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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천하제일의 붓 제작자 필공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7. 27. 06:05

    경상도에 붓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몇 해 전 두세 자루를 얻어 썼는데 국내에서 으뜸일 뿐만 아니라 천하제일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 김정희 <완당전집> 조선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는 그가 천하제일이라고 인정한 붓은 중국 붓도 아니고 일본 붓도 아닌 경상도의 이름없는 필공이 만든 붓이다. 필공은 붓 만드는 사람으로 필장이라고도 하다. 경상도 필공이 모처럼 서울에 올라오자 추사는 역시 명필로 이름난 친구 심희순에게 서둘러 편지를 보냈다. 이 기회를 놓지지 말고 붓을 만들라는 당부였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추사는 이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추사는 조선의 붓을 최고로 쳤다

     

    중국사람도 조선의 붓을 최고로 쳤다. 명나라 사람 주지번이 조선에 왔다가 허균에게 중국제 붓 다섯 자루를 주었다. 허균이 써 보니 전부 엉망이었다. 토끼털 붓은너무 뻣뻣하고 염소털 붓은 너무 부드러웠다. 허균이 자기가 쓰던 붓을 주지번에 주었다. 주지번은 감탄했다. 이것이 천하제일의 붓이다. 조선 붓의 매력에 빠진 주지번은 수천 자루를 사 가지고 돌아갔다. 추가가 경상도의 필장에서 만들게 한 붓도, 허균이 주지번에게 준 붓도 모두 족제비 털로 만든 황모필이다, 붓은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청서필(다람쥐털), 양호필(염소털), 토모필(토끼털), 장액필(노루 겨드랑이 털), 구모필(개털) 서수필(쥐 수염), 초미필(담비 꼬리)등이다. 그렇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황모털을 따라올 붓은 없다

     

    황모필은 명나라 조정의 백서 명회전에 조선의 조공품으로 등재된 명품이었다. 조선의 특산물이지만 재료는 대부분 수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족제비가 잡히긴 하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실록에 따르면 1622년 조정에서 한달에 사용하는 황모필이 무려 3천자루였다. 조공품과 하사품 따위를 모두 합친 수량으로 보인다. 조선은 중국에서 수입한 족제비 털로 붓을 만들어 다시 수출했다. 일종의 가공 무역인 셈이다. 수입이 끊기면 염소 털로 대체했다

     

    붓 제작은 공조에 소속된 필공이 담당했다. 필공의 일은 고된 노역이었다. 할당량을 채우기도 만만치 않은데 추가로 요구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아전들은 붓을 뇌물로 요구했다. 열 자루를 진상하면 100자루를 제 몫으로 챙긴다. 양반들은 필공을 종 부리듯 했다. 삯을 주지 않고 재료만 주면서 붓을 만들게 했다. 무리한 요구를 견디지 못한 필공은 목을 매기도 하고 손가락을 자르기도 했다. 붓을 바치라고 독촉받던 필공이 대궐 안에서 제목을 찌르는 사건도 일어났다. 기술이 있다고 대접받기는커녕 그 기술 때문에 갈취의 표적이 되었다

     

    황모필의 개당 가격이 5전인데 납품가는 3전에 불과했다. 살기 위해서는 속임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개털은 속에 넣고 겉만 족제비 털로 살짝 덮은 가짜 황모필이 범람했다. 선조 임금이 진상받은 황모털을 해체했더니 속에 싸구려 털을 넣은 가짜였다. 노발대발 한 선조는 필공을 처벌했다 좋은 붓을 만들려면 여러 종류의 털을 섞어 넣어야 한다. 성호사설에 따르면 억센 털로 심지를 만들고 부드러운 털로 감싼 다음 다시 조금 억센 털로 겉을 둘러싸야 좋은 붓이 된다고 한다. 털 블랜딩이라고 하겠다. 여기에 장인의 손길이 필요하다

     

    붓은 서예의 생명이다. 서화 평론가는 붓이 가장 중요하고 종이가 다음, 먹은 또 그다음이라고 했다. 그림과 글씨에 모두 뛰어났던 표암 강세황이 붓 만드는 법을 자세히 설명했다. 먼저 털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털 끝에 밀랍을 발라서 붙인다. 이것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 둘둘 만 다음 대롱에 꽂고 아교를 칠하여 고정한다. 중국 붓은 실로 묶으므로 튼튼하지 않고 일본 붓은 종이로 묶는데 너무 부드러워 큰 글씨를 쓰는 데는 맞지 않으니 우리나라 붓이 제일이라고 했다

     

    대개의 장인이 그렇듯이 필공 역시 부역을 견디지 못하고 민간으로 흩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전국 각지에서 필공이 활동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재료를 준비해 놓고 필공을 집으로 데려와 붓을 만들게 했다. 떠돌이 신세였지만 비로서 기술자 대접을 받았다. 사람들은 외제 만년필이 명품인 줄은 알아도 조선의 붓이 천하제일의 명품이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현재 시도 지정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필공은 더러 있지만 국가 무형 문화재로 지정된 필공은 전무한 상황이다. 천하제일의 붓을 만들던 조선 필공의 명맥은 끊어지고 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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