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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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전쟁이냐 프랑크족의 침입이냐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31. 04:46
7세기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였지만 그리스도인의 성지순례를 인정하였다. 그러나 1077년 셀주크튀르크가 점령하자 예루살렘에 입장료를 받고 또한 동로마인 비잔틴제국을 침입하자 비잔틴제국은 로마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교황은 동서로마교회의 통합으로 교황권을 강화하고자 1096년부터 200년간 8차로 전쟁을 치루었다. 가슴과 어깨에 십자가를 달고 행했다고 하여 십자군전쟁이라고 한다. 8차의 십자군전쟁에서 1차는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무슬림과 유대인을 무참히 학살하고 회군하지 않고 예루살렘왕국을 건국하였다. 그후 아랍의 살라딘은 예루살렘의 성지를 다시 회복하였는데 그리스도인의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보호했다는 사실에서 이슬람에서는 십자군을 프랑크족의 침입으로 묘사하고 있다. 십자군전쟁은 종교신념에 의한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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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인권유린의 한 모습인 노예제도는 어떻게 전개되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25. 03:40
이슬람은 7세기경 마호메트가 창시하여 하느님인 알라신을 믿고 코란인 경전을 마음에 새기며 만물은 평등하다고 외쳤다. 성경구약은 이집트에서 유대인들이 노예로 끌려가 노동을 하였다고 나오고 신약성경은 노예제도를 인정하였다. 또한 인도의 브라만교의 경우에도 수드라로 하인계층이 형성하여 계급사회를 인정하였으나 인도 불교사상이 불살생으로 인류평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중국의 유학사상은 신분제적 계층구조를 인정하여 노예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공맹사상이 고대중국의 지도자들이 받아들였다가 중국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시대에는 반혁명분자로 몰아세워지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한편 한반도 조선시대에도 성리학자는 중국의 사상을 받아 들여 노예제도를 양반의 신분 유지로 필수적인 재산목록으로 보았다. 이처럼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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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국왕과 의회의 권력다툼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17. 02:48
세계 시민 3대혁명으로 최초로 영국의회가 성공한 영국혁명, 프랑스혁명, 미국혁명(남북전쟁)으로 나누는데 영국혁명도 엄밀히 말하면 시민의 대표인 의회의 승리를 가져다준 사건이다. 1215년 대헌장인 마그나카르타로 프랑스의 땅을 잃은 존왕은 왕권을 제한하는 헌장에 서명하였고 이것이 지금 영국 국회의사당에 그림으로 걸려있다고 한다. 1628년 찰스1세가 왕권신수설을 통한 전제정치로 청교도를 탄압하고 의회를 무시하자 의회의 승인없이는 과세할 수 없다고 의회는 권리청원을 제출하였다. 1642년에 크롬웰의 의회파가 왕당파를 격파하고 런던궁전에서 찰스1세를 참수하여 공화정이 수립되었는데 이를 청교도혁명이라고 한다. 크롬웰은 종신 호국경으로 청교도생활을 강조하고 음주와 도박을 금지하고 대외적인 정치도 잘 수행하다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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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 영국은 영원한 앙숙이었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15. 04:45
중세사회는 영토확장을 위해서는 전쟁을 통해서 전리품을 얻어가거나 왕가의 결혼으로 공주의 지참금으로 영토를 왕이 될 왕자에게 주는 식으로 정치적 결혼제도가 있어 중세유럽사회는 이러한 복잡한 구도로 엮여있다. 여기에서 프랑스와 영국은 어떠한 대립을 하며 왕가를 이루어지를 보면 중세유럽사회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숙명의 적으로 대립하는 시기인 9세기 노르만족인 바이킹이 프랑스에 침입하자 911년에 센강 근처에 노르망디를 주었는데 거기에서 발전한 공국의 후손인 윌리엄이 영국에 침입하여 1066년 노르만왕조를 영국에 건립하였다. 영국와 프랑스의 거대한 전쟁인 백년전쟁이 시작되었는데 이는 프랑스왕위계승에 대한 문제로 발단이 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이권다툼이 내면에 있었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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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 그리고 한반도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13. 03:49
요즘 미국과 중국은 패권무역전쟁으로 최후의 승자를 가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데 이에 중간에 위치한 한국은 과연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이들 사이에서 어떤 대응전략으로 어려운 난국을 헤쳐나아가야 될지 생각해 본다. 한반도는 1,000회 이상의 외세침입을 받았고 한말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외세의 틈바구니 속에 줄타기 외교를 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일본에서 해방되고 남북으로 분단되어 이념대립으로 6.25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도 남한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힘겨루기로 좌우대립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이런 상황에서 2018.3월 미국은 관세폭탄으로 중국물품에 25% 등을 부과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으로 환율전쟁 등 다양한 형태로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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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영국에서 어떻게 독립하여미합중국 공화국을 세웠나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12. 05:26
신교도 칼뱅파를 영국인은 청교도라고 하며 이들은 엄격한 규율과 금욕적인 생활을 하였다. 제임스1세때 성공회를 국교로 삼으며 청교도를 박해하자 종교의 자유를 찾아 메이플라어호를 타고 66일간 항해로 미국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동부해안에 13개주가 형성하여 영국에 세금만 내고 자유와 종교의 자유를 인정받았다. 영국이 프랑스와 인도 및 북아메리카 7년 전쟁으로 재정적자에 허덕이어서 미국 식민지에 막대한 세금인 설탕세 및 인지세 등을 부과하였다. 그러나 대표없는 곳에 과세할 수 없다고 하며 영국산 제품에 불매운동을 하며 영국의 홍차 대신 커피를 주로 마시게 되었는데 여기서 ‘아메리카노’를 붙이게 되었다. 영국과 결정적으로 싸우는 계기가 1773년 보스턴차사건으로 영국은 동인도회사만 차를 팔 수 있는 독점권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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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은 영원한 앙숙인가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10. 04:23
미국의 트럼프는 중동인 맹주 이란에 대해 악의 축으로 보고 그들을 지금도 견제하는 이유는 역사적 사실을 거슬러 보면 알 수 있다. 처음 1940년대에 제2차 세계대전때에는 독일이 소련침공에 대해 물자공급지로 미국이 이란을 도왔고 그 당시 이란은 소련과 영국의 분할 통치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란과 우호적인 관계였고 전쟁후에는 소련의 이란철수를 요구하여 관철시키기도 했다. 1908년부터 영국의 이란석유 채취권을 2차 대전후도 유지하나 독점권을 90%을 점유하여 사우디는 미국과 50%의 이익을 독점하고 있는 사실에 내세우며 부당하다고 재협상을 영국에 요구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비용 등 경제적으로 어려워 이를 거부하다가 1951년 모사데크 민주정권이 수립하여 국유화를 실시했다. 영국 등 서양사회는 석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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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끝나지 않는 미국 남북전쟁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3. 8. 03:11
미국남북전쟁(1861-65)은 구조적인 차이인 남부는 노동집약적 면화, 담배, 사탕수수에 값싼 노예가 필요하고 북부는 상공업이 발달하여 자국 상품보호를 위해 고관세를 부과하기를 바랬다. 남부가 영국으로 면화를 수출하고 영국 면직물을 수입하는데 고관세로 미국으로 들어오므로 면화생산 감소로 남부에서는 영국의 수출이 힘들게 하여 결국에는 남북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링컨의 자유주의와 반노예주의를 주장하는 공화당에서 최초 대통령이 되자 11개주가 남부연합으로 연방에서 탈퇴했다. 톰아저씨의 오두막 책으로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면서 남북전쟁 발발로 62만명이 사망하였으나 전쟁후에도 남부는 투표세와 문맹검사로 참정권을 제한하고 남부퇴역군인 백인우월주의자인 KKK단이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65년에 짐크로법(흑백분리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