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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문집 40억 추정, 여기에 글씨 새기는 사람을 각수라고 하는데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8. 3. 05:04

    가야산 늙은 각수승 묘순은 / 재주가 뛰어나지만 성품은 순박하다네 / 글씨 새기는 것은 이번 생의 업이고 / 스님 노릇은 허깨비로다 - 이수광 <지봉집> 고려시대 발명된 금속활자는 조선에 들어서도 여러 차례 주조되며 활발하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금속활자는 한번에 10만자 이상을 주조해야 했으므로 경제적 부담이 매우 커서 나라에서 반포하는 책을 만들 때 주로 사용되었다. 민간이나 사찰에서는 여전히 글자를 새겨 찍어내는 전통 방식으로 책을 만들었다. 이때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사람을 刻手라고 한다. 각자장, 각공, 각원으로도 불렀다. 옥이나 비석 등에 글씨나 문양을 새기는 사람도 각수라고 부른다

     

    앞의 시는 조선 중기의 문인 이수광이 가야산 용봉사의 승려 각수 묘순에게 준 것이다. 당신의 이번 생은 스님이 아니라 각수라며 놀렸다. 당시 가야산에는 각수만이 아니라 종이를 만드는 지장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각수는 민간인보다 승려가 많았다. 사찰에서는 불경을 자주 만들었고 새로 찍어 내는 개판 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 왔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사찰에서 펴낸 510여종의 책을 살펴보면 승려 각수 359명과 민간 각수 318, 3377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한종의 경전을 찍는데 최대 72, 평균 6명의 각수가 동원되었다. 한국국학진흥원 장판각에는 6.6만장에 달하는 유교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여기에 각수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이는 품삯을 계산하고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이다

     

    조선 왕실의 공식행사와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의궤에도 전국 각지에서 작업에 참여한 수많은 각수들의 이름이 실려있다. 특히 의궤에는 각수에서 제공된 다양한 공구의 종류와 수량까지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다.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각도와 망치, 새긴 책판을 다듬는 중치 숫돌, 경상도 연일 지방에서 나는 부드러운 숫돌, 나무 조각을 털어 내는 멧돼지 털이다. 최흥원의 문집 백불암집을 간행하는 과정을 기록한 간역기사를 보면 각수는 총책임자인 도각수, 업무를 총괄하는 수두, 연락책을 맡은 공사원, 판각에 관련된 제반 사항을 처리하는 장무, 마무리를 맡은 목수, 책판을 다듬는 책공 등으로 나뉘어 작업했다. 이들은 도각수를 중심으로 업무를 분담하고 각자의 능력에 맞추어 작업을 진행했다. 양반도 조상의 책을 간행하기 위해 각수로 참여했다

     

    체제공의 문집 번암집은 60권을 간행할 때의 기록인 간소일기에 따르면 간행에 필요한 비용이 1만냥이 들었다. 그중에서 목판비, 편집비, 글씨 쓰는 비용 등이 40%, 각수의 판각비는 30%정도였다. 1만냥은 현재 가치로 40억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각수의 인건비가 10억원 가량을 차지했던 것이다. 작업하는 동안 명절이나 경조사가 있으면 부조를 해주었고 검수과정에서 잘못이 발견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았다. 문집 간행은 엄청난 비용 때문에 가난한 집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내용을 줄이다가 저자의 의도와 멀어지는 결과를 낳거나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다가 패가망신하기도 했다. 각수의 손길이 안 간 곳이 없던 것처럼 백두산 높이를 넘는다는 고려의 팔만대장경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본인 신라의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모두 각수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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