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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폴레옹은 독재자인가 영웅인가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1. 30. 03:09

    1769년에 이태리 제노바 공국의 영토였다가 나폴레옹이 태어나기전 1년전에 프랑스의 영토가 된 코르시카섬에서 사치과 쾌락을 즐겼던 하급법률가인 아버지와 사치와 음란했던 13명의 아이를 낳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나폴레옹은 지기 싫어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매맞아도 울지는 않았다고 한다. 귀족출신인 아버지 덕분에 10살 때 상파뉴 하급군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시골섬 소년으로 왕따가 되어 친구도 못 사귀었다. 오로지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 독서에 열중하여 나중에 보고서를 잘 쓰는 대중연설가가 되었다. 특히 수학을 잘하여 포병부대에 배속하여 현격한 공로로 지휘관의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왕립군사학교 특기생으로 입학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시골출신으로 귀족과 혈통이 있는 학생을 경멸하였다. 16세에 소위로 입관하여 1789년 프랑스대혁명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그는 왕당파가 영국을 끌어들여 혁명파와 싸운 툴롱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지형을 잘 파악한 보고서를 그 당시 실력자인 로페스피에르의 동생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를 승리로 이끌어 24살에 대위에서 포병대지휘관으로 고속승진하기도 하였다. 한편 로페스피에르는 루이16세 왕을 단두대로 죽인 자코뱅의 급진주의자이나 원래 사욕이 없고 완전평등과 이상사회를 이룩하려고 하였으나 경제가 혼란과 일부세력의 반발로 반대로 단두대에 처형되는 불운을 겪었. 나폴레옹은 새로운 후원자 폴바라스 총재에 접근하여 자기 애인 조세핀을 바치고 1795년 왕당파의 반란에 폴리라스 총재는 나폴레옹에 구원을 요청하자 그는 포병부대로 왕당파 무리를 박살내고 26살에 파리총사령관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6살 위인 조세핀은 미망인으로 얼굴은 예쁘지 않았지만 여성스럽고 성적매력이 있고 미소와 우화한 옷과 보석장식을 좋아했다고 한다. 일화에 의하면 조세핀은 결혼 첫날 나폴레옹에게 개와 같이 자야한다고 말하자 나폴레옹이 싫어하자 개가 엉덩이를 물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급한 성격이라서 조세핀은 다음날 친구에게 그는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알프스를 넘어 이태리를 공격할때에 다비드화가가 그린 넘어질 듯 서 있는 백마를 탄 그의 모습은 사실 노새를 타고 갔다고 전한다. 여기에서 내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말이 전해진다. 영웅전에서 카르타고의 코끼리 타고 알프스산을 넘어간 한니발을 연상하게 하고, 이집트원정에서 과학자와 역사가를 대동한 것은 알렉산더를 모방하였고, 파리의 개선문도 고대로마를 딴 것이라고 보고 있다. 1799년 프랑스에서 나온 개념인 쿠테타를 나폴레옹이 일으켜서 30세에 통령이 되고 180435세 국민투표로 황제에 등극했다. 교황을 즉위식에 초청했는데 왕관을 빼앗아 자기가 스스로 씀으로 자기 스스로 황제가 되었음을 알렸다고 한다. 나폴레옹은 근대적인 제도와 나폴레옹법전으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사유재산보장을 마련하여 근대법전의 기초를 세웠다. 프랑스혁명의 계승자로 주장하였으나 자기 형제를 왕으로 세우고 강력한 검열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신자유를 억압하는 독재자라고 평하기도 한다. 그래서 베토벤도 나폴레옹 독재에 실망하여 제3번 교향곡을 보나파르트 이름이 아닌 영웅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전유럽의 석권하였으나 영국을 차지하지 못하자 넬슨제독이 활약한 트라팔가해전에서 패하자 대륙봉쇄령을 하였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상품 생산량이 많고 이를 소화하는 식민지국가가 많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고 해전에 능해 점령은 못하였다. 대륙에서는 대륙봉쇄령을 어기고 러시아가 영국과 교역을 하자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응징하기 위해 1812년 모스크바 침입을 강행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식량을 불태우고 도망가고 추위도 심해지는데 프랑스군은 4일간 식량만 가지고 가서 현지조달 방식으로 군량을 조달했다. 허기와 탈진으로 60만의 프랑스 군대가 1만으로 돌아와 러시아원정이 실패하였다. 1813년 라이프찌히전투에서도 왕정복구를 주장하는 대유럽동맹군이 승리하여 1814년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입성하였으나 1815년 워털루 7차 동맹군에 패하여 영군군이 점령한 세인트헤레나섬에 유배되어 52세 위암으로 사망했다. 1840년 유해는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지금 프랑스에서 제일 사랑하는 인물 1위로 나폴레옹을 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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