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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백성의 변호사인 외지부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26. 03:15

    외지부라 불리는 자들은 항상 관아 근처에 있다가 원고나 피고를 몰래 사주한다. 또 이들은 송사를 백성 대신 진행하며 시시비비를 어지럽게 만들어 관리를 현혹하고 판결을 어렵게 한다. 해당 관부에 명하시어 조사해 처벌하소서 ! - 성종실록(1471) - 조선은 소송 없는 나라를 꿈꾸었다. 왕이 덕으로 나라를 다스려 어울한 백성이 한명도 없는 세상을 꿈꿨던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억울함을 풀려는 소송이 넘쳤다. 조선시대 소장과 판결을 정리한 민장치부책에 따르면 양반은 물론이고 노비나 여성도 거리낌 없이 소송을 제기했다. 옥에 갇힌 죄수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법을 모르고 글을 몰라도 소송은 가능했다. 민간에서 활약한 법률 전문가 외지부가 있었다. 외지부라는 명칭은 고려 도관지부에서 유래했다. 도관은 법률를 관장하는 형부 소속 관청, 지부는 판결을 맡은 종 3품 관리를 말한다. 외지부는 도관 밖 민간에서 지부 노릇하는 자를 뜻했다. 소장을 대신 써 주고 소송을 자문한 외지부는 요즘 말로 하면 야매 변호사였다

     

    조선은 귀천을 떠나 백성이 자유롭게 소장을 제출하도록 배려했다. 또 백성이 소장을 제출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 일을 목민관의 의무로 보았다. 18세기 관련된 목민서 치군요결은 소장 제출을 어렵게 하는 아전을 처벌하도록 적고 있다. 그러나 백성에게 관아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소송을 제기하려면 법전에 근거해 소장을 한문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법조문을 모르는 마을 훈장이 증거를 빼놓고 감정에 호소하는 문장만 소장에 늘어놓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까닭에 법에 무지한 백성이 스스로 소장을 작성하기는 어렵고 외지부는 법률 지식과 문서작성 능력을 토대로 법을 모르는 이들을 도왔다 형식을 갖춰 소장을 대신 쓰고 소송이 진행되면 자문도 맡았다. 조선시대 소송은 세 차례 진행되었고 두차례 승소해야 사건을 매듭지었다 외지부는 긴 소송 과정에서 의뢰인을 보호했으며 법률 대리인 역할도 함께 했다

     

    명종때 역참 소속 노비 엇동은 양반의 부당한 추노에 맞서 소송을 제기했다. 선조때 다물사리는 자신과 자식까지 사유 재산으로 만들려던 양반 이지도에 맞섰다. 다물사리는 자기가 나라에 속한 성균관 공노비이므로 개인 소유가 될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다물사리는 이지도측에서 제시한 문서를 인정하는 서명을 거부했다. 이로T써 해당 문건이 지닌 증거 능력을 부인한 것이다.다물사리가 법리를 알아서가 아니라 외부부의 조언에 의한 것이다. 외지부가 있었기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외지부는 법률 지식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일도 다반사였다. 중종때 외지부 유벽은 형조 관리에게 뇌물을 써 심문 내용을 빼낸 다음, 의금부에 수감된 의뢰인에게 답변을 미리 일러주었다. 또 외지부는 문서를 위조해 다른 사람을 노비로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이유로 조정에서는 외지부를 비리호송자라고 이치에 닿지 않는 송사를 잘 일으키는 놈이라고 하였다 이에 연산군은 외지부 15명을 함경도로 유배보냈다. 중종때 편찬한 대전후속록에서도 외지부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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