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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양, 소, 닭고기의 특징과 종교적으로 금기시 된 가축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4. 4. 30. 03:32
인류는 주위에 사는 짐승이나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했다. 인류의 신체는 오랜 기간에 걸쳐 하루에 약 788kg의 살코기를 먹도록 적응해왔다. 그 양은 평균적으로 소비하는 소, 돼지, 양, 염소 등의 고기 총량의 4배에 달한다라고 한다. 곡물의 등장 이후에도 짐승과 물고기에 대한 의존은 변함이 없었고 고기에 대한 사람들의 갈망은 계속되었다. 목축은 농업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농경을 시작한 인류가 몇몇 동물을 사육하면서 고기와 젖을 얻을 뿐 아니라 일을 시키고 의복의 원료로도 쓰는 등 다방면으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관리가 쉬운 특정 동물의 고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농업 사회에서는 보조적으로 목축이 이루어졌지만 중위도의 건조한 초원에서는 가축의 사육에 특화된 유목민의 활동이 두드러졌다. 인류가 식용으로 이용한 주된 가축은 돼지, 양, 염소, 소, 오리, 닭, 칠면조 등이다. 현재 지구상에는 60억 마리의 닭, 13억 마리의 소, 12억 마리의 양, 7억마리의 돼지, 5억마리의 염소, 1억마리의 오리 등이 있다
사람들은 닥치는 대로 고기를 먹었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 종교적으로 특정 고기를 피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된다. 이러한 풍습은 유목민인 몽골인이 물고기와 닭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특정한 것을 피하는 기피와 종교적인 이유로 먹는 것을 피하는 금기라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육식에 관한 금기로는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돼지. 힌두교의 소,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말이 잘 알려져 있다. 힌두교는 소에 신이 깃들었다고 여겨 소고기를 피하고, 소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신성하다고 믿었다. 이에 반해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부정한 것으로 여겨 피했다. 돼지는 역병의 매개라거나 유대인이 이집트에서 돼지를 사육하는 일을 천민이 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한편 채소가 부족한 몽골고원에서는 가축의 생피가 중요한 비타민과 영양 보충의 수단이었다. 몽골인은 가축의 피를 창자에 넣고 가열해서 먹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몽골군이 먼 원정길에 가면 한 사람당 18마리의 말을 끌고 갔으며 허기가 지면 말의 혈관을 찔러 나온 피를 마시며 행군을 이어갔다고 한다
소는 1만년 전쯤 동지중해에서 가축화되었고, 양과 염소는 1.2만년 전쯤에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말은 5천년 전에 남러시아에서 돼지는 5천년전쯤에 유라시아에 널리 번식했던 멧돼지를 가축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식자재로 가장 널리 사랑받는 것은 돼지고기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미국과 아르헨티나는 소고기를, 호주와 뉴질랜드는 양고기를, 유럽전역과 중국, 멕시코는 돼지고기를 주로 먹는다. 돼지는 사료에 쓰인 에너지 중 1/3를 고기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 효율이 아주 좋은 가축이다. 양의 경우는 10%를 조금 넘고 소는 10%정도에 그친다. 그러나 젖을 활용할 수 없고 무리를 이루는 성격이 아니어서 유목 사회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중세유럽에서는 사료가 떨어지는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여 도토리를 배불리 먹인 돼지를 대량으로 햄과 소시지, 베이컨 등의 보존식을 만들었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위도 지대에 펼쳐진 동서 8천km에 달하는 대초원은 양 같은 우제류의 가축 무리를 사육하는 유목민의 생활무대였다. 소과 동물인 양은 의복이나 양피지를 만들 털과 가죽뿐 아니라 온갖 부위를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가축이었다. 음식 측면에서 양 한 마리에서 나오는 고기는 어른 두세명이 먹기에 딱 맞는 양이었다. 양은 얌전한 동물로 키우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뿐더러 식품으로도 안성맞춤이었다.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일가족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양 200마리 정도를 사육해야 한다. 유목민은 양가죽과 뼈, 위를 제외하고 모든 부분을 음식 재료로 사용했다. 특히 피는 소중한 비타민원이었다. 피는 그릇에 옮겼고 향신료와 밀가루를 섞은 뒤 양의 내장에 넣고 이것을 냄비에 삶아서 굳힌 피 순대로 만들어 즐겨 먹었다. 튀르키예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으로 이들은 대초원의 양고기를 숯불로 꼬치구이로 만든 케밥이 대표적이다. 한편 모직물 공업을 대표 산업으로 하는 유럽에서도 목양의 중심지인 영국을 중심으로 많은 양이 길러졌다. 양고기에는 나이 든 양인 머튼과 생후 1개월 정도의 새끼 양 램이 있다. 램이 식감이 부드럽고 냄새가 적으며 풍미가 좋아 고급 재료로 여겨진다
오늘날 소는 육식의 대표 주자로 여겨지지만 예전에는 농작과 제물용으로 주로 쓰이고 식자재로는 만들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활용되었다. 소고기가 식자재로 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중국인과 이슬람교도는 소고기를 질 낮은 고기로 보았다. 유럽에서도 돼지를 주로 소비하였고 소는 쟁기를 끌어야 하는 일손이었다. 비프는 다 자란 고기를 의미하고 19세기 후반까지 왕이나 귀족의 지위를 드러내는 식자재로 여겨졌다. 소고기는 돈이 많이 드는 식자재이다. 곡물을 그대로 먹으면 10명이 먹을 분량을 고기로 만들면 한명에서 두명 밖에 먹지 못할 양이 되는 것이다. 잉글랜드는 열을 가해 만든 로스트비프와 철판 위에서 구운 스테이크가 있다. 스테이크 고기로는 비교적 부드러운 등뼈 안쪽의 안심과 등심을 귀하게 여겼다. 스테이크는 불의 세기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강한 불로 고기의 표면만 굽는 레어와 육집이 거의 나오지 않는 웰던 등 4가지로 나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육하는 식용 조류는 꿩과에 속하는 닭이다. 세계 각지에서 많은 종류의 닭을 기르고 있어서 원산지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인도나 동남아시아 일대에 사는 적색야계가 원종이라고 추정한다. 닭은 원래 투계나 감상을 목적으로 가축화한 것으로 처음부터 식자재로 이용했던 건 아니었다. 고대 로마에서 닭은 군신 마르스가 기르는 신성한 새로 여겨졌다. 유럽에서는 닭을 용기의 상징으로 여겼고 특히 시간을 알려주는 수탉은 기독교에서 부활의 상징으로 쓰였다. 닭은 일년에 20개에서 40개의 알을 낳는데 그다지 많은 양은 아니다. 닭은 함부로 잡지 못하고 달걀만 식재료로 삼다가 달걀을 낳지 못하게 된 닭이 나오면 식용으로 사용했다. 닭고기는 인기 있는 식재료가 아니었다 늙은 닭은 그다지 맛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닭고기는 상하기 쉬워 보관이 용이하지 않아 냉장 기술이 발달한 19세기 이후에야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의 건강한 식자재로 널리 사용되었다. 닭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집약적으로 기르기 때문에 사육이 쉬웠다. 닭은 알에서 부화한 후 3개월 사이면 급속도로 자라 성체가 되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커지지 않는다. 그래서 영계로 출하하는데 사료로 들어가는 에너지가 고기로 바뀌는 전환율도 소나 돼지와 비교할 때 5배 정도 효율적이고 종교적인 제약도 없어 닭은 모두가 사랑하는 식용 고기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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