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세계의 3대 요리와 맛을 토대로 한 4대 요리권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4. 7. 9. 03:23

     

    중국요리, 프랑스 요리, 튀르키예 요리를 세계 3대 요리로 꼽는다. 중국 요리는 진한 제국 이후로 2천년 넘게 중화 제국의 전통 안에서 자랐으며 송나라때(10세기-13세기) 기본 형태가 정비되었다. 중국 요리는 복잡다단하지만, 크게 청나라(17세기-20세기)의 궁정요리를 이어받은 베이징 요리, 양쯔강 하류의 풍부한 쌀과 어패류를 식자재로 하는 상하이 요리, 양쯔강 상류의 내륙 분지에 형성된 쓰촨 요리, 그리고 남쪽의 풍부한 해산물을 잘 살린 광둥요리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의 요리에는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명물 요리가 있으며 폭넓고 깊은 내연을 지니고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의술과 요리를 하나로 보곤 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 자연에서 온 다양한 산물의 효능을 연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중국요리는 재료와 손질법, 조리법에 따른 분류 체계를 갖추고 있다. 튀르키예 요리는 세 대륙에 걸친 넓은 영토를 자랑한 오스만 제국 하에서 체계화된 것으로 그다지 오래된 편은 아니다. 튀르키예 요리라고 하면 양 꼬치구이인 시시 케밥이나 빵과 함께 먹는 되네르 케밥 등을 떠올리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다. 돌마 또는 사르마라고 부르는 각종 재료로 속을 채운 요리도 있고 불가리산이 유명한 요구르트도 알고 보면 튀르키예의 요우르트에서 온 말이다

     

    튀르키예 요리는 중앙아시아 그리고 지중해 요리가 합쳐진 형태로 그야말로 제국다운 요리이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있는 토프카프 궁전의 주방은 매일 6만명분의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규모와 체제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루에 식용되는 식자재가 양 200마리 닭은 600마리에 이르렀다. 튀르키예 요리는 오스만 제국의 궁정요리를 중심으로 각 지방의 요리가 조합되어 형태를 갖추어 나갔다. 프랑스 요리는 고대 로마 제국의 궁정 요리를 토대로 세련된 조리 기술과 지역의 명물 요리를 조합한 것이다. 19세기에 체계화되었기 때문에 근대 이후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의 유럽은 세계 각지의 식민지로부터 막대한 부가 흘러들어 오는 제국들의 각축장이었는데 프랑스 요리는 이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맛을 토대로 구축한 세계 4대 요리권으로 보면 첫째로 주로 돼지고기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과 기름을 사용한 요리와 특유의 보존 식품이 인상적인 중국 요리권이 있다. 다음은 커리와 기름을 이용한다는 특징이 있고 양과 닭을 주로 재료로 쓰는 인도 요리권이 있고 이란, 아랍, 튀르키예 등 다수의 요리 문화가 섞여 있어 복잡하지만 양을 주재료로 강렬한 양념을 많이 사용하는 아라비아 요리권에 빵을 주식으로 하며 햄과 소시지 같은 육류 요리가 특징인 유럽 요리권으로 4대 요리권으로 대별할 수 있다

     

    서아시아는 가장 오래된 밀 문화를 자랑하는데 예로부터 난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형태의 아주 얇은 발효 빵을 먹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식사 그 자체를 난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난은 유럽의 빵과 비교할 때 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난 사이에 음식 재료를 넣고 두 번에서 네 번 정도 접어서 손으로 먹는다 서아시아는 손으로 음식을 먹는 문화권이다. 난을 만드는 방법은 전날 밀가루를 충분히 개어 반죽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이때 이스트를 넣을 때도 있지만, 전통적으로는 넣지 않았다. 그렇게 하룻밤 재워 둔 반죽을 넓은 판 위에서 1정도의 두께가 되도록 주간지 정도의 크기로 늘린 뒤 높은 온도로 예열해 둔 가마 안쪽 벽에 재빠르게 붙여서 굽는다. 그래서 이란 속담에 난은 화덕이 뜨거울 때 붙여라라는 말이 있다. 한편 이란과 이라크, 북아프리카의 건조지대에서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대추야자 열매가 만능 식재료로 생활 속에 자리하였다. 25m 높이에 성장하는 대추야자는 재배 8년째부터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이후 거의 100년간 열매를 계속해서 맺는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8천년 정도 전부터 재배했다고 한다. 큰 나무 경우에는 270kg까지 열매가 연다. 유목민들은 대추야자를 간식이나 주식으로 먹고 씨는 낙타의 사료로도 유용하고 열매를 으깨서 먹는 시럽은 고대이후 조미료로 사용했다. 시럽을 발효하면 술이나 식초가 되었다.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빚은 술 나비즈를 마셨다.

     

    오늘날 유럽을 대표하는 기호품인 커피는 원래 이슬람 세계에서 즐기던 것이었다. 17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유럽으로 커피가 전해졌는데 때마침 유럽을 휩쓴 종교 개혁 때문에 인간의 이성을 둔하게 만드는 와인과 맥주 같은 알코올음료 대신 이성을 각성시키는 음료라며 크게 환영받았다. 커피의 원산지는 에티오피아로 동아프리카 일대로 그 종류는 60여종에 이른다. 생두가 든 커피나무의 열매는 체리처럼 붉어 커피 체리라고 부르며 현재 가장 많이 재배되는 아라비카종은 6세기 무렵부터 아라비아반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품종이다. 처음에는 커피를 곡물처럼 삶아서 콩을 먹거나 우려낸 물을 마시는 등의 방법을 썼을 것이다. 지금도 에티오피아의 유목민들은 씨앗을 갈아 만든 분말을 버터를 이용해 구슬 모양으로 만들어 굳힌 뒤 휴대용 식량으로 가지고 다닌다. 커피와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10세기 초반 이슬람 세계를 대표하는 의학자 라세스가 커피는 사지를 튼튼하게 하고 피부를 맑게 한다라고 남긴 것이다. 약용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커피를 달여 마시게 된 것은 13세기에 이슬람 사회에서 이단으로 치부하는 신비주의 경향의 수피교가 아라비아반도의 남쪽 끝 예멘에서 수행법으로 커피를 마시면서부터라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원래 분나라고 불렀는데 인도양과 홍해,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를 연결하는 교역의 십자로인 아덴항에 전해지면서 명칭이 변했다. 이곳에서는 커피나무와 콩을 번, 마시는 커피를 카와라고 구분해서 불렀는데 카와에서 커피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카와는 달여서 만드는 음료라는 의미로 수피교도가 마시는 알코올음료를 뜻했다. 당시의 카와가 발효시킨 커피콩으로 빚은 술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와인 등에 커피 분말을 넣은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알코올의 취기가 정신적 활동에 집중하며 신과의 일체화를 지향한 신비주의 수피교도에 종교적으로 유용했음을 확실하다. 그러나 코란은 술을 마시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예멘의 수도 자비드는 819년에 아랍 최초의 대학이 건설되어 전성기에는 아라비아와 아프리카에서 5천명 정도의 유학생이 몰리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커피를 알코올음료로 마시는 것은 안 될 일이었고 커피콩을 볶아서 발효를 막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13세기 무렵의 일이었다. 그런데 커피를 볶자 마치 마법처럼 그 향이 진해지면서 본연의 풍미까지 더했다. 오늘날 커피는 볶는 것이 생명이 되었다. 약하게 볶으면 산미가 강하게 볶으면 쓴맛이 진해졌다. 커피의 향은 이스람 세계를 따라 점차 북상하였다. 1551년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 세계 최초의 커피 하우스가 등장했고 카이로와 다마스쿠스같은 주요도시에 유행하게 되었다. 1560년 무렵에는 이스탄불에 약 600여개 넘는 커피하우스가 성업했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