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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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7) 기다림 / 말세의 희탄 / 양지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6. 20. 03:35
천 년을 한줄 구슬에 꿰어오시는 길을 한 줄 구슬에 이어 드리겠습니다하루가 천 년에 닿도록길고 긴 사무침에 목이 메오면오시는 길엔 장미가 피어 지지 않으오리다오시는 길엔 달빛도 그늘지지 않으오리 먼 먼 나라의 사람처럼당신은 이 마음의 방언을 왜 그리 몰라 들으십니까 ?우러러 그리움이 꽃 피듯 피오면그대는 저 오월강 위로 노를 저어 오시렵니다 감추인 사랑이 석류알처럼 터지면그대는 가만히 이 사랑을 안으려나이까 ?내 곁에 계신 당신은 온데어이 이리 멀고 먼 생각의 가지에서만사랑은 방황하다 돌아서 버립니까 ? 저녁의 피묻은 동굴 속으로아, 밑 없는 그 동굴 속으로끝도 모르고끝도 모르고나는 거꾸러지련다나는 파묻히련다가을의 병든 미풍의 품에다아, 꿈꾸는 미풍의 품에다낮도 모르고밤도 모르고나는 술 취한 몸을 세우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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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6) 알수 없어요 / 푸른 오월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6. 13. 03:29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검은 구름의 터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누구의 입김입니까 ? 근원을 알지는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누구의 노래입니까 ? 연꽃 같은 발꿉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정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거름이 됩니다그칠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청자빛 하늘이육모정 탑 위에 그린 듯이 곱고연못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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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5) 선술집 / 발자국들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6. 7. 03:35
높은 언덕 꼭대기 밑에서나는 선술집을 하겠다거기서 회색 눈을 가진 모든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도록 거기엔 먹을 것들이 충분히 있고마실 것들이 있어, 어쩌면 그 언덕으로올라오는 모든 회색 눈의 사람들에게추위를 녹여 주리라 거기서 나그네는 푹 잠들어그의 여행의 끝을 꿈꿀 것이고그러나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사그라지는 불을 손보리라 그대 발자국들이성스럽게, 천천히내 조용한 침실을 향하여다가오고 있네 순수한 사랑이여신성한 그림자여숨죽이듯 그대 발걸음 소리는 정말 감미롭구나신이여 !분간할 수 있는 나의 모든 재능은맨발인 채로 나에게 다가온다오 내밀어진 너의 입술로일상의 내 상념을 진정시키려타오르는 입맞춤을 미리 준비한다 하여도 있음과 없음의 부드러움그 애정의 행위를 서둘지 마오나 기다림으로 살아왔으며내 마음은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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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4) 인생예찬 /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엽서 / 첫사랑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5. 30. 03:28
슬픈 사연으로 내게 말하지 말라인생은 한갓 헛된 꿈에 불과하다고 잠자는 영혼은 죽은 것이니만물의 외양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인생은 진실이다인생은 진지하다무덤이 그 종말이 될 수는 없다 너는 흙으니 흙으로 돌아가라이 말은 영혼에 대해 한 말은 아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또한 가는 길은향락도 아니요, 슬픔도 아니다저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낫도록행동하는 그것이 목적이다, 길이다 예술은 길고 세월은 빨리 간다우리의 심장은 튼튼하고 용감하나싸맨 북소리처럼 둔탁하게무덤 향한 장송곡을 치고 있으니 이 세상 넓고 넓은 싸움터에서발 없이 쫓기는 짐승처럼 되지 말고싸움에 이기는 영웅이 되라 오늘은 서늘한 바람이 불며틈새마다 흐느낍니다조금 전만 해도 꿀이 있던초원은 서리에 흠뻑 젖었습니다 창가에 마른 잎 하나가 스쳐갑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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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3) 먼나라 / 차라리 침묵하세요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5. 23. 03:43
나의 괴로움은단순한 것이다먼 나라에서 온 짐승을 기르듯별로 연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시는단순한 것이다먼 나라에서 온 편지를 읽듯별로 눈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기쁨과 슬픔은더욱 단순한 것이다먼 나라에서 온 사람을 죽이듯별로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랑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말아요마치 벌레가 나무를 갉아먹듯난 그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고 있어요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난 알아요당신의 심장이 다른 연인의 곱슬머리로칭칭 감겨있음을그것이 저의 머리카락이라고 둘러대지 말아요난 믿지 않아요, 당신의 말은 그대의 말은 항상갈대숲과도 같아요당신은 모자를 눌러쓰고코트에 얼굴을 파묻은 채서둘러 그 뒤로 숨어 버리곤 하지요하지만 난 당신을 보고 있어요그 말 뒤에 숨어있는당신을 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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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2) 이별 후에 / 나의 기도 / 순수의 노래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5. 16. 03:32
사랑스런 여인이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그가 배신했음을 뒤늦게 알았을 때무슨 주문으로 그녀의 우울함을 달래주고무슨 재주로 그의 죄를 씻어줄까 그의 죄를 가리고그의 수치를 가릴 단 하나의 재주는그에게 뉘우침을 주고그의 가슴을 아프게 후벼줄 단 하나의 재주는죽는 것뿐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칭찬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명예로워지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신뢰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인기를 누리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를 구하소서 굴욕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소서멸시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소서비난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소서중상모략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소서잊히는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소서오해받는 두려움에서 나를 구하소서조롱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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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에 장미 지듯이 / 사랑의 시장 / 선물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5. 9. 03:23
내안에 나를 괴롭히는 불길 하나 키우나니가슴이 아프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즐겁구나이토록 즐거운 아픔이어서 사랑도 하는 것을 그 아픔을 버려야 한다면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리 혀나 그대는 알지 못하네, 슬퍼하는 이 마음을내 혀 말하지 않고 내 눈빛 내색하지 않으니한숨도 눈물도이내 아픔을 드러내지는 않겠지만그래도 이슬에 장미꽃 지듯이말없이 지고 마는 안타까움 사랑의 시장, 그 따스한 밤은장이 서는 날보다 더 붐빈다등도 없고 노점상 불빛도 없고단지 말만 있을 뿐알고 있으면서도어색한 우리는 친구가 되네한쌍, 한쌍 그리고 또 한쌍 꽃봉오리 같은 너, 꽃과 같은 나별빛을 그리다가 이만큼 그리움만 키웠나산도 누워버리고 나도 눕는다 봄밤은 부드러운 향기를 퍼뜨리고숨이 차도록 너를 안는다아침이 밝아 숲의 새가 지저귀면풀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