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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어재테크가 유대자본의 밑천으로 최초의 주식회사가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아들을 위한 인문학/경제 2021. 5. 11. 03:30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37만명은 유대인 중 많은 사람이 종교의 자유가 있고, 영국에서 추방당한 동족들이 사는 플랑드르 지방으로 몰려들었다 지금의 벨기에 북부 지역이다. 유대인들은 보석과 무역을 했다. 그러나 용병의 반란으로 유대인들은 암스테르담으로 피신하고 네덜란드의 저지대의 환경에 맞서 다시 시작하고 간척사업을 이루고 무역항을 개발했다. 네덜란드 저지대는 바다보다 4m이상 낮은 소금기가 많은 늪지로 농사짓기 어려워 먹을 것이 귀했다. 그래서 더치페이(Dutch pay)가 생겼는데 자기 먹거리는 자기가 책임진다는 의미에게 나왔다. 그 무렵 네덜란드는 100만명중 30만명이 청어잡이에 올인하고 있었다 그들은 청어를 소금에 절여 절임청어를 만들어 팔었다. 여기에 소금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당시 소금은 북부 독일 한자동맹 무역망을 통해 암염을 공급받았다. 이에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살았던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역의 값싸고 질 좋은 천일염을 암염을 대체하게 하였다. 그로 유대인은 1년이상 보관이 가능한 절임청어를 해군과 상선들에 정기 공급하여 전 유럽에 판매했다. 한편 청어잡이와 포경산업이 호황을 누리다 보니 고기잡이배들이 많이 필요했다. 이에 자연스럽게 조선업이 발전으로 이어져 네덜란드는 선박 수는 2천척이 넘었다. 그 기술은 화물선 제작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네덜란드는 16세 후반에 해운업계를 평정하고 북방무역의 70%을 장악했다. 한편 먼바다로 나가는 해상무역은 매우 위험하고 모험적인 사업이다. 무역선단을 보냈는데 태풍이나 해적 때문에 실패하면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물론 전 재산을 날리고 파산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고안한 것이 주식회사이다. 그 당시에 네덜란드 선주들은 동양을 향한 원양 항해에 나섰다. 이에 영국과 스페인과 경쟁하기 위해 규모가 크고 강한 회사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와 의회가 나서서 하나의 회사로 합병을 유도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다. 이에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선주 각자의 투자로 충당했다. 64톤이 모였고 그래서 근대 최초로 주식회사 개념이 도입됐다 영국 동인도회사의 8배 넘는 대규모 경영을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꽃이라 일컫는 근대적 의미의 주식회사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 뒤 해운업의 발전은 네덜란드를 물류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고 중계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무역업의 발전은 이를 지원하는 금융업과 보험업의 발달을 가져왔다. 그리고 금융의 발달로 화폐가 수백 가지가 유통되어 이에 대한 통일을 위해서 중앙은행 모태 격인 암스테르담은행이 탄생했다. 이는 민간은행이지만 시 정부가 지급을 보증하고 길더화 은행권을 일부 사용이 허락하여 화폐통일을 이루어졌다. 그 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주식을 사고팔수 있는 증권거래소가 1611년에 세워졌다. 결과적으로 청어가 조선업과 해운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중상주의를 활짝 꽃피워 자본주의의 씨앗들을 탄생시켰다. 그힘을 그대로 도버해협을 건너 영란은행을 탄생시켜 산업혁명과 대영제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이어서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권을 차지하며 연준이 탄생하여 지금까지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 자본이 형성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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