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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카이도 원주민 아이누족 슬쁜 역사아들을 위한 인문학/세계사 2021. 4. 5. 04:12
일본국가가 있기전에 전국 일본에 살다가 점차 북쪽으로 밀려난 사람들이 훗카이도에 살게 되는데 이들 후손을 스스로 인간이란 뜻의 아이누라고 불리었다. 차가운 설원에서 그들만의 문화를 이루었는데 훗카이도, 사할린, 쿠릴열도로 생활권을 형성하고 일본인과 다른 외모를 갖고 있었다. 외모는 움푹패인 눈과 오똑한 코 그리고 입체적인 이목구비, 몸은 털이 풍성한 몸체이다. 남자는 구렛나루와 콧수염을 기르고 여자는 입에 조커같은 문신을 하였다. 인간은 자연, 동물과 대등하다는 세계관을 갖고 불곰을 숭배하고 주식으로 연어를 먹었고 고대일본은 에조라고 불렀다. 7세기 야마토정권시대에 아이누족을 정벌하기 위해 생긴 쇼군은 에조치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1457년에는 하코다테에서 아이누족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고샤마인 전쟁이 일어나고 100년간 투쟁을 계속했다. 전국시대의 시초인 오닌의 난이후 1646년에 일본인이 훗카이도로 진출하여 영토를 잠식하기도 했다. 일본 동북쪽에 있는 사무라이 카키자키 가문이 훗카이도의 지배권과 교역권을 승인받았다. 에도시대에는 마쓰마에로 바꾸어 16세중엽까지 교역을 독점하여 일본과의 왕래를 금지하여 일본본토와 구분을 지었다. 한편 아이누족은 가혹한 지배에 대해 저항을 하여 싸우기도 하였으나 패배하여 일본인의 노예로 전락했다. 1789년에도 가혹한 노동조건에 항의를 하고 일본상선과 상인을 습격했다가 아이누족 70명이 사형을 당하기도 했다. 메이지유신에 훗카이도는 일본영토로 편입되고 일본인 북방개척과 함께 이주정책과 동화정책을 추진하여 광산 및 철도가 개발되었다. 또한 아이누어 사용금지와 전통 및 의식을 야만적이라고 금지했다. 1900년대는 강제징병과 강제노동, 인체연구를 하고 여성은 일본인의 첩으로 혼혈아를 낳기도 하였다. 일본은 요즘 아이누족을 인정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는 러시아 사할린 북방영토에 대한 야심으로 러시아와 논쟁을 이어가기 위해서다. 지금 일본에는 1만3천만명 정도 아이누족이 살아가는데 이는 미국의 인디안족과 같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란 승리한 자의 논리로 세계는 움직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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