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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술부터 조선시대 소주까지 한국 술의 발전사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술의 세계 2024. 8. 1. 03:38
한국인들은 술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그것은 술을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음료가 아니라 격식있는 의식에서 신에게 드리는 가장 중요한 제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을 관리하는 곳은 조정이었다. 조선시대의 사옹원에서는 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음식물을 관장했는데 이들을 관리하는 관리 중에 녹관이 배치되었다. 녹관 가운데 술을 담당하는 사람을 일러 주인이라고 했고 각 고을에서는 술을 잘 빚는 여자를 대모 내지 주모라고 불렀다. 한편 술의 어원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열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곡식과 누룩, 물이 섞여져 끓어오르는 현상을 보고 술에 수-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난데없이 물에서 불이 난다는 생각에서였다. 수-불이 이후 술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조상들은 술을 물에 가둔 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물에서 불이 난다는 생각과 함께 술을 마시면 열이 나고 몸이 뜨거워지는 현상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는 대체로 중국 문화권에서 파생한 것으로 추측한다. 농경사회로 정착할 때부터 조상들이 탁주를 만들어 마셨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추정이지만 이미 고구려에 막걸리가 있었다는 추정도 있다.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진수가 쓴 위지 동이전은 고구려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 장양을 잘한다고 했다. 장양은 한국의 전통적인 발효식품 김치나 장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긴 하지만 주류학자들은 음식물을 저장할 때 술을 빚어 저장하는 방법을 일러 장양이라고 해석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술에 관한 최초의 이야기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건국설화에서 등장한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능신 연못가에서 하백의 세 자매를 취하려 할 때, 이들이 수궁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미리 술을 마련해놓고 먹여서 취하게 한 다음에 세 처녀 중에서 큰 딸 유화와 인연을 맺어 주몽을 낳았다는 설이다. 그리고 동이전의 고구려조에는 고구려 건국 초기를 빚어 한나라의 요동 태수를 물리쳤다는 내용과 함께 중국인들이 고구려는 자희선장양하는 나라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장과 술 등 발효음식을 만들어 즐겼다는 내용이다. 또한 태평어람은 고구려 여인이 빚은 곡아주가 장쑤성 일대에서 명주 대접을 받았다고 했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백제가 일본에 술 빚는 기술을 전해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사람 인번이 누룩을 이용한 술 빚는 기술을 전해왔는데 천황이 이 술을 마시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며 인번을 주신으로 모셨다는 내용이다. 이때의 술은 쌀로 빚은 것으로 여겨진다. 이때 술 빚는 것을 쌀 등을 삭힌다라고 했는데 일본에서 술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사케가 여기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삭힌다에서 사가 주로 변형되어 청주를 일본말로 사케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한반도의 술은 탁주라 볼 수 있다. 통일신라로 내려오면서 양조 곡주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기 시작했다. 상류 사회에서는 청주류의 음용이 성행했고 주류 문화 예 문화가 틀을 잡았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술의 종류가 다양해짐과 동시에 몽골에서 증류법이 도입되면서 우리의 양조기술은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때 양조업은 인력과 재력이 집중되었던 사원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는데 이는 당시 사원과 승려들이 사회의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술은 크게 청주, 탁주, 소주, 과실주로 분류되는데 청주를 위시해 법주, 과일주와 생약제를 가미해서 빚은 약용약주, 꽃의 향을 가미해서 빚은 가향주 등 다양한 술이 등장한다. 특히 원나라에서 도입된 증류법은 우리의 음주문화의 양조법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아랍 문화의 하나였던 증류법이 12세기경 서구로 전해지면서 브랜디와 위스키의 시초를 이루었으며 동양(몽골)에 전해져 오늘날의 소주가 탄생했다. 특히 조선시대로 들어와 소줏고리의 등장과 함께 증류법은 더욱 발전해 소주의 유행을 불러왔다
조선 전기에는 멥쌀보다 찹쌀 위주의 양조 원료 사용이 증가하면서 양조 기법의 주류도 단양법에서 중앙법으로 바뀌어 전통주가 기본을 이룬다. 특히 각 지방과 집안마다의 가전비법으로 빚어졌던 명주들이 속속 등장한다. 조선시대의 술 빚기 특징은 찹쌀술의 비중이 많아지므로 술의 고급화가 진행되었다 둘째는 술 빚는 과정에서 여러번에 걸쳐 덧술을 한다 즉 이양주와 삼양주 등 여러번의 덧술 과정을 거친 중앙주를 생산해 알코올 함량을 높이는 등 술의 고급화를 꾀했다. 셋째 고려시대에 비해 소주의 선호도가 증가했다. 소주를 기본으로 한 약용약주, 재제주, 혼양주가 많아졌고 큰 틀에서 남부는 탁주, 중부는 약주, 북부는 증류주로 특화했다. 조선시대에 가양주 문화가 꽃을 피운 것은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제사와 세시풍속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가정마다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가양주에 의한 명가명주라는 말이 생겨났다. 현재 국내의 가양주나 전통주는 100종 이상이 되는데 이것은 지방마다 집집마다 고유한 술 빚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시사해준다. 국화를 넣으면 국화주, 진달래꽃을 넣으면 두견주, 송순을 넣으면 송순주, 연잎을 넣으면 연엽주, 인삼을 넣으면 인삼주가 된다. 그리고 술을 빚기는 대부분 누룩과 고두밥, 물을 주재료로 일정한 온도와 기간을 거쳐 발효를 시키는 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와 같은 과정을 몇 번 반복하느냐에 따라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 등 중앙주로 분류되며 이에 따라 술의 품질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술의 역사에서 씹어 먹는 술도 등장한다. 떡처럼 물렁물렁해 갖고 다니며 씹어 먹기도 하고 딱딱해지면 칼로 썰어 먹기도 하는 술이다. 이 고체 술은 알코올 농도와 향, 색소 등을 적절히 조합해 소주나 위스키 등 각종 주류와 거의 비슷한 맛을 지닌 젤리와 같다. 한미디로 고체 위스키, 고체 막걸리 등 주종도 다양한 데다 안주 맛도 가미된 주효일체라 안주 값도 절약된다. 고체술은 휴대하기 어려운 액체 술의 단점을 보완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로 오래전부어 있었다. 비어롤리포프라는 맥주 엿이 런던에서 상품화되기도 했는데 캔디처럼 생긴 이 맥주 엿은 향과 맛이 맥주와 비슷하고 빨면 거품까지 나와 아이들이 즐겨 사먹는 바람에 런던의 주부들이 추방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한때 인스턴트 비어라는 고체 맥주가 나와 물에 타면 맥주가 되었다. 한편 술을 거르는 방법에 따른 분류로는 탁주, 청주, 소주로 나눈다. 그리고 토속주와 민속주가 있다. 토속주는 진도 홍주, 전주 이강주, 제주도의 오메기술 등과 같이 다른 지방과는 차별화된 그 지방만의 독특한 양조 방법으로 빚어왔던 술을 가리킨다. 그러나 학자들이 지방별 특산품의 의미가 희석되어 토속주라는 의미가 상실했다고 보고 있다. 민속주의 말도 어쩡적하다고 보고 있다. 이는 국어사전에서도 없는 용어지만 전통주, 관광토속주 등의 상위개념으로 민속주로 지정해서 관리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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