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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세기 세계의 중심이 된 도시인 런던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6. 5. 19. 01:03

    로마제국

     

    영국의 정식 국명은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연합왕국이다 브리튼섬 중남부의 잉글랜드, 북부의 스코틀랜드, 서부의 웨일스, 아일랜드섬 북부의 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연합체가 영국인 것이다. 런던은 연합국가 영국의 수도인 동시에 잉글랜드의 수도이기도 하다. 런던이 영국의 수도가 된 이유는 잉글랜드가 주도적인 입장으로 다른 세 나라를 병합했기 때문이다. 기원전 700년경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켈트인이 후에 런던이라고 불린 이 땅에서 거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브리튼섬 남부에 로마인이 진출하며 정복한 후 각지에 주둔지를 건설하고 방사성 도로를 깔아 마을들을 연결했다. 그 중심이 된 마을이 론디나움이다. 브리튼섬 남부를 흐르는 전체 길이 338km의 템스강 하류 부근에 위치한 곳이었다. 론디니움은 로마군이 브리튼섬에 상륙하기 위한 항구로서, 기원후 43년에 템스강 북쪽의 늪지대를 메워서 건설했다. 론디나움이라는 명칭은 켈트어로 습지의 요새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후 브리튼섬 중남부는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고 브리티나아라고 칭해졌다. 이때 론디니움은 브리티니아에서 생산된 곡물을 대륙으로 보내는 거점이었다. 로마인은 정복지에 자신들의 문화를 보급했다. 그래서 론디니움에 교역을 위한 항만시설뿐 아니라 로마식 공중목욕탕도 건설했다. 5세기 본국의 내분으로 로마인이 철수하자 게르만계인 앵들로색슨족이 바다를 건너왔다. 앵글로색슨족은 브리튼섬 중부와 남부를 지배하며 일곱 개의 왕국을 건설했다. 이 무렵부터 론디니움은 런던으로 불리게 되었다. 9세기경 데인족의 침입을 받아 웨섹스왕국을 제외하고 정복되었다. 웨섹스의 알프레드왕은 데인족의 침공을 저지하고 런던을 탈환했다 후에 알프레드왕의 손자인 애설스탠이 브리튼섬의 중부와 남부를 통일하고 잉글랜드왕의 칭호를 사용했다. 1015년에는 덴마크의 크누트가 이끄는 데인족이 다시 잉글랜드를 정복했고 이듬해 크루트는 잉글랜드왕으로 즉위했다

    웨스트민스터사원

    웨스트민스터궁
    런던

    크루트가 사망하자 애설스탠왕의 자손인 에드워드가 1042년에 왕으로 즉위하고 템스강의 왼편에 웨스트민스터사원을 건립했다. 에드워드왕이 죽은 뒤 1066년에는 프랑스의 노르망디공 기욤이 잉글랜드로 밀고 들어와 월리엄 1세로 즉위했다. 그 결과 잉글랜드에 프랑스문화가 유입되었고 노르만인 귀족이 잉글랜드 귀족의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 사건을 노르만 정복이라고 한다. 윌리엄 1세 대관식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거행했다. 이후 잉글랜드왕의 즉위식은 대부분 이 사원에서 치러지게 되었다. 11세기에는 웨스트민스터사원 옆에 웨스트민스터궁전이 건설되었다. 1295년에는 훗날 잉글랜드 의회의 모델이 되는 모델의회가 국왕 에드워드 1세에 의해 이 궁전에서 개최되었다. 1529년에 헨리 8세가 왕궁을 화이트홀궁전으로 옮긴 이후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웨스트민스터궁전은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관식이 거행되는 사원과 의사당이 있는 궁전이 존재하는 웨스트민스터지구는 약 1000년 동안 잉글랜드 정치의 중심부로서 가능해 왔다. 또 웨스트민스터지구 내 다우닝가에는 10번지에 총리 관저, 11번지에 장관 관저 등이 있고 영국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사는 버킹엄궁전도 자리 잡고 있다. 주말은 런던 교외의 윈저성에 거주한다.

    세인트홀대성당

    헨리 8세의 딸로서 1558년에 즉위한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때 템스강 남쪽에 새로운 상업지구가 형성되는 등 런던이 점차 확대되었다. 하지만 찰스 2세 시대에 런던에 두가지 재해가 덮쳤다. 1665년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약 7.5만명이 병사했다. 또 이듬해 발생한 런던 대화재로 사흘동안 불길이 잡히지 않아 세인트폴대성당을 비롯한 런던 시내의 대부분 건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피해 규모가 컸던 이유로는 목조 건축물이 많았다는 점, 토지가 좁은 탓에 계속 건물을 위로 증축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진화에 시간이 걸린 이유는 전년부터의 가뭄과 당시 불어닥친 강풍 탓도 있었다. 또한 템스 강변까지 가옥이 빽빽하게 들어서 방수용 물을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는 것도 이유가 되었다. 이 대화재를 계기로 찰스 2세는 크리스토퍼 렌을 비롯한 건축가에게 도시 재건을 지시했다. 도로 폭이 확장되었을 뿐 아니라 건물 층수가 제한되었고 벽돌과 석조 이외의 건축물을 새로 건설하는 일이 금지되었다. 찰스 2세는 악취를 뿜던 템스강 주변의 공장들을 외곽으로 이전시키고 강과 건물 사이 공간에 하선장을 만들기도 했다. 증가하는 선박 운송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 그때까지 해상보험만 유효하던 손해보험의 보장 범위를 확대하여 화재피해까지 보상해 주도록 했다. 런던의 대화재는 런던의 중세도시에서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1600년에 20만명이었던 인구는 계속 증가했고 1700년에는 50만명을 넘어 런던은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가 되었다.

    런던만국박람회

    그리니치 천문대

    산업혁명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거느린 대영제국은 1837년 즉위한 빅토리아여왕 시대에 큰 번영을 이루었다. 19세기에는 런던에 열강 각국의 요인을 초대해서 런던회의를 비롯한 여러 국제회의를 열었다. 1851년에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인 런던만국박람회를 개최하여 영국의 국력을 세계에 과시했다. 1884년에는 런던 교외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통과하는 자오선을 경도 0도로 삼고 세계의 표준시간인 그리니치 표준시를 정해다 이 시점에서 런던을 지리적으로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 무렵은 18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산업혁명에 의해 기계공업이 발달하고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는 시기였다. 자본주의사회로 이행한 영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다. 광대한 해외시장과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금융시장의 발달이 산업혁명 성공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 중심지 시티는 현재에는 런던에서 경제의 중심부 역할을 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지구 옆에 위치한 2.9km의 지역을 가리키며 정식명칭은 시티오브런던이다. 시티의 성립은 12세기경에 상인이 밀집한 지구에 이탈리아인이 은행을 연 것이 이 금융가의 시작이었다. 그 후 1571년에는 왕립거래소(런던 대화재로 소실), 1694년에는 잉글랜드은행(영국중앙은행)이 설치되었다. 현재 시티는 런던증권거래소와 로이드보험조합 본사 빌딩 등이 있는 전 세계적으로 내로라는 금융가다. 현대의 시티는 런던과는 다른 시장이 정무를 맡고 독자적인 경찰조직도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은 수많은 노동자의 도시 유입을 초래했다. 런던 서부에는 부유층이 거주했지만 동부에는 과밀상태의 공업지대의 슬럼가가 형성되어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나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추리작가 코난 도일이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탐정소설 셜록 홈즈 시리즈를 출간했다 당시의 런던은 스모그 도시로 화석연료의 연소로 확산된 연기와 매연 등 대기오염 물질이 만연했다 대기오염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어 1952년에 기관지 천식으로 1.2만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런던대계획

    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발발했다. 비행선이나 항공기가 무기로 사용되었고 런던은 독일군의 폭격을 받았다. 1915년 체펠린비행선에 의한 독일의 공습으로 런던에서는 일곱 명의 사상자와 서른 다섯 명의 부상자의 나왔다. 달리 대항수단이 없었던 런던 시민은 공포에 떨었다. 영국은 1차 세계대전의 최종 전승국이 되었지만 전란 피해가 큰 데다가 해외 식민국가들의 독립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국력이 쇠하게 되었다. 1939년 발발한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은 브리튼전투라 불린 항공전의 전장이 되었다. 특히 독일공군은 런던 대공습은 감행했다. 세계 최초 탄도미사일 V2로켓도 발사했다. 당시 V2로켓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이었고 런던 시가지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이 눈앞으로 다가온 1944년부터 대런던계획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 도시계획은 전쟁 때 입은 공습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산업혁명 이후 계속된 런던의 인구집중과 건물의 과밀상태를 해소하겠다는 목적도 더해졌다. 대런던계획은 녹지대지정, 뉴타운법, 직주근접이다. 이미 존재하는 시가지 주위에 그린벨트를 건설하고 그 바깥쪽에 뉴타운을 건설한다는 내용이었다. 직장과 주거지와 여가시설 기능을 복합적으로 충족하는 도시를 런던 근교에 건설하는 뉴타운법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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