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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북 아메리카 대륙 정복의 첨병인 천연두(두창)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의학 2024. 10. 24. 03:12
감염병의 역사적 확대에는 분명한 지역 차가 존재한다. 극단적인 사례가 천연두이다. 유라시아대륙 각지에서는 고대부터 천연두가 맹위를 떨쳤지만 남북 아메리카대륙에서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발병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천연두가 세계사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천연두는 영어로 smallpox로 작은 반점이라는 의미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두창 마마 등으로 불렸다. 감염자의 피부 표면에 수많은 물집이 생기고 운 좋게 완치되어도 얽은 자국 또는 곰보라고 놀리던 흉터를 남기는 게 이 병의 특징이다. 천연두를 일으키는 천연두 바이러스는 저온과 건조한 환경에 강한 반면 알코올, 포르말린, 자외선에 노출되면 감염력이 크게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일단 감염되면 7-15일 잠복기를 거쳐 최대 40도의 고열과 두통 요통이 나타난다. 나흘째 무렵부터 얼굴과 온몸에 울긋불긋한 반점 같은 발진이 돋는다. 그런 다음 마침내 피부가 볼록하게 솟아나는 구진이 되었다가 점점 커지며 물집이 잡힌다. 그리고 그 안에 차츰 고름이 차며 가려움과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는 감염 1주-2주차에 걸친 시기에 집중되는데 사망률은 독성이 강한 종일 때 20-50%다 천연두와 비슷한 질병에는 소가 주로 감염되는 우두, 양과 염소가 감염되는 양두 돼지가 감염되는 돈두 등이 있는데 이 가축 감염병이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전염되었다고 추정된다. 천연두로 의심되는 질병의 기록은 3천년보다 훨씬 전 인도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상 천연두에 걸린 인물 중 가장 오래된 이는 기원전 1100년대 중기 이집트 제 20대 왕조의 파라오 람세스 5세다 그는 즉위 4년만에 세상을 떠났을데 학자들이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 천연두 감염 흔적을 찾아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테네 페스트라는 이름으로 불린 역병이 창궐했다. 기원전 431년 무렵의 일이다. 이병이 페스트가 아니라 천연두였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아테네 인구 1/3이 죽고 적대관계였던 스파르타에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여 그리스 도시국가 간 주도권을 빼앗겼다. 로마제국에서도 두차례의 역병이 165년과 251년에 창궐했는데 이 모두 천연두로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토착신 신앙을 주관하는 신관의 권위가 실추되고 기독교 세례를 받는 민중이 급증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천연두가 퍼져 나간 것은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4세기에 이르는 기간으로 보고 있다. 4세기 동진의 도사 갈홍의 의학서에는 당시 중국에서 포창이 유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천연두에 걸려 목숨을 잃은 인물이 많다. 중세 유럽에서 987년 카페왕조 시대를 활짝 연 위그 카페는 물집이 잡히는 역병으로 사망했다 그 밖에 18세기 러시아 황제 표트르 2세 청나라 3대 황제 순치제이 죽었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천연두를 앓고 얼굴에 자국을 남겨 외모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
15세기에 들어와 페스트 대유행이 진정 국면에 접어든 유럽에서는 식육 소비가 증가해 아시아가 원산지인 향신료 수요가 폭증했다. 여기에 대형 범조 건조 기술 발전이 뒷받침하여 신항로 개척시대의 막이 올랐다.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도는 항로를 따라 인도에 도착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서양 횡단에 나섰다.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 콜럼버스의 항해는 스페인 왕실의 후원으로 경제적 목적의 탐험이었는데 그가 1492년에 도착한 곳은 중앙아메리카 산살바도르섬(바하마)이었다. 뒤이어 탐험에 나선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 상인이자 지리학자인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콜럼버스가 도착한 곳이 인도가 아닌 미지의 대륙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남북 아메리카 선주민은 2만년 전에 베링해협이 얼어서 육로로 통행할 수 있던 시기에 농경과 목축으로 소규모 부족 집단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멕시코 중부에서는 아스테카제국, 남미 안데스산맥 일대에서는 잉카제국 등 강력한 국가가 탄생했다. 스페인 군인 코르테스와 피사로는 각각 1519년과 1532년에 이들 제국을 정복했다 이는 스페인의 총과 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보다도 더욱 큰 타격을 입힌 것이 바로 백인이 유럽에서 들여온 감염병이었다. 홍역, 결핵, 인플루엔자 등 온갖 전염병이 유럽인을 따라 신대륙으로들어왔다. 그중에서도 특히 천연두가 신대륙을 휩쓸며 엄청난 세력을 과시했다. 코스테르가 훑고 간 자리에 아스테카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려 온몸에 종기로 기력을 잃고 목숨을 잃었다.
천연두는 원래 낙타나 소의 감염병에서 변이되어 인간에게로 전염되었다고 추정된다. 유라시아인들은 수천년 전부터 가축과 접촉하면서 몇 차례 감염병 대유행을 겪으며 천연두 같은 감염병에 대한 면역력을 획득한 상태였다. 반면 남북 아메리카대륙의 선주민은 그런 동물과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잉카제국은 라마 알파카 등을 가축으로 사육했으나 주로 짐을 나르는 목적으로 사용했다. 이처럼 유럽인들은 금과 은을 채굴하고 사탕수수와 커피 재배 농장에서 선주민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하며 착취하며 학대하였고 전염병으로도 많이 죽었다. 맨 처음 아스테카 제국의 인구는 15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었는데 17세기까지 그중 90%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아프리카인을 대체 노동인구로 데려왔다. 오늘날의 자메이카,아이티 등 카리브해 일부 국가 주민의 상당수가 아프리카 출신이어서 서아프리카의 전통적 민간신앙과 음악 무용 등을 접목한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한편 중남미에서는 은광개발로 커다란 부를 얻은 식민지 이주자들이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생산된 모직물 같은 유럽의 상품을 사들였기에 대서양을 오가는 무역로가 발달하게 되었다. 중남미에서 채굴한 대량의 은이 스페인으로 흘러들어갔으나 당시 스페인 카를로스 1세는 가톨릭 국가를 규합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로 유럽 각지의 프로테스탄트 세력과 종교전쟁을 벌이면서 어마어마한 양의 은을 탕진했다. 1588년 칼레해전에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영국과 네덜란드 연합군에 패배했다. 이로써 스페인은 대서양 무역 주도권을 상실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며 급속히 유통망을 확장한 은은 대부분 청나라로 유입되었다. 청은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은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당시 유럽의 왕족과 귀족, 상업발달로 자산을 불린 시민계급 사이에 청에서 생산된 차와 향료 견직물 도자기 등 진귀한 물건의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1700년에 영국은 전 세계 GDP의 3%, 프랑스는 6%, 오스만제국은 8%정도를 차지했다. 이에 비해 청나라는 무려 22%를 차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청은 외국문화 유입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무역을 제한했고 해외 진출에 소극적이었기에 상업 자본주의 발달이 부진했다. 중세부터 유럽 지중해 상인들 사이에 장거리 무역의 위험을 분산시키고 이익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항해할 때마다 공동 출자하는 관행이 있었다. 네덜란드는 국책으로 중소 규모 무역 상점을 통합한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1602년의 일로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였다 이에 대한 자본주의 밑거름을 만들었던 잉글랜드의 메리 2세와 스페인의 루이스 1세 그리고 프랑스 루이 15세 등이 천연두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천연두의 대책은 다른 전염병과 같이 환자를 격리하고 사혈하는 수준이었고 매일 12병의 맥주를 마셔서 신진대사를 자극한 경우가 있었다. 빨간색 천연두를 물리친다고 해서 빨간색 옷가지나 침구로 감싸거나 침대 머리맡에 빨간색 공을 두기도 했다
16세기 이후 중남미 영토는 대부분 스페인령 혹은 포르투갈령이 되었다. 반면 북아메리카는 영국과 프랑스가 나누어 먹으며 본격적으로 식민지 개발을 추진했다. 1754년에는 현지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까지 휘말린 프렌치와 인디언 전쟁이 발발했다. 오늘날의 캐나다와 미국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1763년까지 이어졌고 비슷한 시기에 유럽에서는 7년 전쟁(1756-1763)이 일어났다. 프렌치-인디언 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났고 프랑스는 북아메리카 식민지 대부분을 영국에 빼앗겼다 이후 영국은 인도에서 확실한 우선권을 확보해 영국의 세계 패권이 확립되었다. 프랑스는 여러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소비로 프랑스대혁명(1789)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에서도 영국군 지휘관이던 에머스트는 의도적으로 인디언에게 천연두 바이러스가 오염된 담요와 손수건을 나누어주었다. 이는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물병기의 선두주자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유럽인이 들여온 천연두가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지역은 남북 아메리카대륙만이 아니었다. 태평양 위에 흩어진 폴리네시아섬과 오세아니아대륙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지역도 수만년 동안 교류가 거의 없었고 야생동물의 가축화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 서구 유럽의 배가 포경과 무역 과정에서 폴리네시아 섬에 잠시 머물면서 감염병이 퍼져 나가 전멸 수준이 되었다. 오세아니아 대륙은 미국이 1776년 독립하자 영국은 오세아니아 대륙 식민지 개척을 추진했다. 백인 이주자들이 오세아니아대륙 개척을 시작한 이후 선주민 사이에 세차례 천연두가 대유행했다. 이 유행으로 선주민의 절반 정도가 죽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백인들은 호주에 대규모 도시건설을 추진했고 양모 수출, 석탄 채굴, 금광발굴 덕분에 호주는 대영제국의 태평양 군사와 경제 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으로 차 수입으로 인한 대청무역에서 적자를 보이자 인도에서 생산하는 아편을 청으로 보내 무역 수지 적자를 메우고자 했고 급기야는 1840년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오세아니아대륙 식민지화에 한창 물이 오를 무렵 영국에서 획기적인 천연두 대응책이 나왔다. 사람이 걸리는 천연두와 계통이 같은 바이러스로 발생하는 감염병 중 소가 걸리는 우두가 있다. 우두는 사람에게도 전염되지만 손에 작은 종기가 생기는 정도로 가볍게 앓고 지나간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를 앓은 적이 있는 낙농관계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너는 면역력 이론을 정립하여 우두를 접종해 천연두 감염을 예방하는 종두법이 탄생한 것이다. 제너는 이 치료법을 라틴어로 암소를 뜻하는 vacca에서 따와 vaccination이라고 이름 붙였다. 오늘날 천연두뿐 아니라 수많은 감염병 치료에 사용하는 백신이라는 용어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면역은 고대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즉 천연두에 걸려 회복한 사람은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오스만제국에서는 경증 천연두 환자의 물집에서 채취한 고름과 혈액을 건강한 사람에게 접종하는 인두 종두법이 시행되었다. 중국에서도 18세기 청나라 시대에 인두 종두법에 관한 의학서가 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서구 유럽의 여러나라에서는 종두법의 보급으로 천연두 감염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대륙, 남아프리카 등의 33개국에서는 여전히 천연두가 창궐했다 세계보건기구는 1958년 총회에서 세계 천연두 근절 계획에 따라 총 1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입하여 백신 증산과 관리를 추진하며 종두를 접종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1977년 아프리카 동부 소말리아에서 발생한 환자를 마지막으로 천연두 환자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여 감시기간을 거친 후 1980년 5월에 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의 세계 퇴치 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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