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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하게 잘 쓰여진 글씨가 필요한 고려시대부터 활동했던 書手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2. 12. 03:34
서수에 대해서는 고려시대부터 등장한다. 안정복의 동사강목에는 고려시대 문하부 이속에 서수의 직임을 두었다는 기록이 보이고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고려시대 관직 중에 서인이 주로 담당하는 분야 중 하나로 언급했다. 당초 서수는 관에 속한 낮은 벼슬에서 출발했다. 영조실록에 이제동이라는 인물이 신씨 집안에서 10년 넘게 서수 노릇을 했다는 내용이 보이고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도 정현좌가 심노숭 형제의 모든 과거 시험 답안지와 원고를 필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처럼 18세기 후반을 전후에서 서수들은 유려한 글씨를 무기로 민간 분야에서 전문가 집단을 형성해 갔다
과거시험장 서수가 필요한 분야는 여러곳이 있다. 우선 허균의 성소부부고에서 서수가 없어서 조선의 시를 빨리 필사할 수 없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서수가 필사하는 자료에 문학 작품이 포함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한양의 세책가에서 취급한 한글소설 역시 전문 필사자들에 의해 필사되었다고 전해진다. 서수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곳은 과거 시험 현장이었다. 조선 후기 과거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좋은 자리를 잡아 주는 선접군, 답지를 대신 작성해 주는 거벽, 작성된 답지를 깔끔하게 필사해 주는 서수와 한 팀을 이뤄 시험을 치렀다. 좋은 글씨로 가능한 한 빨리 작성하여 제출하는 것이 합격에 유리했으므로 서수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그 외에도 관에 제출하는 공문서 작성과 필사 역시 서수가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목민심서에는 호적 작성을 둘러싼 비용과 이를 이용한 비리가 잘 정리되어 있다. 호적대장을 등서할 때 쓰이는 비용은 정서조 한말(한냥)로 여기에는 문서 내용을 필사해주는 서수의 품삯이 포함되었다. 정약용이 호적 대장 한 장 등서 비용이 서푼 정도였으며 수정하여 다시 쓸 경우는 별도의 삯을 지불했다. 이처럼 사대부가 각종 기록물, 문학 작품을 비롯하여 소비 상품으로 등장한 고전소설, 과거시험 답안지, 각종 공문서 등의 필사와 작성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었고 글씨를 잘 쓰는 능력은 직업으로 연결되었다. 최근 32년간 대법원에서 서사로 근무하며 연설문, 각종 임명장, 표창장, 기타 현판 등을 붓으로 적어 온 행정관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므로 타자기와 컴퓨터로 발전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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