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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국 미국을 상징하는 메가시티인 뉴욕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6. 6. 30. 01:08




뉴욕시는 미국 최대의 도시다. 미국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땅값과 물가도 가장 높은 지역이다. 뉴욕시는 미국 동부 뉴욕주에 속하며 대서양에 면한 도시이고 허드슨강과 이스트강 하구의 합류지점에 위치한다. 현재 미국의 인구는 3.3억명으로 거의 90%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의 후예다.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의 값싼 노동력으로 군수산업이나 자동차산업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웠다. 1894년에는 공업생산력 면에서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되었다.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국내총생산은 세계총생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런 미국의 지위는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한편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도착한 후 유럽에 신대륙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다. 다만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이 대륙을 인도라고 믿었다. 유럽 각국은 무역이나 자원을 목적으로 남북아메리카대륙에 앞다퉈 진출했다. 북아메리카 진출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가장 적극적이었는데 네덜란드도 서인도회사를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무역활동에 나섰다. 1625년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맨해튼섬에 진출했다. 이곳을 제 2의 암스테르담이라는 의미로 뉴암스테르담이라 이름 붙이고 비버 등 모피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일설에는 네덜란드인이 당시 맨해튼섬에 사는 원주민에게 24달러 상당의 유리구슬을 주고 양도받았다고 한다. 그 땅에 네덜란드인은 성벽을 쌓았다 이 벽이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된 월스트리트다



뉴욕 깃발 
17세기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영국국교회 신앙을 강요하고 청교도를 박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를 피해 1620년에 영국의 청교도인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북미대륙으로 건너갔다. 1640년 영국에서는 찰스 1세의 전제적인 정치에 인해 청교도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을 주도한 크롬웰은 찰스 1세를 처형하고 왕정을 무너뜨렸다 영국은 일시적으로 공화정으로 이행했지만 크롬웰의 사후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가 즉위하여 왕정으로 북귀했다. 영국의 내정변화와 상관없이 영국은 북미대륙의 식민지화를 계속 진행했고 같은 입장인 네덜란드와 대립하게 되었다. 1664년 영국왕 찰스 2세의 동생 요크가 뉴암스테르담에 군함을 파견했다. 군함을 본 뉴암스테르담의 주민들은 곧바로 항복했고 이 땅은 그때부터 영국령이 되었다. 지명도 요크 공작의 이름을 따서 뉴욕으로 바뀌었다. 1672년 프랑스 네덜란드전쟁이 발발하고 영국이 프랑스 편에 서자 네덜란드는 1673년에 뉴욕을 탈환하고 뉴오렌지로 개명했다 그렇지만 이듬해 영국이 다시 점령했고 웨스트민스터조약에 의해 맨해튼은 항구적으로 영국의 영토가 되었다. 뉴욕시에는 아직도 네덜란드 흔적이 남아 있다. 뉴욕시 깃발의 오른쪽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오렌지색이다. 맨해튼 할렘지구 이름의 유래는 튀르키예어의 하렘이 아니라 네덜란드 이주민 출신지인 할렘이다. 영국은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벌이며 그 비용조달을 위해 식민지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이에 발발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났다.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미국독립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이때 뉴욕은 영국군의 거점이 되었는데 영국 본국과의 왕래하기 편리하다는 입지조건 떄문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아군으로 삼은 미국은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독립을 달성했다. 뉴욕시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은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우호의 증거로 1886년 프랑스가 선물한 것이다. 뉴욕시는 1788년 9월 미합중국의 초대 수도가 되었다. 이후 1790년에 미국 정부는 임시 수도인 필라델피아로 천도했다. 도시간 균형 발전을 위해서였다.

이리운하 



19세기 전반에 금융업이 발달하고 뉴욕시에서는 신교도 중심의 안정된 중류계급 사회가 형성된다. 이와 같은 사회를 배경으로 허드슨강을 거쳐 공업지역인 오대호와 뉴욕항을 잇는 이리운하가 건설되었다 마차보다 편리한 운하의 활용으로 생산품의 수송비용은 대폭 줄어들고 무역액이 증가했다. 또 맨해튼섬에 바둑판 같은 도로망을 건설하는 도시계획도 실행되었다. 1811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뉴욕커라고 칭송받는 드위트 클린턴 뉴욕시장이 시의 인구가 100만명을 넘을 것이라 예상하고 2000여개 이상의 거리구획을 만드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라 12개의 애비뉴와 155개의 스트리트가 만들어져 1835년 뉴욕시는 필라델피아를 제치고 미국 최대 규모의 도시가 되었다. 현재 뉴욕시는 맨해튼, 브루클린, 퀸스, 브롱크스, 스태튼아일랜드 등 5개 구의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자치구들은 1891년에 뉴욕시가 주변 지역을 병합해서 도시영역을 넓혔을 때에 탄생했다. 5개의 구 중에서 맨해튼은 맨해튼 섬의 남측 끝에 있는 지구다. 뉴욕시의 중심이고 뉴욕시 청사 외에 국제연합 본부 빌딩, 센트럴파크,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미국자연박물관, 세계의 교차점이라 불리는 타임스퀘어, 극장가인 브로드웨이와 쇼핑스트리트인 5번가, 세계의 금융과 증권의 중심지 월스트리트, 록펠러센터 등 다수의 명소가 위치한다. 맨해튼에 이처럼 많은 빌딩이 지어진 이유는 지반이 단단해서 고층건물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또 당시 철골구조에 의해 층을 더 높이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공법이 발달한 것도 한 이유다.





맨해튼에서 고층빌딩 건설이 시작한 때는 1900년 전후다. 1920년대 후반에는 그야말로 고층빌딩 건설 붐이 일었다. 1930년대에 높이 283m의 40 월스트리트와 높이 320m의 크라이슬러빌딩이 세워졌고 이듬해에는 높이 443m에 102층 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완공되었다 이는 1972년 세계무역센터가 세워질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뉴욕의 지상에서 빌딩이 난립하는 한편, 1904년에는 땅속에서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인구증가와 더불어 나날이 붐비는 마차들로 도로의 교통정체가 심한 상태였다. 최초의 지하철은 로어맨해튼과 할렘을 잇는 14.6km노선이었다. 현재는 맨해튼을 중심으로 뉴역시 전역으로 뻗은 총 노선 길이가 375km 연간 이용객 17억명의 매머드급 지하철이 24시간 운행되고 있다. 1940년대 이후 새로운 노선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2017년 마침내 세컨드 애비뉴노선이 개통되었다. 이 노선은 1929년에 계획된 것이었으나 대공황과 시의 재정위기로 공사가 무산되어 건설까지 약 90년이 걸렸다. 미국은 20세기에 냉전체제의 종결과 동시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2001년 9월 11일에 일어난 동시다발적 테러사건을 겪었다. 이때 뉴욕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곧 다시 부흥에 힘써 새로운 세계무역센터빌딩을 세웠다. 세계의 수도라는 이름을 가진 뉴욕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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