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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차 중동전쟁과 걸프전에서 미국의 개입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2. 26. 03:45

    4차의 중동전쟁의 원인은 이스라엘의 시온니즘에서 발생 원인이 있는데 시온은 예루살렘의 산으로 옛땅으로 돌아가 유대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유대로마전쟁으로 유대인이 옛땅을 잃어버리고 유럽 각지를 헤매다가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유대인 드레퓌스가 누명으로 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프랑스를 비난하며 유대민족의식이 높아지고 오스만 제국에 지배에 의해 아랍민족주의가 성립되면서 아랍과 유대인간의 민족 갈등이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의 도움을 받은 서방세력은 그들의 땅을 인정하여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분할 점령을 승인하였다. 이집트 등 아랍세력이 반발하여 1948.5.14.일 이스라엘 건국 다음날 전투기로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이 이스라엘 지역으로 공격하였다. 미국의 도움을 받은 이스라엘이 승리하여 1949,2월 평화조약이 조인되고 제1차 중동전쟁은 종결되었다. 2차 중동전쟁은 1952.7혁명에서 이집트 나세르가 집권하고 혁명 4주년을 기념하여 수에즈운하를 국유화선언을 하였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권한을 박탈하자 1956.10월 이스라엘과 비밀조약을 체결하고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하고 영국과 프랑스가 측면지원 하였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를 지나 수에즈로 진격하여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이에 영프가 침략전쟁을 하였다고 비난한 미국은 경제적으로 압박하여 영프는 수에즈의 권한을 포기하게 되었다. 미국개입으로 나세르는 아랍민족주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결과가 생겼다. 3차 중동전쟁은 1964년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탄생하여 아랍권의 게릴라 활동을 강화하였다. PLO는 자기 힘으로 나라를 되찾자고 총을 들었고 이집트와 요르단은 측면에서 도와주었다. 1967(6일 전쟁) 나세르는 시나이반도를 봉쇄하며 UN평화유지군 철수를 요구하였고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를 공격하여 이스라엘은 시나위반도, 골란공원, 가자지역을 점령하였다. 4차 중동전쟁은 1970년 나세르 사후 사다트가 대통령이 되고 민영화와 친미 우경화로 기울었다. 그러나 1973년 소련도움으로 시나이반도 되찾고자 이스라엘을 공격하였으나 지고 말았다. 1차 석유파동이 1973년에 일어났는데 석유산유국이 석유가격을 70%인상하고 28% 감량하여 석유를 무기로 서방세계와 대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란과 이라크 전쟁이 샤트 알 아랍지역 영토분쟁으로 1980년에8년간 벌인 전쟁이다. 이라크는 아랍계 민족이며 후세인대통령은 수니파이다. 이란은 페르시아계로 시아파로 친미정권인 팔레비정권이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1979년에 이란혁명으로 잡은 집권세력이다. 다양한 원인으로 싸웠으나 서방세력은 이라크 후세인을 지원하였으나 전쟁비용이 바닥이 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하여 UN의 중재로 1988년에 정전협정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라크의 후세인은 이란과 전쟁과 서방 자본의 유입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채무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옆에 있는 서방세력과 결탁하고 있는 쿠웨이트가 석유산유국의 석유정책을 무시하고 석유를 마음대로 생산하였다. 유가가 하락하자 석유를 통해 경제적으로 만회하고자 노력한 이라크 후세인은 이에 대해 앙심을 품고 1990년 쿠웨이트를 침략하였다. 1991년 사막의 폭풍 작전명으로 제1차 걸프전쟁이 일어나 전시장군인 미국의 슈워츠코프 활약으로 이라크를 물리쳤다. 서방세력은 이라크에 대해 무기사찰을 1991년 전쟁에 패한 후 2002년까지 행하였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한다는 첩보를 접한 미국 부시는 후세인 제거계획을 세웠다. 2003년에 제2차 걸프전쟁을 행하였으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실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은 세계여론에서 비난을 받았고 특히 중동에서 입지가 약화되고 이란이 중동의 맹주로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2차 걸프전이 있기 2년전에 2001년에 중동지역에 이슬람혁명을 중시하는 오사마 빈 라덴 소행으로 보이는 미국 무역센터에 테러를 자행한 9.11테러가 행하여졌다. 오사마 빈 라덴은 알카에다 조직의 우두머리도 이 조직은 1979년 아프카니스탄에서 타라키가 쿠테타로 친소정권 수립하자 전통 무슬림이 분노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탄압을 하자 알카에다는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소련은 산악지역의 알카에다의 게릴라전법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89년 소련철수를 하게 하였다. 알카에다 그 배후에는 사우디와 미국이 있었고, 그 후 아프카니스탄에 탈레반정권이 수립되었으나 이들은 알카에다에 우호적이었다. 미국은 9.11테러에 대항하여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자 2001년 미국은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고 친미정권을 수립하였다. 알카에다는 소련에 대항하다가 다시 미국 서방세력에 대항한 이슬람세력이다. 미국이 중동 이슬람세력인 알카에다가 1990년부터 2000년까지 꾸준히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자행하여 미국은 9.11테러를 그들의 소행으로 보고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요구한 것이다. 중동전쟁과 걸프전 그리고 아프카니아전쟁으로 미국을 주축으로 한 서방세력과 아랍세력의 힘겨루기는 단지 영토전쟁과 자유와 평화를 위한 전쟁이 아닌 황금알을 낳는 석유쟁탈전이다. 미국이 석유부국으로 자원의 안정화로 다툼이 줄어든 경향이 있으나 요 몇년사이 이란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심해지고 이란의 석유수출을 차단하는 정책을 펴서 한국도 석유공급에 다소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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