄 책이지만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정 증보를 거듭되었다. 세종때 신주 무원록 영정조때 증수 무원록으로 거듭나며 검시 지침서로 자리매김했다. 19세기에 이르면 검시와 문서작성 방법을 정리한 검고라는 책을 간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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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하게 잘 쓰여진 글씨가 필요한 고려시대부터 활동했던 書手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12. 03:34
서수에 대해서는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는 고려시대 문하부 이속에 서수의 직임을 두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고려시대 관직 중에 서인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 중 하나로 언급했다. 당초 서수는 관에 속한 낮은 벼슬에서 출발했다. 영조실록에 이제동이라는 인물이 신씨 집안에서 10년 넘게 서수 노릇을 했다는 내용이 보이고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도 정현좌가 심노숭 형제의 모든 과거 시험 답안지와 원고를 필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을 전후에서 서수들은 유려한 글씨를 무기로 민간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을 형성해 갔다 서수가 필요한 분야는 여러곳이 있다. 우선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 서수가 없어서 조선의 시를 빨리 필사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서수가 필사하는 자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