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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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21. 토)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21. 04:10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악령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게 여겨 도와주십시오.”다소 애매하게 도움을 청한다. 앞서 제자들이 악령을 쫒아내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에 대한 기대감이 처음보다 줄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 아버지의 그런 태도를 따금하게 질책하시고 믿음을 독려하신다. 그는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간절함이 묻어나는 고백을 한다. “저는 믿습니다. 맏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믿음과 불신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개념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신앙인의 마음속에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경험상으로도 당신을 믿습니다라는 고백의 이면에 예수님께 전적인 신뢰를 드리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마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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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20. 일)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20. 03:45
예수님꼐서는 저주하는 자를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뺨을 때리면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가져가면 속옷까지 내주라고 한다. 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원수란 자기나 자기 집안에 어떤 중대한 해를 끼쳐 깊은 원한이 생긴 사람을 뜻할 텐데. 이런자를 우리가 어떻게 용서까지는 해 볼 수 있다손 치더라도 정말 사랑까지 할 수 있을까요 ? 이런 비정상적인 사랑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 예수님께서는 그 근거로 아버지 하느님꼐서 지니신 자비와 사랑을 제시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지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곧 하느님꼐서 그러하시기에 그분의 자녀이기를 바라는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사랑 자체로 정의한 요한 서간의 저자도 이점을 명확히 한다. 하느님꼐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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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19. 토)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19. 05:1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꼐서는 세 제자만 따라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셔서 그들 앞에서 거룩하게 변모하신다. 엘리야와 모세도 그분 곁에 나타나신다.베드로는 이 놀라운 장면을 보고서 그들에게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한다. 이 제안은 이스라엘의 초막절 배경과 관련이 있다. 하느님의 보호 아래 광야에서 지냈던 천막생활을 기억하는 초막절은 마지막 때가 오면 하느님과 함께 영원한 초막에서 살게 되리라는 종말론적인 기대도 반영하는 축제였다 베드로는 자기 눈앞에 종말의 때가 왔음을 알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 초막을 지어 드리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베드로가 놓친 것은 예수님꼐서는 메시아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수난으로 강조하셨는데 종말의 때에 이르기는커녕 아직 수난의 때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여전히 수난과 십자가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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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18. 금)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18. 04:04
야고보서간에서는 행동과 실천이 붙따라야만 비로서 온전한 믿음이 된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오늘 1독서의 내용에서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우리는 사랑을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길에서 마주친 초주검이 된 사람을 온 정성으로 돌본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하는 나와 정작 길에서 비슷한 처지의 궁핍한 사람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나쳐 버리는 나사이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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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17. 목)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17. 04:48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르코 복음 전반부가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바탕으로 그분의 정체를 알아가는 여정이었다면 이제 그 종착지에 다다른 셈이다. 에수님꼐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베드로가 대답한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제자들은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알아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에서 뜻밖의 말씀을 듣는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음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야 한다 제자들은 아마도 승리와 영광의 빛으로 둘러싸인 메시아, 곧 놀라운 권능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한 해방을 안겨 줄 그러한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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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16. 수)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16. 04:0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벳사이다의 어느 눈먼 이를 치유해 주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치유가 단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다는 점이 좀 특이해 보인다. 예수님꼐서는 먼저 눈 먼 이의 두눈에 침을 바르시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으신다. 그런데 그가 아직 뚜렷하게 보지 못하자 다시 두눈에 손을 얹으셨고 그제야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 그 눈먼 이의 치유가 매우 까다로운 것이어서 예수님께서도 애를 좀 먹으신 것이라고 해야 할까 ? 그보다는 그의 시력이 단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문맥 안에서 바라볼 때, 제자들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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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15. 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15. 04:08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깨달지 못하느냐 ? 너희 마음이 그렇게 완고하냐 ? 녀희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정말 단단히 화가 나신 모양이다. 얼마나 답답하셨으면 이렇게까지 심하게 나무라실까 싶다.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두 번이나 일으키셨다. 제자들은 이 놀라운 광경을 직접 목격하였을 뿐 아니라 군중에게 그 빵을 나누어 주고 남은 조각을 모으는 역할도 맡았다. 예수님의 권능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가장 강렬하게 체험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배에 먹을 빵이 없는 상황이 닥치자 다시 걱정하기 시작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은 교회의 여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라는 배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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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2. 2. 14. 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2. 2. 14. 04:32
시련이 누구에게나 어떠한 형태로든 찾아오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질병의 고통으로, 누군가에게는 불의의 사고로 자녀를 잃은 비통함으로 다가온다. 어떤 이에게는 오랜 기간 공들인 수고와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허탈감으로, 어떤이에게는 헌신적으로 일하던 직장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된 상실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시련이 왜 나에게 오른지 따져 보기도 하지만 그분꼐서는 우리를 방관하듯이 가만히 지켜보시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마치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시던 예수님에게 아무런 응답이 없으셨던 하느님처럼 말이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그런데 오늘 독서에서 이러한 시련을 두고 우리의 믿음이 시험에 놓이는 것이라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단련시키시는 과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