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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세계에서 사랑받은 약인 아스피린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의학 2025. 2. 4. 03:00

     

    여태까지 인류는 수만 종류의 약을 만들어내고 이용해왔다. 그렇다면 그 수많은 약 중에서 딱 한 종류의 약만 선택해 먹을 수 있다면 어떤 약을 선책하겠는가 ? 감기약이냐, 항생제냐, 그도 아니면 소화제냐 하지만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진통제일 것이다. 두통, 치통, 위통, 복통 등 쉽게 사라지지 않는 통증은 생활의 질을 떨어뜨린다. 아픔을 줄여주는 약은 인류가 아주 오래전부터 가장 절실히 원해왔던 약이다. 덜 여문 양귀비 열매에서 얻을 수 있는 모르핀이 5천년 전부터 사용되었다. 또 바빌로니아에서 맨드레이크, 고추, 대마 등이 충치의 아픔을 덜어주는 진통제로 사용되었고 한방약 계열에서도 진통제 종류는 제법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잘 팔린 약이 진통제이고 그 약이 아스피린이다. 두통약에 아스피린 성분이 배합된 경우가 많아 누구나 살면서 몇 번씩 아스피린을 먹었을 것이다. 아스피린 제조사인 독일의 바이엘은 연간 5만톤에 생산하고 5mg 알약 기준으로 1천억 알 분량에 해당한다. 이를 일직선으로 늘어놓으면 100이상이라 지구에서 달까지 한번 반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1899년 출시된 이후 아스피린은 줄곧 바이엘을 먹여 살린 효자 상품의 지위를 지켜왔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인 아스피린은 버드나무에서 태어났다. 버드나무 껍질과 이파리에 진통 효과가 있다고 확인됐다.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 의사이자 약리학자였던 그리스의 디오스코리테스는 버드나무 잎과 나무껍질을 잘게 빻아 와인과 후추와 함께 먹으면 심한 복통에 효과가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또 이쑤시개는 충치로 생기는 치통을 방지하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를 씹었던 데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다. 1819년 살리실산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졌고 이 물질에도 진통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사실 버드나무에 들어있는 살리실산은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살리실산의 동료들은 자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흔히 파스라 부르는 피부에 부착하는 패치방식 약제에 사용되는 살리실산메탈 등이 그중 하나다. 파스라 부르는 살론파스의 살론은 이 성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살론 파스가 파스로 알려졌다. 그런데 살리실산에는 의약품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극심한 위통을 일으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호프만은 살리실산의 산성 성분의 바탕이 되는 하이드록시기에 카복실기라는 원자단을 결합했다. 살리실산의 강한 산성이 위통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성분을 중화하는 카복실기를 추가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접근법이지만 합성된 아세틸살리실산은 소염 진통작용을 유지하면서 멋지게 부작용을 완화했다 1897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약은 심장에 좋지 않다는 상부의 맹신으로 처음에는 무시당하게 되었다. 다행히 아세틸살리실산에 진행명령이 내려졌고 바이엘은 이 약에 아세틸의 아와 스틸산(살리실산의 별칭)을 합쳐 아스피린이 붙여져 1899년에 시장에 내놓았다

     

    유럽에서도 아스피린은 인기를 독차지했다 작가 프란츠 카프카는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달래주는 건 아스피린 밖에 없다고 말하며 창작의 동반자로 삼았다. 그러나 고향 독일에서는 특허 취득에 실패하였다. 아세틸살리실산은 이미 1853년 프랑스 화학자가 만들었기에 신약으로 판정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률의 차이로 미국에서는 아스피린 특허 취득에 성공했다. 바이엘은 1903년 미국에 새 공장을 건설하고 미국이라는 거대시장 진출을 꾀했다. 1917년 미국은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독일 기업의 자산을 접수하고 바이엘이 보유한 특허권과 상표에 이르기까지 바이엘의 모든 소유물을 몰수해 미국 정부 관리하에 두었다. 이듬해 전쟁이 끝나자 미국 정부는 바이엘의 현지법인인 바이엘 아메리카를 경매에 부쳤다. 스틸링 프로덕츠가 낙찰받았다. 1920년 미국의 경제번영을 구가하며 제 1세계대전 전후 처리와 금주법 시행 세계공황 등 대중에 엄청난 스트레스에 내몰던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두통과 위통을 줄여준다는 아스피린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 힘입어 대박을 쳤다. 두 번의 세계대전 사이에 끼인 이 시대를 후대 역사가들은 아스피린 시대라고 부를 정도였다.

     

    바이엘 아메리카의 권리를 획득한 스털링 사는 당당히 바이엘 로고가 들어간 아스피린을 제조 판매했다. 특허 기한이 이미 끝나 다른 기업도 아스피린을 제조했지만, 바이엘 상표를 내건 스털링은 자사의 이름을 쑥 빼고 다른 회사의 아스피린은 모조리 가짜다라고 주장했다. 스털링은 전미 4위 라디오 광고주로 대대적인 광고로 아스피린 판매를 늘렸고 캐나다와 남미 대륙에도 아스피린 판로를 개척했고 독일의 바이엘 본사는 이 상황을 지켜보며 이를 갈고 있었다. 미국과 독일이라는 서로 다른 나라에 본거지를 둔 바이엘이 같은 상표를 달고 같은 이름의 상품을 판매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1994년에 독일 바이엘이 미국 시장의 권리를 모조리 사들일 때까지 스털링 천하는 76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한편 전 세계에서 상비약으로 널리 사용되게 한 아스피린의 화합물이 통증을 가라앉혀주는지 7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우선 아스피린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우리 몸에서 특정 단백질에 결합해 효과를 나타내는데 효과를 내려면 일정 이상의 크기가 필요하다. 분자량이 고작 180밖에 되지 않는 아스피린은 아스피린으로서는 지나치게 작다. 둘째 아스피린은 카복실기라는 원자단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하지만 우리 몸에 들어가면 바로 분해되어 효능을 상실한다.

     

    이 수수께끼는 1970년대에 들어서고 나서야 풀렸다.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물질이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아스피린은 이 프로스타글란딘을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작용을 한다. 우리 몸속에는 사이클로옥시게나아제라는 효소가 있고 이 효소는 지방산의 일종을 붙잡아 한가운데서 둘로 접혀 고리를 만들어 프로스타글란딘을 생산한다. 아스피린은 거대한 사이클로옥시게나아제(COX) 분자에 홀몸으로 잠입해 카복실기를 효소 활성화의 중심에 가져다 놓고 기능을 상실하게 만든다. 1998년에 아스피린은 COX뿐 아니라 염증에 관여하는 효소인 아이, 카파, 비키나제에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에도 아스피린이 효과가 있다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그밖에도 대장암, 유방암, 폐암 등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가설도 제기되고 있다. 아직 알츠하이머성 치매와 암 예방을 위해 아스피린을 대중적으로 권장할 단계는 아니다. 아스피린이 등장한 지 한 세기 이상 지난 지금 시대를 후세 사람들은 제 2의 아스피린 시대라고 부르게 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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