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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유행을 이끈 출판 기획자인 세책점주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2. 27. 03:20
쾌가에서 깨끗이 베께 쓴 소설을 빌려주는 값을 받아 이익으로 삼았다. 지각이 부족한 부녀자가 비녀와 팔찌를 팔거나 빚을 내면서까지 다투어 빌려 그것으로 긴긴 하루를 보냈다 - 체제공 <번암집> - 17세기 후반은 상업이 크게 활기를 띠며 시장에서 다양한 물품이 거래된 시기다. 소설책 역시 사고팔았다. 소설책을 전문으로 베껴 쓰는 필사업자가 나타났고 대여료를 받고 빌려주는 세책점이 서울 곳곳에 들어섰다. 도성 안에만 열다섯 곳이 성업했다. 세책점주는 책을 빌려주고 대여료를 받는 세책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책과 목록을 들고 외판하는 책쾌와 달리 세책점주는 깨끗이 필사한 소설책을 갖춰 놓고 손님을 기다렸다. 독자를 매료시킬 작품을 골라 구비해야 했으므로 서책점주는 작품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과 유행을 읽는 감각이 필요했다. 한권짜리 작품을 여러 권으로 나눠 필사하고 결정적 장면에서 다음 권으로 넘겨 독자가 계속 빌리게 만들었다. 세책점주는 출판 기획자이자 편집자였다
세책점 소설책이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지 정조 때 좌의정을 역임한 체제공은 부녀자들이 빚을 내 소설책을 빌려 본다며 우려했다. 실학자 이덕무는 소설책을 빌려 보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이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여료는 작품에 따라 달랐다. 짧은 소설은 권당 2문을 받기도 했다. 조선 후기 서울 임노동자 품삯이 25문 가량이었다. 유만주는 여덟 식구 1년 쌀값이 쉰여섯 냥이었다고 했다. 네 식구를 기준으로 삼으면 하루치 쌀값은 7.6문꼴이다. 짧은 소설 한 권, 긴 소설 한 권을 빌리면 그날은 온 식구가 쫄쫄 굶어야 한다. 책 대여료로 2문 혹은 5문은 상당히 비싼 가격이었다. 네 식구 하루 쌀값이 7.5문인데 책 대여료가 5문이니 이덕무의 우려는 과장이 아니었다.
세책점주는 소설 유행을 일으킨 장본인이었다. 세책점주가 고른 작품은 사대부 여성 사이에서 트렌드가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선교사 해밀턴은 조선 여성이 소설을 탐독했으며 내용을 모르면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회고했다. 세책점주는 가만히 책만 파는게 아니라 감정 노동자였다. 18세기 후반 서울 도성 안팎에 세책점은 서른 곳 남짓 성업했다. 세책점끼리 경쟁하면서 작품도 늘고 책도 좋아진 만큼 독자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독자는 글씨가 조악한 소설을 여러권으로 나누면 욕설을 써서 반납했다. 세책점주는 요즘 말로 악성 댓글에 시달렸다
인기가 많은 책은 여러 사람이 봤으므로 낙서도 많았다. 인신공격, 음담패설은 물론이고 세책점주 어미니까지 욕했다. 여러권으로 나눠 만든 것을 트집 잡기도 했다. 세책점주도 댓글로 응수했다. 다만 간곡한 말투로 고객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착실히 보시고 낙서하지 말라든지, 욕설을 기록하지 마시길 천만 번 바란다고 썼다. 한권으로 묶기에 분량이 길어 어쩔 수 없이 두권으로 나눴노라고 변명도 했다. 벌금을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은 세책점주도 있었다. 낙서를 지울 수 없어 흰 종이를 꼼꼼히 오려 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낙서는 줄지 않았다. 세책점주는 덕분에 책은 수많은 독자를 만났다. 독자도 세책점을 통해 다양한 소설책을 접했다. 세책점주는 서적, 나아가 지식의 다량 유통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었다. 세책점주가 있었기에 사대부 여성은 소설 독서라는 특유의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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