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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착민을 침범했던 유목민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나 ?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5. 21. 04:59

    인류의 4대 문명은 엄밀히 정착민들의 문명이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인류가 정착해 농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 도시와 국가로 발전해왔다. 지구상에는 황량한 초원지대에서 삶을 이어간 또 다른 인류가 있었다. 이들은 유라시아 대륙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역사의 한축을 담당한 유목민이다. 유목민은 중앙집권적이고 밀집해 사는 정착민과 달리 씨족, 부족 단위로 드넓은 초원에 드문드문 퍼져 살았다. 정착민의 수직적 권력, 착취, 화려함과는 반대로 유목민은 수평적 권력,정복,검소함이 특징이다. 정착민이 자신의 계급으로 불릴 때 유목민은 징기스칸조차 이름으로 불렸다. 정착민이 평야에 성을 쌓을 때 유목민은 불모지에 길을 만들었다. 유목민의 삶은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환경에 대한 투쟁 그 자체이다. 한파와 가뭄이 심해지면 수시로 이동해야 했다. 그렇기에 유목민은 제대로 된 문자나 역사를 남기지 못했다. 정착민의 기록 속에 유목민은 잔혹하고 야만적이고 파괴적이었다. 하지만 유목민은 때때로 역사의 중심에 섰다. 정착민들은 그런 유목민을 신의 채찍이라고 불렀다. 심지어 말을 탄 그들의 모습을 보고 켄타우로스같은 반인반수로 여길 정도였다. 역사에 기마 민족이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17세기 히타이트인과 힉소스인이다. 히타이트는 말과 전차로 바빌로니아를 정복했고, 힉소스는 이집트를 지배하며 바퀴를 전해주었다. 아리아인이 나타나 인더스문명을 정복하고 갠지스 강 유역으로 진출했다. 이들은 기마 유목민으로, 정착 문명의 파괴자로 그려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명의 전파자였다. 기원전 8세기 중앙아시아에 다시 기마민족이 등장해 500여년간 초원을 지배했다. 서양에서는 스키타이로 이들은 초원길을 개척했고 흉노에 청동기 문화를 전했다. 그들의 신출귀몰하는 기마 전술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기원전 3세기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흉노는 수시로 중국의 목을 죄었다. 중국인들은 흉노에게 공주를 보내고 비단, 금은을 바치며 평화를 구걸해야 했다. 흉노의 일파인 훈족이 벼락처럼 나타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게르만족의 이동을 촉발시킨 훈족은 게르만의 서사시 니벨룽겐의 반지에서 훈족의 왕 아틸라를 카리스마 넘치면서 잔혹하고 야만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유목민이 초원을 달렸다면 북구의 바이킹은 바다를 통해 약탈과 정복으로 살아간 민족이다. 뛰어난 조선과 항해술로 바이킹은 서유럽은 물론 콘스탄티노폴리스, 러시아까지 쳐들어갔다 또한 이들은 콜럼버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아메리카 신대륙 땅을 밟고 그린란드, 아이슬란드까지 진출한 모험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11세기 들어 바이킹은 정착민의 문화에 흡수되었다. 바이킹의 부족과 결핍을 약탈이 아닌 교역을 통해 해소하게 된 결과이다. 이제 세계 역사는 정착민의 승리로 귀결되는 듯했고 13세기 초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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