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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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24.토)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24. 07:08
우리는 항상 옳은 결정을 하고 싶다. 그런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느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분의 뜻을 실현할 수 있는 선택을 하고자 더 고민하고 자문하며 결정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 첫 마음이 그대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일이 진행되거나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깨달기도 한다. 하느님의 뜻이 아닌 내 뜻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한다. 예수님꼐서는 오늘 복음에서 비유를 통하여 하늘 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곳임을 알려 주신다. 가라지는 불필요한 것이다. 먹지도 못하고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 없게 방해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가라지의 모습이 밀과 비슷하다는데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종들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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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23.금)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23. 06:08
성경에는 답이 없다고 하는데 이는 성경말씀은 우리네 삶을 바탕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삶이 다르고, 그 삶 속에서 해석되고 이해되기에 매번 다르고 새롭게 드러나야 한다. 똑같은 말씀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어제의 이해와 오늘의 느낌은 다르다. 그러나 다른 것일뿐 틀린 것은 아니다. 성경은 사람의 손으로 쓰였지만 성령께서 지금 우리에게 건네시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씨앗은 가능성이다. 다만 씨앗을 먹는 것만으로는 배부름과 행복을 느낄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하늘나라를 실현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 말씀과 가르침에 따라 살아갈 때, 씨앗은 싹을 틔우고 자라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맺는다. 그러려면 우리는 장애물들을 하나씩 걷어 내야 한다. 일상의 무게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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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22.목)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22. 04:24
우연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다. 그리운 노랫소리에 까맣게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 노래를 함꼐 들으며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니, 그와 함께했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친다. 그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아쉬움과 후회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한다. 지나치듯 들려온 노래 한곡에 사랑을 주고 받았던 추억이 밀려든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사소한 어떤 계기에 수많은 기억이 소환되고는 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분의 무덤을 찾는다. 그분 곁에 가까이 있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시고 낯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시고, 낯선 이들이 서 있을 뿐이다. 그렇치만 마리아는 예수님께 받은 사랑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다른 상황 속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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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21.수)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21. 06:12
삶속의 성경을 이루어야 하는데 성경을 머리로만 읽고 익혔던 것 같다. 그래서 성경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뿐 가슴으로 삶으로 느끼고 다가가지 못한다. 삶속에서 살아 숨쉬는 성경, 나와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며 나에게 말을 건네시는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가족들과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하늘나라에 대하여 설명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철학적 사유가 담긴 단어로 설명하지 않으신다. 어렵고 난해한 신학적 단어나 율법에 나와 있는 개념적 지식으로도 설명하지 않는다. 씨 뿌리는 일, 수확하는 일, 빵 만드는 일, 고기 잡는 일, 물건 파는 일 등 그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통하서 하늘나라가 어떤 것인지,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를 이땅에 실현할 수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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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20.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20. 05:00
오늘 복음에서 가정이란 무엇일까 ?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그 글은 가족이라는 말에 담긴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가족이라는 말은 따뜻함과 안정감을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지나친 간섭과 폭력이 당연시되는 단어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내 기대와 욕구가 투시되는 소유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요즘은 가족이 혈연에서 관계로 변하게 되어 가정폭력이나 저출산, 이혼 가정과 1인 가구의 증가라는 사회현상도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본다. 오늘 예수님께서 새로운 가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가족들이 찾아왔다고 전한다. 그는 어쩌면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부정하고 그분께서 마귀의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킨다는 바리사이와 같이 악의적 의도를 가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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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19.월)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19. 05:05
하루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늘 같은 날짜에 오던 용돈이 이번달에 오지 않았다며 혹시 자식이 송금을 잘못한 것은 아닌지 확인차 전화하신 듯하였다. 자식은 바쁜 일 때문에 용돈을 보내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하였다. 아버지께 죄송하다고 하는 목소리에 미안함이 묻어 나온다. 아버지는 오히려 별거 아닌 일에 신경 쓰게 했다며 미안해 한다.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고마움을 자식은 약간의 용돈으로 표현한다. 받은 사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마음이다. 설령 그 돈을 받지 못하셨다 해도 부모님은 자식의 마음을 모르시지 않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마음은 어떠할까 ?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꼐 표징을 요구한다. 그 표징을 보여주어야지만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임을 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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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18.일)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18. 15:05
인류의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은 어쩌면 더 많은 빵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도와준다는 명분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자국의 이익을 더 많이 얻으려는 싸움일 뿐이다. 테러와의 전쟁, 평화 유지를 위한 싸움도 무기를 팔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얻어 그 지역의 패권을 가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이세상에 옳은 전쟁과 싸움은 없다. 이렇게 역사 이래 인간의 탐욕은 전쟁과 폭력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 그떄문에 가난한 이은 더욱 가난해지고 가진자는 더 많이 가지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역사 속의 전쟁과 같은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많은 부와 명예를 얻으려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짓밟으며 경쟁한다. 짓밟지 않으면 짓밟히며 뺴앗기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움을 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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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2021.7.17.토)아들을 위한 오늘의 묵상 2021. 7. 17. 02:47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과 삶의 경험치에 따라 누군가의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한다. 그러한 판단이 반드시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워 주는지가 기준이라면 그러한 판단은 보류해야 하지 않을까 ? 우리는 오랜 친구나 사랑하는 이를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한번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이 처지에서 왜 그런 행동을 하였는지 고민해 볼 것이다. 함부로 내린 판단이 우리를 미움과 오해의 길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판단한다. 바리사이들의 예수님을 안식일 어기고 하느님의 율법을 무시하여 그동안 율법을 통하여 얻었던 자신들의 부와 명예를 빼앗아 가려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