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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에 집안을 돌보는 집사 역할을 했던 傔人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1. 2. 03:40

    노비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면서 집안일을 맡아보는 자를 겸인이라 한다 - 화양문견록(최신) - 집사하면 항상 검은 턱시도 차림을 하고 있는 노신사가 떠오른다. 영국 귀족 가문에나 있을 법한 존재지만 주인을 대신해 집안일을 관리하는 직업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겸인도 그중 하나다. 겸인은 청지기 또는 소사 , 통인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중인신분이므로 노비가 하는 허드렛일은 하지 않았지만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았다. 주인이 먹고 입을 것을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관혼상제를 비롯한 집안 행사를 거들었다. 사무보조와 문서작성에도 능숙했다. 집안 사정을 꿰고 있으며 바깥의 정보를 입수하는데도 빨랐다. 역모가 발각되면 관련자들의 겸인부터 잡아들였다. 그들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체제공 집안의 장인 장덕량은 체제공의 부친이 병으로 앓아눕자 낮에는 음식을 떠먹이고 밤이면 발을 천번씩 주물렀다. 체제공은 아들인 자기보다 낫다고 했다. 겸인에게 월급을 주었다는 기록은 없고 대신 취직을 시켜주었다. 조선 후기 중앙 관청의 서리는 대부분 권세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겸인이었다. 중앙 관청 서리의 권력은 웬만한 시골 양반보다 낫다. 사대부 관원도 이들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지경이었다. 사대부 관원은 허수아비에 불과하고 실제 업무는 전부 서리가 맡았던 것이다.

     

    주인과 겸인의 관계는 취직한 뒤에도 이어졌다. 겸인은 관청에서 얻은 중요한 정보를 주인에게 귀띔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이득을 상납했다. 주인이 권력을 잃으면 어렵사리 얻은 일자리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수입도 괜찮아서 홍봉한의 겸인 노동지는 서리 노릇 3년으로 평생 놀고 먹을 재산을 마련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겸인은 관청의 거대한 좀벌레라고 일렀다. 겸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의리이다. 주인이 몰락한 뒤에도 의리를 지킨 겸인들의 이야기는 미담으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동래 부사였던 송상현의 겸인 신여로는 주인 곁에서 성을 지키다 함께 죽었고 홍봉한의 집사 노동지는 몰락한 주인을 끝까지 보좌하고 주인이 죽자 장례까지 치러 주었다.

     

    의리를 지킨 겸인의 이야기는 미담 같기도 하지만 사적인 의리를 지키기 위해 국가 행정을 농락한 행위는 분명 잘못이다. 조폭의 의리와 다를 것이 없다. 지금도 그런 의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친인척과 비서 등을 공기업에 부정 채용했다는 소식이 적지 않게 전해져 취준생들의 공분을 사기도 한다. 남의 백으로 공직에 나아간 그들에게 과연 공복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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