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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인 사마르칸트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 도시 2024. 8. 22. 03:24
기원전 4세기의 알렉산드로스대왕과 7세기의 당나라 승려 현장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서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 동부에 위치한 사마르칸트를 방문했다. 우즈베크스탄은 중국의 서쪽, 인도와 이란의 북쪽, 카스피해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일대는 건조기후의 고원지대지만 타지키스탄의 알라이산맥을 수원으로 한 제라프샨강 유역에는 오아시스 도시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사마르칸트 그중의 하나다. 고도 700m의 산지에 위치한 사마르칸트는 물과 녹지가 풍부한 땅이다. 기원전 6세기부터 페르시아계 종족 소그드인이 집락을 형성하여 오아시스 도시를 건설했다. 그리스 기록에는 마라칸다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기원전 327년 알렉산드로스대왕은 페르시아 원정길에서 이 땅을 처음 봤는데 듣던 대로 아름답다 아니 그 이상으로 아름답다라고 평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2세기에 중국 대륙 대부분을 지배한 한나라는 사마르칸트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 도시국가들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이로써 실크로드 무역이 확립되었다. 이를 통해 동방세계의 비단, 종이, 도자기 등이 서방으로 수출되었고, 서방세계의 군마, 유리제품, 보석 그리고 의술이 전해졌다. 이를 중개한 주역은 소그드인으로 당시 제라프샨강 유역은 소그디아나라고 불렸다
7세기 현장법사는 불전을 찾기 위해 톈산산맥을 넘고 사마르칸트를 거쳐 남으로 내려가 인도에 도달했다. 수당왕조는 사마르칸트 일대에 있던 오아시스 도시국가를 강국이라고 칭했다. 사마르칸트 주변에서 큰 세력을 형성했던 소그드인은 페르시아에 기원을 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그런데 8세기에 아랍계 우마이야왕조가 침공한 후 이스람교가 보급되면서 그들의 고유문화가 점차 쇠퇴되었다. 751년에는 아바스왕조와 당나라 군대가 충돌하는 탈라스 전투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당나라의 제지법이 서역으로 전해졌고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사마르칸트는 이슬람문화권에서 대표적인 종이 산지로 손꼽히게 되었다. 원래 종이의 원료는 삼나무였는데 후에는 뽕나무 섬유를 이용했다. 이런 종이는 아라비아반도와 이집트에서 왕의 종이라고 불리며 진귀한 물품으로 대접받았다. 11세기 말에 이슬람의 호라즘왕국은 중앙아시아부터 페르시아까지 세력을 넓혔고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삼았다. 하지만 1220년 사마르칸트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군에게 철저히 파괴되었다.
유라시아대륙을 장악한 몽골제국이 분열하자 1370년에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한 티무르왕조가 수립했다. 왕조의 창시자 티무르는 투르크족 문화를 몸에 익힌 무슬림이지만 원래는 몽골군인의 피를 이어받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몽골제국의 군사조직과 정치제도를 많이 따랐다. 티무르는 인도 북부부터 현재의 튀르키예에 이르는 정복지의 학자 기술자 예술가 등을 사마르칸트로 이주시키고 이슬람신학교를 세웠다. 외부로 출정하는 일이 잦았던 티무르는 사마르칸트에서 남쪽으로 약 80킬로미터 떨어진 고향 케슈를 또 하나의 수도로 삼았다. 그는 사마르칸트와 케슈 사이를 잇는 간선도로를 건설하고 외국 사절을 위한 영빈관도 만들었다. 또한 사마르칸트 근처에 아바스왕조의 수도였던 바그다드, 우마이야왕조의 수도였던 다마스쿠스, 파티마왕조의 수도였던 카이로와 같은 이름을 붙인 위성도시를 건설했다. 이는 사마르칸트를 이슬람문화권의 중심으로 삼은 세계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마르칸트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구르 에미르다. 이곳은 원래 티무르가 요절한 손자 무함마드를 위해 지은 묘였지만 후에 티무르 자신도 명나라를 공격하다가 사망하여 이 안에 묻혔다. 푸른 돔의 내벽은 일정한 종이패턴을 대고 채색하는 중앙아시아의 독자적인 기법으로 꾸며졌고 3kg의 황금으로 장식되었다. 이 외에 모스크를 비롯한 많은 건축물에도 코발트와 같은 안료가 들어간 푸른 장식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사마르칸트는 푸른도시라고 불렀다. 티무르 왕국은 15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게 일년의 길이를 측정했다. 또 1018개의 별자리를 표시한 천문표를 만들었는데 이는 유럽에도 전해졌다. 이는 당시 티무르왕조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듯 번성하던 티무르왕조는 16세기에 투르크계 우즈베크인의 침공으로 멸망했다.우즈베크인이 세운 샤이반왕조는 서쪽의 하라로 천도했고 이후 사마르칸트는 쇠퇴했다. 19세기에 접어들어 러시아제국이 중앙아시아로 세력을 확장하자 사마르칸트는 러시아령으로 편입했고 1917년 러시아혁명을 전후한 시기부터 사마르칸트 일대에서는 면화산업이 발달했다. 사마르칸트는 1925년 우즈베크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의 수도가 되었지만 5년만에 타슈켄트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사마르칸트에는 이란과 페르시아계 타지크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아르메니아인과 유대인 그리고 고려인이 소수로 유입해 왔다 1991년 우즈베크스탄의 독립이 이루어진 후 구소련에 억제된 민족주의가 부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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