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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조때 책쾌 100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책쾌는 누구인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3. 6. 03:06

    합강과 같은 판본의 책이라면 경사와 제자서, 잡기, 소설을 따지지 말고 한 책이든 열 책이든 백 책이든 구해만 주시오 - 유만주 <흠영> - 이덕무는 생활이 궁핍해지자 맹자 한질을 200전에 팔아 처자식을 먹였다. 그 소식을 들은 유득공은 춘추좌씨전으로 술을 사서 이덕무와 함께 마시며 서로 처지를 위로했다. 서점이 없는 시절 책은 책쾌를 통해 거래됐다. 책쾌는 책의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중개인으로 서쾌, 책거간꾼으로도 불렸다. 이덕무처럼 가난하거나 권세를 잃어 망해 가는 집안에서 흘러나온 책을 시세의 반값에 사들였다가 제값에 되팔아 이익을 보았다. 종이가 귀해 편지를 빈 공간 없이 쓰던 상황이었으니 책은 말할 나위 없다. 분량이 적어 단권으로 엮인 대학이나 중용도 품질이 좋은 옷감인 상면포 서너 필을 주어야 살 수 있었다. 이는 논 두세 마지기의 고가였다고 한다 이덕무는 맹자 한질 값으로 200전을 받았는데 지금으로 치면 70만원 내외가 된다.

     

    좋은 판본의 희귀한 책은 권력을 독점한 경화사족이 먼저 차지했다. 조정에서 받은 책과 연행을 통해 수입한 중국책, 책쾌에게 구입한 책들이 경화사족의 개인 도서관인 장서루에 쌓여갔다. 책쾌는 고객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샘플이 될만한 몇 권의 책과 목록을 보여 주며 사라고, 혹은 보유한 책을 팔라고 권유하는 방식으로 흥정을 걸었다. 고객이 원하는 책이라면 희귀본이나 금서라도 구해 줄 수 있는 정보력이 필요했고 이왕이면 많은 책을 가지고 다닐 수 있어야 했다. 유명한 책쾌 조신선은 책의 제목만 대면 저자와 권수, 출간연도와 판본 등을 줄줄 읊었다. 내용에 대해서도 모르는게 없었으며 어떤 책을 누가 소유하고 있다가 어디로 팔려 갔는지도 알았다고 한다. 조신선은 이름과 사는 곳도 알 수 없지만 100세가 넘도록 늙지 않아 신선으로 불렸다고 한다

     

    유만주는 조신선의 단골이었는데 한화, 합강, 서상기와 같이 중국에서 수입한 명과 청대 책을 주로 구입했다. 최한기의 조선은 물론 중국과 서양에서 수입된 책도 널리 구해 읽었다. 다 읽은 책은 책쾌에게 되팔아 새 책을 사는 비용으로 충당했다. 그는 책을 사는데 돈을 너무 써서 말년에는 지금의 한국은행 자리에 있던 집을 팔고 도성 밖으로 이사가는 신세가 되었다. 18세기 이후 중국서와 서양서가 대거 수입되고 조선에서 인쇄된 방각본과 한글소설도 일반에 유행하면서 책쾌이영업은 흥성했다 영조때 청나라 책 명기집략에 태조와 인조를 모독한 구절이 있다고 해서 이 책의 소장자와 판매자를 잡아들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죽은 책쾌가 100명에 달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송신용이라는 책쾌가 있었는데 그는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민족애를 바탕으로 민족의 문화유산을 후손들에게 보존하는데 노력했다. 책쾌는 지식의 유통을 담당하는 자로 조선 지식인의 학문적 성장에 숨은 노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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