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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이 주막의 시그너처 메뉴가 된 이유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5. 1. 14. 03:00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국물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건더기는 고사하고 당연하게 기대했던 국물마저 먹을 수 없으니 부수적으로 생기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다른 나라 음식에도 삶은 요리가 많지만 국물을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물을 요리 재료를 가공하는 용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재료를 삶고 난 국물은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국물을 버리지 않고 요리에 포함시킨다. 심지어 쌀을 씻은 쌀뜨물도 찌개를 끓일 때 사용할 정도이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 의외로 많다. 그 유래에 대해 물이 깨끗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가난과 전쟁 때문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국은 주재료가 물이고 약간의 고기와 야채만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시절 국물로나마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국물 음식이 발달했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밥상에 국을 빠질 수 없는 메뉴가 되었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놓이는 우리나라 밥상 구성은 학교와 군대, 회사의 단체 급식에서 사용하는 식판 모양에도 영향을 미쳤다. 식판의 왼쪽은 밥을 담는 곳으로 네모 모양이고 오른쪽에는 국그릇을 놓는 곳으로 둥근 모양이다. 밥상에 국이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은 우리가 쓰는 단어에도 그대로 투영되었다. 음식이라는 단어에는 마신다는 의미(마실음)와 먹는다는 의미(먹을식)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의 단어와 비교해 보면 중국어는 食物 일본어는 食べ物로 마신다는 의미는 담고 있지 않다. 밥과 국을 같이 먹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식사 도구가 있다. 바로 숟가락이다. 국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숟가락을 주된 식사 도구로 사용한다. 일본과 중국도 식사 중에 숟가락을 쓰지만 국물에 담긴 건더기를 건지는 용도이기 때문에 숟가락의 모양도 국물을 많이 덜어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서양에도 스푼은 있지만 식사 전에 스프를 떠먹을 때만 사용한다.
밥과 국이 같이 제공하는 밥상은 자연스레 밥을 국에 말아 먹는 국밥으로 발전한다. 국밥은 특별한 반찬 없이 김치만 있으면 훌륭한 한 끼가 된다. 게다가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식 메뉴로 가장 선호하는 메뉴는 국밥이다. 국밥이 외식 메뉴로 자리 잡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주식인 밥에서 찾을 수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으로 밥을 짓던 옛날에는 밥을 금방 짓기도 쉽지 않고 따뜻하게 보관하기도 어려웠다. 신속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외식업의 기본인데 따뜻한 밥을 금방 준비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식당 운영에 치명적인 제약이었다. 이 제약 때문에 조선시대 중기까지 주막에서 식사는 할 수 없었다. 주막이라는 이름 그대로 술과 잠자리만 제공한 것이다. 술만 가능했던 주막이 메뉴판에 조선 후기 들어 변화가 나타난다. 보온 밥솥 없이도 밥을 항상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바로 토렴이다. 토렴은 식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밥을 데우는 방법이다. 토렴의 등장으로 따뜻한 밥을 금방 제공하게 되면서 국밥은 조선 시대 주막의 시그너처 메뉴가 된다. 더운 여름에도 뜨거운 국밥을 먹으면서 시원하다를 연발하는 모습은 보면 국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울푸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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