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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합 운수 사업가인 세미꾼에 대해서 알아보면아들을 위한 인문학/조선시대 직업들 2023. 2. 20. 03:22
세마 세필을 내었으니 돈이 얼마나 들었겠니 ? 노자와 함께 열 냥이나 들되 집에 돈이 턱없이 모자라 근이에게 돈을 빌렸단다 - 김성일파 종택 한글 사찰 -1847년 아들에게 보낸 편지다. 세마란 빌리는 말을 가리킨다. 명문 종가에서도 말을 빌리는데 돈이 모자라 근이라는 친척의 신세를 지었다는 것이다. 당시 말은 노비보다 더 비샀다. 노비 한명을 면포 150필 정도에 사고팔았는데 말은 그 세배에 달하는 최대 500필을 줘야 살 수 있었다. 말을 먹이고 관리하는 비용도 들기 때문에 말을 소유하려면 큰 비용을 치러야 했다. 그래서 말이 필요한 이들에게 빌려주는 서비스가 생겨났다. 이들을 세마꾼이라고 하였다. 지금의 렌터카로 조선판 종합 운수 사업가라고 하겠다
왕실 기록에는 궁녀들이 궐 밖으로 나가거나 물건을 옮기는데 세마를 이용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여강 이씨의 사례처럼 양반가에게도 세마는 섣불리 쓰기 어려웠다. 여강 이씨가 쓴 열냥은 서울의 여섯간짜리 초가가 스무냥가량이었으니 집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말을 빌리려는 수요가 늘어나자 적지 않은 규모로 말을 관리하고 빌려주는 가계인 마계전이 호황을 누렸다. 여강 이씨의 또 다른 편지에는 3천냥을 들여 서울에 마계전을 차리려는 동생을 뜯어말리는 내용이 보인다. 당시 서울의 기와집이 300냥이었으니 마계전은 기와전 10채값이 든다. 세마를 내면 견마잡이라는 말몰이꾼이 따라붙는다.
견마는 문무관에게만 허용하였으나 민간에게도 유행하면서 견마잡이없이는 체면치례를 할 수 없었다. 견마잡이는 목적지까지 손님을 데려다주고 말을 세마꾼에게 돌려주는 일을 했다. 차를 빌리면 내비게이션과 기사가 딸려 오는 격이다. 이들은 가야 할 곳의 지리를 훤히 꿰고 있기에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했다. 문제는 견마잡이가 고삐를 잡고 걸어갔기 때문에 그에 맞춰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학자 박제가는 이를 두고 말의 속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빨리 달릴수록 비싼 말이 다칠 위험이 컸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또한 급한 환자는 세마에 태워 의원에게 보냈으니 구급차 역할까지 맡았다. 나라에서 사용하는 역마가 부족하거나 북경으로 사행을 떠나는 경우에도 세마꾼에게 말을 빌렸다. 기술이 발전해서 조만간 자율 주행 자동차가 상용하게 되면 사람이 운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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