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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루이 14세의 궁정술인 리큐어와 인도의 술 아락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술의 세계 2024. 12. 19. 03:00

     

    증류주에 향료, 향초, 과실, 약초, 감미료 등을 첨가하여 독특한 풍미를 가미한 술이 리큐어이다. 리큐어는 약용주 또는 강장제로 애용되었다. 약용주는 건강에 좋은 성분을 녹여낸 것이기 때문에 라틴어로 녹아 있다는 의미의 리케파세르로 불렸고 이것이 변하여 리큐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라틴어로 액체를 뜻하는 리쿠어레가 어원이라는 설도 있다. 리큐어의 시초는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약초를 와인에 녹여 마셨다고 한다 십자군 원정 중에는 증류기가 유럽으로 전해졌고 수도승들은 인근 들판에서 딴 허브를 알코올에 넣어 불로장생의 비약이라고 믿었던 엘릭시르 제조에 도전했다 리큐어는 연금술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 스페인 연금술사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고 한다. 프랑스 왕실에 리큐어가 들어오게 된 계기는 1533년 피렌체의 거상 메디치가의 딸인 14세의 드메디시스가 프랑스 왕자 앙리에게 시집을 오면서부터였다. 당시는 메디치가의 전성기로 교황이 메디치가 출신은 클레멘스 7세였을 정도였다. 드메디시스의 결혼은 부와 권력이 손을 잡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이었다. 그녀가 들어온 관습은 프랑스의 식사 매너도 크게 변화시켰다. 생선요리에는 백포도주, 고기 요리에는 적포도주, 식후주로는 리큐어라는 것이다

     

    리큐어는 때로는 약용주 때로는 최음주로 사용되며 상류층을 위한 패셔너블한 음료가 되었다. 드메디시스의 종복 중에는 리큐어 장인이 있었는데 그는 와인 증류주를 기본으로 아니스, 계피, 사향, 향유고래의 분비물인 용연향 등을 첨가한 강장주와 최음주인 포폴로 등의 걸작을 남겼다고 한다. 시나몬, 사향, 용연향 등은 모두 당시 유럽인이 좀처럼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고가의 아시아산 향료이다. 한편 과거 서양에서는 약에 마력이 있다고 믿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부적을 약으로 썼고, 중세 유럽에서는 성인의 유물에 약효가 있다고 여겼으며 이슬람 세계에서는 보석에 약효가 있다고 믿었다. 메디치가의 포풀로에서 배워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만든 리큐어가 클레레트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약 제조를 업으로 삼던 사람을 아포티케르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의 아포테케에서 유래한다. 아포티케르는 원래 건강 유지와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생약을 거래하는 상인을 가리키던 말이었는데 실제로 이를 취급하던 상인들은 후추나 향료 등을 판매하며 얻은 상품 지식이 상당했다고 한다. 당시 의사들은 약 제조를 원래 먼 지방에서 구해 온 약재로 약을 제조하던 피그멘티라우스에게 위임했으나 종국에는 아포티케르에게 맡기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 향신료를 판매하던 상인이 점차 약을 제조하는 기술자로 변신하여 약제사가 되었다

     

    메디치 가문의 문장에는 후추 알갱이로 된 환약이 그려져 있는데 이를 보고 원래 약종 도매상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약 제조는 자신만만한 분야였다. 리큐어 포폴로를 제조하는 일 정도는 간단히 해냈을 것이다. 당시의 약제사는 의사를 겸했기 때문에 드메디시스의 종복 중에는 약제사가 있었을 것이다. 리큐어는 결국 건강을 유지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술로 궁중에 퍼졌다. 루이 14세는 예순 살을 넘겨 쇠약해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의사단이 조합한 로솔리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로솔리는 브랜디에 사향, 장미, 오렌지, 백합, 재스민, 계피, 클로브를 조합한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알코올음료였다. 왕이 좋아한 로솔리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궁정으로 확산되었다. 궁정의 경박한 귀부인들은 사교계의 파티에서 몸을 치장한 빛나는 보석과 눈부시게 화려한 의상에 맞춰 리큐어를 선택했고 이를 제조하는 장인도 경쟁적으로 보석과 같은 색채의 리큐어를 연구했다. 리큐어는 프랑스의 궁정 패션과 함께 유럽 각지의 사교계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의 리큐어 문화가 루이 14세 시대에 기반을 다진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현재도 프랑스는 세계에서 이뜸가는 리큐어 대국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동방의 인도, 동남아시아, 동아시아로 이어지는 바닷길을 따라 증류기 알렘빅과 증류 기술이 전해졌다. 서아시아의 아락에서 일본의 소주에 이르는 길고 긴 여행의 시작이다. 먼저 인도에 알렘빅이 전해져 증류주가 만들어졌다. 오늘날 인도에는 쌀, 당밀, 야자를 발효시킨 후 단식 증류기로 두 번에서 세 번 증류하는 아락이라는 증류주가 있다. 알코올 도수 45도에서 60도에 이르는 상당히 독한 술로 신맛이 나며 물을 넣으면 흰색으로 탁해진다. 아락은 외국에서 온 알렘빅을 이용한 증류기술과 전통적인 쌀, 당밀, 야자를 원료로 하는 술의 제조법을 혼합한 국제적인 술이다. 이슬람과 인도의 교역이 탄생시킨 아락은 두 문화가 융합한 성과로 볼 수 있다. 이집트의 술 아라키, 튀크키에의 술 라키, 리비아의 술 락비 등도 아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이락은 이슬람 상인의 넓은 상권이 만들어 키운 술이다. 인도 술 아락은 인도상인들이 교역하던 실론, 동남아시아의 수마트라, 자바, 타이 등지로 전해졌다. 한편 증류기 알렘빅을 사용하여 술을 만드는 기술도 더욱 발전하여 쌀을 사용한 양질의 증류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락은 에도시대에 네덜란드인에 의해 일본에 전해졌고 아라카주 등으로 불리며 진기한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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