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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화폐 제작자인 도주자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2. 10. 31. 03:51
남몰래 돈을 주조하다가 적발된 자는 대적으로 처단하지 않을 수 없다. 돈이란 본시 큰 이권이 있는 것이라 아무리 엄하게 금지하더라도 위조를 막기 어렵다. 요사이 듣자 하니 화폐를 위조하다가 발각되면 직접 만든 사람은 사형에 처하고 공범으로 도와준 사람은 유배에 그치기 때문에 위조화폐를 도와준 자는 죽음을 모면하고 있다 - 비변사 등록 - 임진왜란 이후부터 동전의 유통을 위한 지속적 노력으로 1678년에 상평통보의 발행과 유통 체계가 완성되었다. 그 결과 동전의 유통 범위가 상인이나 일부 부유층을 넘어 일반 백성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18세기 초에 이르면 통화량이 급증하고 18세기 중반을 전후하여 전면적인 화폐 경제 생활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전 제작에 민간이 합법적으로 관여하다 보니 지방으로까지 확산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구리로 동전을 위조하면 세배 정도의 이익이 발생했으므로 민가에서 놋그릇 절도가 횡행할 정도였다.. 이는 결국 동전 유통에 혼란을 야기하므로 국가에서 엄하게 금지시켰다. 문제는 화폐 제작 기술이었다. 동전 제작은 민간이 담당했으므로 민간의 제작 기술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났다. 이러한 위조 화폐 제작업자를 도주자라고 했다. 화폐 위조는 조선 초부터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집현전 직제학 이계전이 지폐 위조 폐단의 심각성을 제기한 기록이 있다.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위조화폐 제작업자들은 서서히 서울을 떠나 산속이나 도서지역으로 이동했다. 심지어 바다에 배를 띄우고 그 안에서 위폐를 제조했다
영정조 시대에는 위조화폐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승정원일기에는 1724년 인천 앞바다에 있는 선갑도의 위조화폐 제작 현장을 급습한 내용을 등장한다. 단속정보가 새어 나가 위조 화폐 제작업자들을 놓쳐지만 현장에서 화폐 위조를 위해 사용했던 구리 3천근, 납 2천근, 석탄 2백섬 등을 압수했다 경남 진주 지역의 토포군이자 최고의 염탐꾼 허남의 눈에 아름다운 세명의 여성이 들어왔다. 그들은 돈을 물 쓰듯 하면서 많은 물건을 구입했다. 구입한 물건을 다섯 명의 짐꾼이 운반했다 허남은 뒤를 밟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고성의 한 동굴이었다. 동굴 안에 쇠를 녹이는 십여개의 화로가 있고 사람들이 가짜 상평통보를 만들고 있었다. 이후 허남이 포교들을 이끌고 현장을 급습했으나 모두 도망간 상태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위조 화폐의 제작과 유통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한 장석은 위폐가 너무 많아 시장이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가짜 동전들은 함석을 사용하지 않고 구리와 납만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주조된 동전에 비해 가벼웠고 품질 역시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이를 식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평통보 뒷면에 발행관청에 더하여 천자문순으로 일련번호를 새기는 방법이 논의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민간에서 제작한 동전이 지역화폐처럼 쓰이기도 했다 특히 동전의 가치가 제작비용을 크게 상회하면서 위조 역시 계속 늘었다 흥선 대원군의 당백전 발행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데도 역시 화폐의 위조가 큰 영향을 미쳤다. 지금도 화폐 위조는 큰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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