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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28) 단풍 또는 낙엽의 시간 / 겨울 연못 / 사랑의 건축학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4. 12. 5. 03:00
< 단풍 또는 낙엽의 시간 - 전길중 >
해의 기울기가 어둠 쪽으로 기울자
혈관의 수액이 떨켜로 모여
잎들이 생장과 분화를 멈춘다
수분 부족으로 가려운 몸이 안타까워
바람이 긁어주자 파르르 떤다
눈비에 휘면서도 꺾이지 않고
키를 키워 높게 멀리 보다가
밭밀을 내려보니 현기증 난다
가야 할 때 가벼워지려 털어내고
모양이라도 별로 연출하고 싶어
하늘을 움켜쥐던 손가락 피자
땅에 볼 비벼 작별을 고하는 잎새들
내 마지막도 저리 고운 빛일까 ?
< 겨울 연못 - 전길중 >
달거리 하다 피 묻은 옷을
나뭇가지마다 걸어놓은 여자를
그윽하게 내려보던 하늘이
물 위에 햇살을 톡톡 터트린다
바위틈에 끼어 굽은 허리와 멍든 힘줄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타고난 숙명이다
산 그림자가 불안한 새 떼의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은 징조를 예고한다
움직임이 둔한 물 먹은 이파리들
제 새끼처럼 핥아주는 햇살의 귓볼을
사정없이 잡아당기는 바람
조현병을 앓는 불임의 여자다
물고기 비늘이 점묘화로 찍힌
살얼음 자궁을 힘없이 여닫는 연못
온종일 앓은 소리다
< 사랑의 건축학 - 전길중 >
말없어도 표정과 행동으로 교감한다
입구는 하난데 출구가 여럿인 꽃밭이
꽃과 나비의 놀이터라고 단언할 일이 아니다
다 안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
출신과 조건에 구애됨 없이
태생이 다른 유형의 6과 9로 만나
0으로 시작하여 무한대로 이어가려고
부족함을 채우고 넘친 부분은 깎아내며
응응하며 서로 맞춰간다
별 하나에 같은 꿈을 심어놓고
비바람이나 혹한에도 흔들림 없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해
적재적소에 알맞은 색과 모양으로
새로운 건물을 세우는 건축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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