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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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삼 팔러 청나라로 간 통상외교관인 역관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5. 03:40
저 역관들은 한갓 자기네 목전의 이익만 탐하고 국가의 장구한 계책은 알지 못하여 수십 년 이래 밤낮 오직 중국돈 당전의 통용을 소원하고 있다 이는 그야말로 언발에 오줌 누기와 다를 바 없다 - 박지원 - 조선은 정기적으로 청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사행을 통해 외교를 맺었다. 한번에 보통 300명 정도의 인원이 동원되어 의주에서 압록강을 넘어 요동을 거쳐 북경에 이르는 먼 길을 다녀왔다. 그중에서 역관은 사신을 보좌하며 통역을 비롯해 현지 관리와 접촉하는 다양한 실무를 맡았다. 문제는 그들에게 정기적인 급료나 먼 길을 오가는 데 필요한 경비가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에서는 한 사람이 짊어지고 다닐 만한 분량인 인삼 8자루(80근)를 거래할 권리를 부여했는데 이것이 팔포제의 시작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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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수학자이자 회계사인 算員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1. 28. 03:58
둥근땅의 둘레가 365와 1/4척이다. 크고 작은 개미 두 마리가 나란히 출발해서 이 땅의 둘레를 돈다. 작은 개미는 하루에 1자, 큰 개미는 하루에 13과 7/19자를 이동하며 두 마리 개미는 며칠만에 만나겠는가 - 흥정하 - 조선은 건국 초 조세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토지를 새롭게 측량했다. 여기에 각종 면적 계산법과 단위 환산에 뛰어난 산학 즉 수학 전문가가 동원되었다. 산학을 토대로 조세를 포함해 국가 회계와 측량업무를 담당했던 전문가를 산원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국가 재정과 회계는 호조에서 담당했다. 산원은 호조에 배속되어 복잡한 계산을 도맡았다. 둘레가 곡선인 논밭 면적을 계산하고 거기서 나오는 잡곡을 쌀로 환산한 뒤 다시 면포로 계산하는일, 군량을 고려해 징병할 군인 수를 산정하는 일, 궁궐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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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돗자리를 짜는 노인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1. 21. 04:07
시골 선비는 젊어서 과거 공부를 하다가 합격하지 못하면 음풍농월을 일삼고 조금 나이가 들면 돗자리를 짜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 - 김낙행 - 우리나라 직장인의 종착지가 모두 치킨집으로 귀결되는 것처럼 조선시대 선비의 종착지는 짚신 삼기 아니면 돗자리 짜기였다. 밑천도 기술도 없고 조금만 익히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사짓는 백성은 물론 사찰의 승려도 감옥의 죄수도 모두 돗자리를 짜서 생계를 보탰다. 양양 낙산사의 승려들은 모두 돗자리를 짜서 살림이 제법 넉넉했다고 한다 정승 이원익이 일흔 가까운 나이로 유배되었을 때도 직접 돗자리를 짜서 먹고 살았다. 소일거리로도 부업으로도 제격이었다. 우리나라 돗자리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했다. 골풀로 만든 용수석, 등나무 줄기로 만든 등석이 고려 특산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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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고달픈 입주 가정 교사인 숙사는 정승자제에게 무시당했다고 하는데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1. 14. 03:31
백년 사이에 풍속이 갈수록 쇠퇴하여 꼭 스승을 집으로 데려와 먹여 주면서 자제를 가르치게 한다. 자제들은 평소 교만한 데다 먹여주는 권세를 스승을 대한다. 스승은 권위를 세울 수가 없어 꾸짖지도 못하고 회초리를 들지도 못하며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 성해응 (연경재전집) -입주 가정교사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였다. 조선시대 공부밖에 할 수 없으면 훈장 노릇을 하던지 입주 가정 교사로 남의 집에 얹혀 살며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이를 숙사라 하였다. 숙사 노릇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선비가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고 선택하는 직업이었다. 숙사의 목표는 오직 하나 학생이 글을 깨우쳐 과거에 합격하는 것이다. 학생이 과거에 합격하면 숙사의 인연은 끝이다. 숙사는 새로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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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화폐 제작자인 도주자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0. 31. 03:51
남몰래 돈을 주조하다가 적발된 자는 대적으로 처단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이란 본시 큰 이권이 있는 것이라 아무리 엄하게 금지하더라도 위조를 막기 어렵다. 요사이 듣자 하니 화폐를 위조하다가 발각되면 직접 만든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공범으로 도와준 사람은 유배에 그치기 때문에 위조화폐를 도와준 자는 죽음을 모면하고 있다 - 비변사 등록 - 임진왜란 이후부터 동전의 유통을 위한 지속적 노력으로 1678년에 상평통보의 발행과 유통 체계가 완성되었다. 그 결과 동전의 유통 범위가 상인이나 일부 부유층을 넘어 일반 백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8세기 초에 이르면 통화량이 급증하고 18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전면적인 화폐 경제 생활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전 제작에 민간이 합법적으로 관여하다 보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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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욕망을 먹고 사는 사기꾼인 편사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0. 24. 04:29
세상에 이러한 인간들이 있을지 오래다. 간교함이 날로 심해지고 사기가 날로 들끓고 있다. 굶어서 죽은 시체를 업고서 밤에 남의 집 문을 열어젖히고 주인을 급히 부른다. 성질을 돋게 하여 서로 주먹질을 하는 데까지 이른 뒤에 비로서 큰 소리로 주인이 내 친구를 죽였다. 관가에 고발하겠다라고 한다. 주인이 영문도 모르고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서야 일이 겨우 가라앉게 된다 - 이옥 - 유익하고 졸렬한 사람이 억센 사기꾼에게 놀아나는 세상은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역사에 기록된 사기건들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에서 가격을 속이고 짝퉁을 진짜라 속이고 없는 죄를 만들거나 자기 죄를 남에게 덮어씌우고 각종 비용이나 투자금을 가로채는 등의 유형이 가장 일반적이다 조선시대에 사기꾼들을 편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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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진품 같은 작퉁 파는 안화상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0. 10. 02:43
도라지를 인삼으로 까마귀 고기를 꿩고기로 말고기를 소고기로 속이는 자도 있고 누룩에 술지게미를 섞고 메주에 밭을 섞는 자도 있다. 소금이 귀한데 간신히 사고 보면 메밀가루를 섞어 넣는다 - 윤기 - 조선 후기 서울에는 세군데 큰 시장이 섰다. 운종가(종로2가) 배오개(종로 5가) 소의문(서소문동)이다. 사람이 하도 많아 어깨와 등이 부딪치고 갓을 똑바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난전이 난립한 서소문 시장은 짝퉁의 온상이었다. 한 사람이 속이면 열배의 이득을 볼 수 있다. 서울내기 이생은 서소문 시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짝퉁 상인에게 속는 어리숙한 시골사람을 비웃으며 자기는 절대 속지 않을 것이라 자부했다. 하루는 시장을 지나가는데 아이와 상인이 다투고 있었다. 상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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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채업자로 고리를 뜯었던 식리인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0. 3. 04:00
근래 백성들의 폐단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사채가 특히 심하다. 흉년에 가난하고 초췌한 백성들이 먹고살 길이 없어 마침내 모두 부잣집으로 몰려가서 사채를 빌려다가 두배의 이자로 갚고 있다....만약 갚지 못하고 본인 먼저 죽으면 기필코 그 자손과 친족에게 거둔다 - 영조 승정원일기 - 가계 대출, 기업 대출 등 용어가 모든 매체에서 넘쳐 나고 있다. 은행 문턱이 높기만 한 서민들은 사채 시장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 역시 대출 사업이 성행한 나라였다. 조선 초기부터 쌀이나 비단으로 대출 사업용 펀드인 대금을 조성했고 18세기부터 그 화폐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대출 조성 행위를 입본이라고 하고 대출 사업은 식리라 주로 했다. 대출 이자를 이식이라 하고 50%가 넘는 고금리를 장리라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