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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의 아라길주와 대항해 시대의 와인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술의 세계 2025. 5. 13. 03:00
중국술은 고량 등을 발효시킨 황주와 이를 증류시킨 백주로 크게 구분된다. 중국에서 증류주인 백주가 만들어지게 된 때는 몽골이 지배했던 원 제국 시대라는 설이 유력하다. 뛰어난 기마군단을 앞세워 중국을 지배한 원 제국(1271-1368)은 제국의 경제와 외교를 이슬람 상인 같은 색목인에게 맡겼다. 말하자면 몽골인과 이슬람 상인이 손을 잡고 중화세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유럽에 전해진 증류기가 위스키, 브랜디. 진 등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명주를 만들어 낸 것처럼, 중국에서도 뛰어난 증류주 백주를 만들어냈다. 송나라에서 증류주를 제조하였고 그 방법이 일반화된 때가 원나라로 보고 있다. 원의 황제 칸을 위해 쓴 요리책 음선정요는 증류한 소주를 아라길주라고 적었다. 아라길은 좋은 술을 증발시켜 수분을 제거한 찌꺼기를 뜻하는데 동남아시아로부터 전해진 소주라는 뜻도 있다. 아라길이라는 말에서 알렘빅을 연상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증류기를 알렘박이라고 불렀는데 아시아에서는 증류주 자체를 아라길이라고 부른 듯하다 일본에서는 증류주를 아라키라고 불렀다
쓰촨과 윈난성 마유주 원 제국의 쿠빌라이 칸은 강남 지방을 지배하는 남송을 매우 강한 나라로 여겼다. 그래서 동쪽과 서쪽에서부터 남송을 포위하는 태세를 갖추었다. 이것이 1253년부터 시작된 쓰촨과 윈난 지방 정복, 1258년의 고려침공과 쌍성총관부 설치, 1274년의 4만에 달하는 병사를 동원한 일본 원정으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중국으로 전파된 증류주를 거론함에 있어서 몽골에 의한 쓰촨 윈난 원정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이족 등의 소수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쓰촨, 윈난 지방은 아시아 내륙의 실크로드와 인도차이나 반도를 가로지르는 경로이고, 동남아시아와도 연결고리가 강하다. 또한 예전부터 술 향기가 분분하게 떠돌아 사람을 어지럽힌다는 명주의 산지로도 알려져 있다. 윈난은 은 등의 광산 자원이 풍부하여 많은 이슬람교도가 이주한 지역이기도 했다. 이 땅의 주조 기술은 몽골 제국이 중간 역할을 하면서 중국의 술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인도의 아락이 아삼을 경유하여 윈난과 구이저우로 전해진 것이다. 몽골인은 사치에 물들고 권력 투쟁에 몰두한 끝에 자멸하며 뒤이어 명나라 중화세계를 재건하였고 몽골인은 몽골고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은 남아 증류주 아라길을 계승한 아일락이라는 술을 몽골고원으로 가지고 돌아가 지금도 마시고 있다. 말젖을 가죽부대에 넣고 교반하여 1년분의 마유주를 만드는데 이를 아일락이라 했다.
열악한 선원생활 대항해시대 와인 1492년의 콜럼버스 대서양 횡단 항로 개발은 미지의 해역과 신대륙을 유라시아 역사에 추가하며 지구 표면적의 70%를 차지하는 바다 위에 펼쳐진 무수한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 각지가 연결되는 바다의 시대가 개막되었음을 알렸다 15세기 이후로 선원들의 에너지가 지구를 하나로 연결했고 세계사는 새로운 단계로 이행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현실은 어느 시대보다도 열악했다. 유럽의 신시대를 개척한 범선 안에서의 생활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배 바닥에 고인 물이나 음식물 찌꺼기에서 풍기는 썩은 냄새가 배 안 전체에 진동하였다. 선장실을 제외하고는 선원들이 쉴 개인 공간이 없어 갑판이나 선창에 아무렇게나 누워 자거나 선장에 해먹을 걸고 자는 수밖에 없었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바다에서의 생활을 견디려면 즐길 거리도 필요했다. 하지만 식재료는 딱딱하게 굳거나 소름에 절인 것뿐이라 정말 맛이 없었다. 입맛에 맞지 않은 열악한 먹거리를 보충하기 위해 가득 실은 식량이 대량의 와인이었다. 와인은 대항해 시대에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의 에너지원이라는 새로운 지위를 확립했다. 나중에는 긴 항해 기간 동안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브랜디를 첨가한 주정 강화 와인을 싣게 되었다. 이러한 와인의 대표격은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와인과 스페인의 셰리주이다
선원의 식사 16세기 중반경 스페인의 배의 식사 기록을 보면 하루에 빵 약 700g과 콩 80g이 지급되었다. 일주일에 세 번 소금에 절인 고기가, 일주일에 두 번 150g의 치즈와 소금에 절인 대구가 지급되었고, 때때로 올리브와 대추야자 등이 추가로 지급되었다. 마르고 금방 썩을 음식들로 차려진 식사에 와인을 필수 불가결했다. 하루에 1L씩 지급되는 와인은 뱃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존재였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1544년에 포교를 목적으로 대서양을 횡단한 도미니코회의 한 수사는 무수한 이와 악취, 좁은 거주 공간 등을 거론하며 배 안은 마치 도망갈 곳 없는 감옥 같았다고 했다. 특히 주요 식재료라고 해봐야 건빵과 소금에 절인 고기나 생선이 전부였고 목마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며 갈증에 대한 괴로움을 강조했다. 대항해 시대를 이끈 포르투갈과 스페인 함선에서는 와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뒤이어 바다 세계를 이끈 네덜란드와 영국 함선에서는 맥주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이렇게 바다의 시대가 도래하자 술 문화에도 큰 전환기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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