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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 다빈치 미술세계아들을 위한 인문학/미술 2021. 2. 7. 02:09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시대에 인체 해부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했던 융합형 창의적 인물로 그의 작업노트(코덱스)는 37년간 3만장을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인체해부학, 낙하산, 비행기 등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값을 347억으로 보고 있다. 인류가 그를 더 빨리 발견했으면 과학기술은 250년 앞설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그를 전세계적으로 창의적 인물 1위로 꼽고 있다. 다빈치는 1452년 이태리 피렌체에서 변호사 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났고 그는 자연을 벗삼아 스케치활동을 하며 지냈다. 초기에는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의 후원이 없어서 빛을 보지 못했으며 그의 작품도 20편 밖에 안되었다. 끈기없고 쉽게 싫증나는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가라는 오해도 있으나 그는 호기심 많고 완벽주의자로 평가되어 완성된 작품이 적었다고 본다. 다빈치는 이태리 밀라노로 옮겨와 그라치 수도원에 그 유명한 최후의 만찬을 그렸는데 이는 원근법을 통한 가상현실과 같이 그렸다. 그 작품은 수도사들이 수도원 식당에서 예수님과 만찬하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그렸다. 이작품은 기독교가치와 예술적가치가 상존하는 연극적 요소가 있다고 평가하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제자들의 감정을 리얼하게 표현하고 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한 말인 내 제자중에 한사람이 나를 팔아먹을 것이다라는 말에 제자들의 다양한 표현을 그리고 있다. 옆에 그려진 요한은 슬쁜 표정을 짓고 베드로는 그게 누구냐하는 급한 성격을 표현했고 유다는 돈자루를 쥐고 있어 들킨 놀란 표정으로 얼굴을 어둡게 표현하는 등 당시 상황을 가상현실로 느끼게 그리고 있다. 최후의 만찬은 벽에 유화로 그려져서 수도원이 습해서 훼손이 되어 20년간 복원작업을 하고 11번이나 붓칠을 했다고 한다. 원본을 본 사람은 몇 안되고 디지털로 재현한 것을 볼 뿐이라고 한다. 다빈치의 또 하나 유명한 작품인 모나리자는 고향인 피렌체로 돌아와서 그린 그림이다. 모나리자가 유명한 이유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절정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즉 귀족계급이 아닌 상인계급 여자를 스투마토기법(자연처럼 경계없이 손이나 헝겊으로 흐리게 지우는 기법)으로 고급 장식품 없이 인간내면의 아름다움을 수수하게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리자부인은 정면을 응시하며 감상자에게 친근하게 대화를 걸듯이 양끝의 입술이 가볍게 올라가 웃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크 중개상인 남편이 유언장에는 그 그림을 평하기를 영혼은 귀족적이며 내면은 도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 그림은 주문자에게 주지 않고 간직하다가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의 흠모를 받아오다. 1519년에 죽을 때 프랑스에 묻어달라고 말하고 그 작품이 그 곁에 있어 지금 루브르박물관에 안장되고 있다. 한해 1천만명이 찾아오는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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