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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無에서 시간을 만들어내는 시계 제작자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8. 17. 06:00
자명종이 처음 들어왔을 때 동래 사람들이 왜인에게 태엽 감는 법을 배워 서울에 전했다. 그러나 자세하지 않아 시계가 있어도 쓸 줄 몰랐다...내 숙부 이민철이 조용한 곳에 자명종을 들고 가서 시계 축 도는 것을 응시하고는 나사를 모두 뽑아 분해했다. 보던 이들이 모두 경악했으나 이내 조립해 이전처럼 완성했다 - 이이명 <소재집> 1631년 정두원은 명나라에 갔다가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 로드리게스를 만났다. 정두언은 그를 통해 서양 화포, 자명종, 망원경, 서양 과학서를 사 왔다. 인조는 서양화포를 구입한 공을 기려 정두언에게 상을 내리려 했으나 조정 신료는 반대했다. 구입한 물건은 쓸모없는 게 많고 자명종은 예쁜 쓰레기라고 하였다
자명종은 서양 과학기술의 정수였으나 조선에서는 골동품처럼 집안 한구석을 장식하는 비싼 소품이었다. 조선과 서양의 시간 체계가 달랐고 무엇보다 톱니바퀴 수십개로 작동하는 기계였던 까닭에 작동과 수리방법을 몰랐다. 1673년 김육은 북경에서 자명종을 구해왔다. 하지만 작동원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어서 고장 나면 손쓸 방도가 없었다. 그러다 밀양 출신의 장인 유흥발이 연구 끝에 일본산 자명종을 수리해 작동시켰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17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조선에 시계 제작자가 나타났다. 이들은 자명종을 분해하고 조립하여 드나들면 자명종 제작 기술 일부를 익혔다. 당시 조선의 시계 제작자는 자명종 부품을 이용해 새로운 시계를 제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1669년 이민철과 송이영은 수입한 자명종을 분해해 그 부품으로 혼천시계를 제작했다. 두 사람은 전통 천문관측 시계 혼천의에 최신 서양 기술을 접목시켰다
서양시계는 1657년 시계추의 발명으로 크게 발전했는데 이민철과 송이영이 제작한 혼천시계는 두 개의 시계추로 작동했다. 시계추를 발명한 지 불과 13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그만큼 조선 시계 제작자의 역량은 세계적 수준이었다. 이이명 소재집에 이민철이 자명종을 분해하자 지켜보는 이들이 경악했다고 하며 이안민전에 따르면 이민철이 아홉 살에 자명종을 분해 조립하였고 17세기 당시 자명종 가격이 60냥, 서울 초가집 전세값이 40냥이었다. 그러나 조정 신료는 시계 제작자들을 천시했다. 특히 왜관 기술을 배웠다면서 쪽발이라고 하며 무시했다. 결국 조선은 19세기까지 바늘 하나 만들지 못하는 나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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