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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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34) 눈 오는 밤에 / 점경 / 방랑기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5. 1. 16. 03:00
오누이들의정다운 얘기에어느 집 질화로엔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는 불씨를 헤쳐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오늘 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오누이들의정다운 얘기에어느 집 질화로엔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흰 장미 속에앉아 있었던흰 나비가꽃잎처럼하늘하늘바람에 날려떨어질 듯 떨어질 듯투명한 햇살 속을돌고 돌더니훌쩍 몸을 날려 울타리를 넘는다- 이 세상 하직길에아쉬움만 남기고차마 돌쳐서지 못하는마지막 몸 집인 양 숭가리 황토 물에 얼음이 풀리우면반도 남쪽 고깃배 실은 낙동강이 정이 들고 산마을에 황혼이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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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33) 말은 죽은 것이라고 / 삼월의 노래 / 하늘의 융단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5. 1. 9. 03:00
말을 하면 그 순간말은 죽은 것이라고어떤 이들은 말한다 나는 말들이 막살아나기 시작한다고 말한다말은 한 그 날부터 닭이 운다시냇물은 흐르고새떼 재잘대며호수는 반짝이는데푸른 초원은 햇볕 속에 잠들었다 늙은이도 어린이도젊은이와 함께 일할풀 뜯는 가축들은모두 고개도 들지 않구나마흔 마리가 마치 한 마리인 양 패배한 군사처럼저기 저 헐벗은 산마루에병들어 누웠는데이랴이랴, 밭 가는 아이 목청 힘차구나 산에는 기쁨샘에는 생명조각구름 두둥실 떠 흐르는저 하늘은 푸르름만 더해 가니비 개인 이 날이 기쁘기만 하네 금빛 은빛 무늬 든하늘의 수놓은 융단이밤과 낮 어스름의푸르고 침침한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그대의 발밑에 깔아 드리련만 나 가난하여 오직 꿈만을 가졌기에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았으니사뿐히 밟으소서내 꿈 밟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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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32) 침묵의 색 / 무음으로 피는 꽃 / 경계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5. 1. 2. 03:00
깃털 하나 빙그르르 떨어지자활유법을 펼치는 산까지 울음그래 힘들지 ? 쫓빛 공감이다가지 끝 앉아 내려보는 햇살을조롱으로 오인한 바람이 씩씩거리자꿩 한 쌍 푸드덕 녹색 침묵을 깬다L사장과 H마담의 파일은 검정그들의 침묵을 파악하기 어렵다남들이 간음이라고 비난하지만사랑이라 주장하는 눈물까지 포용하는신의 침묵 주황색이다바람과 숨바꼭질하다 떨어진 단풍흥건한 피에 넋 놓고 우두커니 서 있는나무의 침묵 무채색이다 피고 지는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얼마 남지 않았다고 혼잣말하는 어머니봄 떠난 지 오래인 줄 알면서꽃 피지 않는다 속앓이다 꽃들을 밀어 올리는 꽃대의 명치 아리다꽃샘추위를 견디어야 봄이 오는 것을한꺼번에 그 많은 꽃 피울 수 없음을꽃이 저절로 피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그래서 그랬을 거니 짐작하며스스로 꽃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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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30) 향미사 / 물레 / 모란이 피기까지는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12. 19. 03:10
향미사야너는 방울을 흔들어라원을 그어 내 바퀴 삥삥 돌면서요령처럼 나는 방울을 흔들어라 나는 추겠다, 나의 춤을 !사실 나는 화랑의 후예란다장미 가지 대신 넥타이라도 풀어서 손에 늘이고내가 추는 나의 춤을 나는 보리라 달밤이다끝없는 은모랫벌이다풀 한 포기 살지 않는 이 사하라에서누구를 우리는 기다릴 거냐 향미사야너는 어서 방울을 흔들어라달밤이다끝없는 은모랫벌이다 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사람의 한 생은 시름에 돈다오 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외마디 겹마리 실마리 풀려도꿈 같은 세상은 가두새 얽힌다 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사르릉언제는 실마리 잠자던 도련님인제는 못 풀어 날 잡고 운다오 물레나 바퀴는실실이 시르렁원수의 도련님 실마리 풀어라못 풀 걸 왜 감고 날다려 풀리나 모란이 피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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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29) 행복한 혁명가 /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위험천만한 얼굴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12. 12. 03:00
쿠바를 떠날 때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씨를 뿌리고도열매를 따먹을 줄 모르는바보 같은 혁명가라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열매는 이미 내 것이 아닐뿐더러난 아직 씨를 뿌려야 할 곳이 많다고그래서 나는 행복한 혁명가라고 당신을 사랑했습니다그 사랑은 아직도내 마음속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 사랑으로 인해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슬퍼하는 당신의 모습을절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말없이그리고 희망도 없이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때론 두려워서때론 질투심에 괴로워하며오로지 당신을 깊이 사랑했습니다 부디 다른 사람도나처럼 당신을 사랑하길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라는 달콤하고위험천만한 얼굴이 무척이나오랜 세월이 흐른 후 어느 날 저녁 내게 나타났지그것은 활은 가진 궁사였을까 ?혹은 하프를 안은 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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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28) 단풍 또는 낙엽의 시간 / 겨울 연못 / 사랑의 건축학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12. 5. 03:00
해의 기울기가 어둠 쪽으로 기울자혈관의 수액이 떨켜로 모여잎들이 생장과 분화를 멈춘다수분 부족으로 가려운 몸이 안타까워바람이 긁어주자 파르르 떤다 눈비에 휘면서도 꺾이지 않고키를 키워 높게 멀리 보다가밭밀을 내려보니 현기증 난다 가야 할 때 가벼워지려 털어내고모양이라도 별로 연출하고 싶어하늘을 움켜쥐던 손가락 피자땅에 볼 비벼 작별을 고하는 잎새들내 마지막도 저리 고운 빛일까 ? 달거리 하다 피 묻은 옷을나뭇가지마다 걸어놓은 여자를그윽하게 내려보던 하늘이물 위에 햇살을 톡톡 터트린다바위틈에 끼어 굽은 허리와 멍든 힘줄은영역을 지키기 위해 타고난 숙명이다산 그림자가 불안한 새 떼의 울음소리가심상치 않은 징조를 예고한다움직임이 둔한 물 먹은 이파리들제 새끼처럼 핥아주는 햇살의 귓볼을사정없이 잡아당기는 바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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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27) 그리움은 나의 숙명 / 장미 잎사귀 / 그대가 있기에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11. 28. 02:59
그리움은 나의 숙명나는 그리움의 계곡 한복판에 홀로 서 있는 외로움 성기묘한 현악기의 울림이부드러이 그 성을 에워싸고 있다 말해다오어두운 성 깊숙한 곳에서 탄식하는 파도여너는 어디서 온 것인지너 역시 나처럼 꿈꾸는 나날을 노래하고잠들지 못하는 밤을 노래하는가 비밀의 현으로부터 울리는한숨과도 같은 그 영혼은 누구인가짙은 벌꿀의 향기처럼 황홀한황금빛 들판으로 향하는가 작렬하던 태양도 스러져세월이 나를 지치게 하여도장미는 여전히 향기를 내뿜고추억은 속삭이듯이 가슴속에 새겨진다 너의 노래를 들려다오, 비밀의 현이여꿈꾸는 성에 너와 함께 머물고 싶다 그리움은 나의 숙명나는 그리움의 계곡에 홀로 서 있는외로운 성 장미 잎사귀 노랗게 시들어분수문에 파르르 떨어질 때고요히 들리는 갈피리 소리서글픈 마을을 더하여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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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26) 벌거숭이의 노래 / 예감의 새 / 별의 아픔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11. 21. 03:12
나는 벌거숭이다옷 같은 것은 나에게 쓸 데 없다나는 벌거숭이다제도 인습은고인의 옷이다나는 벌거숭이다시비도 모르고 선악도 모르는 나는 벌거숭이다. 그러나 나는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는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썩은내가 물씬물씬 나는 구도덕에 코를 박은본능의 폭풍 앞에 힘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나는 어린 풀이다나는 벌거숭이다나에게는 오직 생장이 있을 뿐이다태양과 모든 성신이 운명하기까지,나에게는 생명의 감로가 내릴 뿐이다온 누리의 모든 생물들로 더불어나는 영원히 생장의 축배를 올리련다 그리하여 나는 노래하려 한다만물의 영장이라는 감투를 쓴 사람으로부터똥통을 우주로 아는 구더기까지그러나 형제들아내가 그대들에게 이러한 노래를서슴지 않고 보내는 것을 기뻐하라새로운 종족아, 나의 형제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