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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적의 역사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1. 19. 11:22

    바다지배는 세계지배로 보고 이는 거의 모든 물자운송이 배로 이동하고 해저케이블로 데이터이동이 98%이고 인공위성과 육로가 2% 정도로 바다의 중요성은 크다. 해적은 술, 춤판, 사탕수수로 만든 럼주인 캡틴규, 보물로 일확천금, 노예판매, 약탈에 반항시 죽음을 나타내는 해골깃발 연상된다. 5천년 전 항해시부터 해적이 발생하고 그리스로마시대 해적들은 노예가 노젓는 갤리선으로 돛으로 항해한 속도가 느린 상선을 약탈했다. 한편 농장주인 로마원로원은 노예을 값싸게 공급받기 위해서 해적소탕에 소극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라센해적은 지중해 시칠리아섬 등에서 1만명 노예를 잡아가서 섬이나 해안인근 도시는 미로인 카스바도시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북유럽의 스칸디나반도에 근거를 둔 바이킹해적은 전유럽을 석권하여 러시아의 슬라브족을 노예로 했다고 해서 노예가 영어로 슬레이브이고 바이킹 후순이 데인(덴마크 왕국), 노르만왕조를(프랑스)세웠다. 바이킹은 농사를 할 수 없었고 장남상속으로 차남은 바다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이 필요했다고 하며 마약성분이 순록의 오줌에 있었다. 롱쉽의 빠른 배를 건조했고 항해술도 뛰어나고 몸이 크고 도끼를 휘두르며 노략질을 했다. 북아프리카 해적으로 후기 사라센해적인 바르바이해적은 동키호테의 세르반테스가 노예가 되기도 했으며 지중해에서 스칸디아반도까지 활동하였다. 16세기 근대해적인 드레이크해적으로 영국 엘리자베스1세가 해적행위를 허가하고 드레이크는 카리브해 근처에서 약탈하여 세금을 바치고 귀족의 칭호를 받기도 했으며 배도 선물 받았다. 아편전쟁처럼 영국은 신사의 나라와 야만의 나라가 공존한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18세기 중엽에는 영국은 스페인과 평화조약을 맺고 해적을 소탕하기도 했으며 미국은 지중해무역 거래를 보호하기 위해 바르바이해적에게 보호세를 내다가 워싱턴이 6개 함선으로 해적을 소탕하였다. 윌리엄 키드 해적선장은 스티븐스의 보물섬으로 알려진 해적이며 보물을 지도에 남기고 숨겼다고 전해진다. 최고의 해적으로 블랙밧트인데 금주해적으로 엄격규율로 유명하고 약탈지역에 관련 전략구상에 해적의 동등한 표결권, 선장은 특혜가 없고, 전리품은 동등하게 분배하고 도망치면 처단하는 규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난폭한 해적으로는 블랙비어드 해적으로 지옥을 보고 싶다고 해서 노예선을 불태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소말리아 해적이 있는데 이들은 아프리카 아덴만에 유럽열강이 참치 등 어족을 남획하고 프랑스는 핵폐기물을 투하하는 등으로 빈곤해져서 해적이 되어 약탈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판 해적은 해커나 벤처기업으로 대박공유를 꿈꾼다고 볼수 있으며 해적은 바다에서의 생의 불확실, 폭풍우와 전염병으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잔인한 약탈과 폭력성이 있었다. 영국은 근대국가의 기초는 드레이크의 근대해적으로 인하여 약탈한 부의 기반과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으로 전환한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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