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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효식품인 소시지, 장문화 간장과 된장에 대해서 알아보면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4. 7. 30. 03:22

    소금을 활용하여 고기의 부패를 억제하고 동시에 감칠맛을 은근하게 끌어낸 것이 서민의 식품인 소시지다. 소시지는 건강한 동물의 창자 껍질을 사용한 발효 식품이다. 소시지 제조의 깊은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5천년 전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했다. 고대 중국에도 소금을 사용한 햄과 비슷한 함이라는 음식이 있다. 육식 중심의 세계였던 유럽에서는 다양한 소시지가 있다. 소시지의 어원은 라틴어로 소금을 의미하는 살에서 파생한 살수스라는 단어이다. 이는 소금을 친 고기라는 뜻이다. 또 암퇘지를 가리키는 사우와 허브의 한 종류인 세이지의 합성어라는 의견도 있다. 소시지의 역사는 돼지의 넓적다리 살이 어원인 햄의 역사보다도 길다. 기원전 8세기에 기록된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비계와 피를 채운 염소의 위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에서 폴리스 사회가 성립할 시점에는 이미 소시지가 존재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소시지는 병사들의 귀중한 휴대 식량이기도 했다. 로마시대에는 고기를 천장에 매달아 연기로 그을리는 훈제 소시지를 만들었으며 소시지의 맛도 다양화되었다.

     

    4세기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소시지가 너무 맛있어서 이교도적 음식으로 정하고 서민이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로마인이 먹는 소시지에 들어가는 돼지고기를 서유럽 선주민이었던 갈리아인이 공급했기 때문이다 갈리아인은 떡갈나무 숲에 돼지를 방목하고 로마인에게 배운 방법으로 소시지를 만들었다. 한랭한 기후이기 때문에 곡물의 생산력이 낮은 중세 유럽에서는 겨울에 돼지를 기를 수 없어 11월경에 많은 돼지를 죽여 소금에 절여 고기로 보존하였다 그러나 염장한 고기는 오랜 기간 보존하면 지독한 악취가 나기 때문에 소시지나 베이컨으로 가공할 필요가 있었다. 소시지는 햄과 베이컨을 만들고 남은 고기를 이용했기 때문에 서민에게 더욱 친숙한 식자재가 되었다 대항해 시대 이후 신대륙으로부터 한랭하고 거친 땅에서도 재배할 수 있는 감자가 들어오면서 소시지와 감자는 독일 가정의 식탁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각 지명을 따라 붙인 수많은 소시지가 존재한다.

     

    한편 대두와 곡류로 만든 장을 조미료로 이용하는 나라는 중국, 한국, 일본의 동아시아 세계뿐이다. 장은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만능 조미료로서 다양한 요리의 맛의 기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원래 장은 조미료가 아닌 소금을 첨가하여 고기와 생선의 부패를 억제하고 발효시켜 만든 반찬이었다. 여기에 차츰 소금뿐만 아니라 후추도 첨가하고 재료가 콩과 조 보리 밀 등으로 확대되면서 발효 조미료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술을 발효시킬 때 사용하는 누룩이 동아시아 고유의 맛있는 짭짤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중국과 한국 등에 사용하는 누룩은 곡류를 물에 반죽한 생지에 곰팡이를 착생시킨 떡과 같이 단단한 떡누룩(병국)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떡누룩이 아닌 증자에 곡물에 나는 흩임누룩(산국)을 사용한다. 한편 중국에서는 콩, 곡류, 고기, 어패류 등을 발효시켜 만든 식품과 조미료를 모두 장이라고 부른다. 발효식품의 총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본의 간장은 새로운 조미료로 된장과 비슷한 것이 장이며 재료에 따라 각각의 맛과 향미가 있다. 장은 고대 요리에서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름에 장군 장이라는 한자가 붙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 전인 주나라 시대의 중국에서는 조의 누룩을 사용해 고기와 생선 등의 장을 만들어 반찬으로 하였다. 당시의 장은 야생 동물, 가축, 생선의 젓갈이었으며 살과 뼈를 으깨 항아리에 다음 후, 소금과 후추를 더해 숙성시킨 것이었다. 바로 육장과 생선장이다. 조미료라고 하기보다 오히려 반찬에 가까웠다. 장의 종류는 매우 풍부했다. 주례에 의하면 왕의 식탁에 나열된 장이 120종류에 이르렀다. 공자의 논어에서도 요리에 어울리는 장이 없으면 먹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식사에서 장을 빼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소금과 함께 사용된 누룩이 고기와 생선의 감칠맛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중국 전한 시대에는 대두와 밀가루 등을 원료로 하는 곡장도 만들었다. 노란콩의 황장과 밀가루로 만드는 춘장 등이 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고기와 생선 등 재료를 부식시킨 장의 모습은 사라지고 대두를 사용한 조미료인 황장, 춘장, 두반장 등 된장과 비슷한 조미료가 중심이 되고 있다

     

    일본에는 아스카 시대에 대두나 곡류에 소금과 누룩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장의 제조방법이 전달되었다. 아스카 시대에 제정된 다이호 율령(701)에서는 미소라는 대두 발효 식품의 이름을 발견된다. 한편 된장은 담백한 단맛을 가진 쌀밥과 잘 어울리는 짠맛 조미료로 보급되었다. 일본에서 된장은 처음에 밀조 또는 고려장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 장을 밀조(미소)라고 했기 때문에 된장을 의미하는 미소라는 일본어는 조선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스스로를 칭찬하는 자화자찬을 집에서 직접 만든 된장의 맛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에 비유하여 수제미소라고 표현한다. 다른 식자재에 맛과 향이 깊게 배어 훌륭한 조화를 연출하는 된장은 각 지역에서 제조되면서 다양한 된장 문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한편 간장은 된장에서 파생된 조미료로 여기에는 액체가 들어간다. 먼저 대두를 삶고 그 물을 약한 불로 계속 조려 농축시킨 것이 간장이었던 것 같다. 후한 말기에서 송나라 시대에 걸쳐 된장에서 배어 나오는 국물을 이용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된장을 제조할 때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간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독자적인 조미료로 취급하였다. 간장은 생선의 생식이나 냄비를 사용한 국물 요리에 적합했다. 일본에서는 짠맛을 소금보다 간장과 된장에 의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16세기에 중국의 간장 제조법이 일본에 전해졌는데 간장이라는 단어는 무로마치 시대 중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대두로 만든 간장은 일본을 대표하는 짠맛 조미료로서 메밀국수, 가락국수, 초밥, 튀김, 어묵 등의 맛을 완성하고 있다. 중국의 장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는 간장과 된장은 물론 쌀, 보리에 고추와 누룩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고추장이 있다. 이 세가지 재료에 마늘, 고추, 참깨 등을 추가하면 한국 요리의 기본적인 조미료가 된다. 일본의 간장은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콤프라 간장이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건너가 세계적인 조미료의 지위를 획득해 나갔다. 그리고 20세기에 세계적인 조미료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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