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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들-125) 그날 아침 죽음이 내게로 걸어왔다 / 사진기 없는 사진관 / 비난자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명시 2026. 6. 18. 01:37
< 그날 아침 죽음이 내게로 걸어왔다 - 박노해 >
그날 아침
죽음이 내게로 걸어왔다
죽음이여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네가 멀어질수록 모닥불처럼
나는 서서히 사위어 간다
어둠 속 푸른 늑대 무리에 둘러싸여
횃불을 휘두르며 전진하는 소년처럼
나는 삶과 죽음이 바싹 달라붙어 있는
절박한 걸음으로 살아있었으니
죽음이여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
네가 다가설수록 활화산처럼
나는 치열한 생의 불로 타오른다
산정 암벽 끝에서 허공에 등을 대고
뒷걸음질로 최후까지 대치하는 소년처럼
나는 죽음이 내게로 걸어올 때마다
생생한 떨림으로 살아있었으니
죽음이여 가까이
다시 더 가까이
< 사진기 없는 사진관 - 전길중 >
보정하지 않은 사진을 들춥니다
평생 소몰이에 그을린 모습으로
상급학교 아들 입시에
당신이 수험생인 듯 초조해하셨고
도시와 쌀값 차이만큼 이문이라시며
농사지은 쌀 직접 우마차에 싣고
오 십리 길 멀다 않으셨지요
병원에 가두고 집 팔아먹으려 한다는
비틀린 말씀에 웃음이 나네요
코로나 끝나면 갈 수 있다고 다독이지만
어디로 갈 건지, 참 그러네요
훗날 아들이 찍는 내 사진도
지금과 별로 다를 게 없을 테니
퇴색하는 건 사진뿐 아니죠
< 비난자 - 박노해 >
나를 안다 하는 사람은 많으나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어라
나를 알지도 못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마운 나의 일꾼들인가
그가 내게 쏜 화살이 빗나가는 것을 보고
나는 나의 위치를 올바로 점검한다
그들은 나에게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 요구하나
난 이미 여기 와있고
나날이 새로와지고 있는 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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