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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로 전파된 프랑스 문화의 발신지인 파리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6. 3. 6. 01:34

    로마제국
    프랑크 왕국

    에펠탑, 에투알개선문 등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많은 파리에 프랑스인의 미의식을 반영항여 건물 높이와 옥외 광고에 관한 사항까지 거리의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세세하게 규칙을 정해놓았다. 현재의 파리는 20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1구는 센강의 시테섬 서부를 포함한 일대로 파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3세기경 유럽에 정착한 켈트족의 일파인 파리시족이 시테섬에 집락을 형성했다. 그들의 이름에서 파리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고대 로마인은 프랑스를 갈리아, 시테섬 주변을 루테티아라고 불렀는데 기원전 52년에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군이 이 루테티아를 점령했다. 로마인은 이 땅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도로를 부설했다. 한편 동쪽에서 게르만인이 갈리아로 침입해 왔다. 로마 황제의 일족인 율리아누스가 갈리아의 탈환을 위해 파리에 거점을 두고 싸웠다. 이후 율리아누스는 361년에 서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했다. 5세기에 게르만인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황제가 폐위되었다. 이후 갈리아에는 게르만 세력이 뒤섞여 들어왔고 프랑크인을 이끌던 클로비스가 481년에 메로빙거왕조 프랑크왕국을 건국했다. 이 무렵 파리의 인구는 1-2만명으로 유대인이나 시리아 상인과 교류를 했다

    노르만족 이동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대학
    루브르궁궐(박물관)

    프랑크왕국에서는 8세기에 피핀이 왕위에 올라 카롤링거왕조가 시작되었다. 그 아들인 카를대제는 서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했다. 카롤링거왕조는 843년 베르됭조약에 의해 서부, 중부, 동부 등 세 지역으로 분할되었고 이때 성립한 서프랑크왕국이 프랑스의 원형이 되었다. 곧이어 북유럽에서 노르만인 바이킹이 센강을 거슬러 침입해 와 파리의 교회를 파괴하고 약탈을 일삼았다. 987년에 카롤링거 가문이 단절되자 로베르가의 위그 카페가 즉위하여 카페왕조 프랑크왕국을 창시했다. 카페왕조는 파리 센강의 우측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했다. 시테섬의 남동지역에서는 1163년에 노트르담 대성당 건설이 시작되었다. 독특한 두 탑이 있는 이 교회는 천장 높이가 35m인 중세 고딕건축 기준으로는 파격적인 크기의 건축물로 1345년에 완공되었다. 교회는 거대한 규모로 신의 권위를 과시했다. 1180년에 즉위한 필리프 2세는 시내의 도로를 판돌로 깔고 센강 양쪽에 성벽을 건설했다. 또 현재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가 된 파리대학을 세웠다. 그가 건설한 루브르성은 수백년 동안 증개축을 반복했고 16세기 중기에는 르네상스 양식이 화려하고 장엄한 궁전이 되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이 성은 박물관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흑사병
    위그노전쟁

    파리의 인구는 13세기에 이미 10만명에 달했다. 1302년에는 성직자 귀족 평민의 대표들이 모여 세제 등을 논의하는 삼부회가 처음으로 노트르담성당에서 열렸다. 평민 대표도 당당히 참여하게 된 것은 상업이 크게 발달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왕실 및 귀족을 거래 상대로 하는 모직물 상인, 귀금속상, 금융업자 등 정치적으로 유력한 거상이 늘어난 것이다. 1328년에는 카페왕조가 끝나고 발루아왕조가 시작되었다. 9년 뒤 영국과 백년전쟁에서 돌입하면서 프랑스 시민들과 농민들은 무거운 세금과 식량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결국 1358년에 파리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다.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은 116년만인 1453년에 끝이 났지만 기나긴 전란 후에 흑사병까지 유행하면서 중세 말기의 파리는 그야말로 피폐해졌다. 전염병이 창궐한 한 원인으로 열약한 위생 환경 문제를 들 수 있는데 당시에는 오물을 그냥 길거리에 내버렸다고 한다. 16세기 프랑스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문화가 널리 퍼지는 한편 독일에서 활발히 진행되던 종교개혁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후 프랑스의 가톨릭 신도와 신교도(위그노)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면서 결국 위그노전쟁이 벌어졌다. 15728월에 파리에서 신교도가 대량 학살을 당한 성 바돌라매 축일의 학살이 발생했고 종교 간 분쟁은 각지로 확산되었다

     

    베르사유궁전
    프랑스혁명

    정쟁 때문에 암살당한 앙리 3세의 뒤를 이어 1589년에 앙리 4세가 부르봉왕조를 창시했다. 앙리 4세는 이전부터 공사가 진행되던, 시테섬 서쪽 끝과 오른편 강가를 잇는 석조 다리 퐁네프(새로운 다리)를 완성시켰다. 파리시의 위생환경 개선을 위해 상수도를 정비했다. 16-17세기의 프랑스 국왕은 파리에만 머물지 않고 지방을 순회하면서 생활했다. 각지의 신민에게 왕의 모습을 보여주며 방문지에서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다. 1643년에 즉위한 루이 14세는 자주 정변이나 전란에 휩싸이던 파리를 어릴 때부터 기피했다. 그래서 파리에서 서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베르사유에 새로운 궁전을 건설했다. 루이 14세는 재위 중반까지 루브르궁전에서 정무를 보다가 1680년경부터 정치의 중심을 베르사유궁전으로 옮겨갔다. 이로 인해 왕실과 파리 시민의 일체감은 점차 사라졌다. 파리에서는 1670년에 성벽이 헐리고 루브르궁전의 서쪽 끝부터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상젤리제 거리가 완성되었다. 이듬해에는 국립극장이 문을 열었다. 국왕이 없는 거리에서는 부유한 시민들 사이에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정착했다. 특히 많은 예술가와 학자가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형성되었고 왕후, 귀족과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는 볼테르와 루소의 계몽사상이 확산되었다. 18세기말 파리의 인구는 약 70만명에 달했다. 당시 대외 전쟁과 흉작이 계속되던 탓에 시민들의 조세부담이 가중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결국 1789년에 파리 시민들이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한 일을 시작으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삼부회의 평민대표를중심으로 한 국민회의가 실권을 잡으며 부르봉왕조는 무너졌고 1792년 공화정이 선포되었다. 이때 루브르궁전은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개선문
    최초 백화점

    프랑스혁명 후 파리에서는 급진세력과 왕정복고파에 의한 정변이 반복되었다. 최종적으로 혁명정권과 적대국들을 물리친 나폴레옹이 권력을 장악하고 의회의 지지를 얻어 황제에 즉위했다. 1804년에 프랑스 제 1제정이 시작되었다.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샹제리제 거리에 개선문 건설하여 1836년에 완공되었다. 1814년에 나폴레옹이 실각하자 부르봉왕조가 부활했다. 하지만 왕조는 18307월 혁명으로 다시 무너지고 입헌군주정의 오를레앙왕조가 시작되었다. 이 역시 18482월 혁명으로 무너지고 제 2공화정 시대로 접어든다. 같은 해 12월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년 후에는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어 나폴레옹 3세의 황제로 즉위하여 제 2제정을 시작했다. 나폴레옹 3세는 센주의 지사 오스만에게 대규모 재개발을 맡겼다. 에투알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성으로 뻗은 도로를 만들고 지하에 하수시설을 정비했다. 또 도시경관의 통일성을 위해서 건물 높이를 7층까지 제한했다. 현재 파리의 많은 건물이 100년 이상이 된 가옥으로 제 2제정 시기에 건설된 것이다. 이때 파리시의 행정구를 20구를 정했다. 1850년에는 파리에서 세계 최초의 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또 철기둥과 유리지붕을 이용한 아케이드식의 상점가에서 쇼핑객이 의류와 가구 등의 전시 상품을 보면서 걷는 현대식인 상업지구가 생겼다

    신개선문

    1870년에 발생한 보불전쟁에서 프랑스에서 패배하자 나폴레옹 3세는 물러났다. 종전 직후 혼란 속에서 임시정부 공화정이 들어선 한편 파리에서는 일시적으로 노동자 계급에 의한 지차정부(파리 코뮌)가 탄생했다. 하지만 자치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임시정부를 발전시킨 제 3 공화정이 수립됐다. 이후 1889년에는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계 만국박람회가 열렸다. 이때 7구의 센 강변에 높이 300m가 넘는 에펠탑이 세워졌다. 석조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던 당시에 철골 노출형의 거대한 탑이 공개되자 파리의 경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20세기에 들어서 코코 샤넬이 파리에서 모자가게를 창업해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로 키워나갔다. 또 화가 피카소, 소설가 조르주 바티유 등 많은 문화인이 모여든 덕분에 파리는 전위적인 초현실주의 예술 등 새로운 문화의 발신지로서 그 지위를 확립했다. 전등이 보급되어 에펠탑에 불을 밝혀 아름다운 야경을 연출하여 빛의 도시라는 이름도 얻었다. 프랑스는 1985년부터 파리의 라데팡스 지역에 신개선문 건설을 시작하여 4년 후에 완공했다. 이 구조물은 1989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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