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피임도구로서 콘돔의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4. 7. 25. 03:08

    1916년 미국과 독일의 두 콘돔 브랜드는 유황 성분이 포함된 콘돔을 출시했다. 뉴욕의 멀 영스가 만든 트로잔과 베를린의 율리우스 프롬이 만든 프롬스 액트가 그것으로 유서 깊은 피임도구가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콘돔은 이미 수천년 전부터 사용되었지만 20세기 사람들은 피임도구를 점잖게 부르기 위해 다양한 표현을 동원했다. 프랑스에서는 프록코트나 영국군용 외투 영국에서는 프랑스 글자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콘돔이 세계사 속에 완전히 들어온 건 산업혁명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 원자재 교환이 활발히 이뤄질 때였다. 옛날에는 직물로 이후에는 동물 창자나 생선 방광으로 피임도구를 만들어 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콘돔을 사용하는 건 엘리트 계층뿐이었지만, 19세기에 가황법(생고무에 유황을 가해 탄성에 변화를 주는 처리)이 개발되며 고무로 콘돔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엄청난 혁신으로 이어졌다. 영국은 브라질과 콩고에서 원자재를 수입했으나 곧 아시아에 직접 고무 농장을 세웠다. 그러자 타이어 생산 기업인 미국의 굿이어, 우비를 전문으로 만드는 영국의 메켄토시 등 고무 산업에 종사하던 여러 기업에서도 콘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적으로 보급되기에는 가격이 턱없이 비쌌다

     

    콘돔은 효과적인 피임 도구이자 매독 전염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출산하지 않고 문란하게 성생활을 즐기는 쾌락주의자들의 물건이라는 오명을 썼다. 콘돔을 판매하거나 광고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국가가 많아졌고 곧 암시장이 발달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성병이 유행하자 콘돔을 둘러싼 모순은 극에 달했다. 성병은 심각한 문제였고 교전국은 매독의 확산을 제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금욕을 장려하고 매춘을 관리하며 군인들을 감시하는 게 전 세계 공공 보건 정책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 뉴질랜드, 호주 등은 19세기 말부터 선구적인 정책을 추구하며 군인들에게 콘돔 보급을 주저하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이 공중 보건과 낡은 윤리 사이에서 망설하는 사이 결국 매독은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양자 대전 동안 콘돔 생산량은 급증했다. 콘돔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새로운 마케팅 기법도 등장했다. 이집트 파라오가 그려진 것은 람세스 콘돔, 말을 타는 아랍 남성의 그림이 그려진 셰이크(족장)콘돔이었다 1929년에는 런던 러버 컴퍼니가 듀렉스 상표를 등록했고 1920-30년대는 화학물질을 무첨가한 라텍스를 사용하는 공정 방식이 개발되며 더 안전한 콘돔 제품이 탄생했다.. 기계화된 생산 방식으로 생산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유통망도 다양해졌다. 저렴해진 콘돔은 술집, 주유소, 이발소 같은 곳에서 유통되는 건 물론 편지 속에 담겨 은밀히 돌고 돌기도 했다. 테스트를 거친 콘돔은 약국에서 판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독일, 네덜란드, 영국, 미국에서 차례로 콘돔 자판기가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각국 정부는 성병을 막기 위해 망설임 없이 병사들에게 콘돔을 보급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저지른 실수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진짜 제대로 된 피임정책은 전쟁이 끝난 후 실시되었다. 콘돔과 자궁내 장치, 불임수술 등은 개발도상국의 가족 정책에 동원되어 확산되기도 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세계 콘돔 산업에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오카모토 주식회사 출생률 감소 정책의 보조수단으로 콘돔을 생산하고 판매했다. 동남아시아 특히 말레이시아에서 원자재를 수입한 일본은 1960년대 말 세계 콘돔 생산량의 35%를 차지했다. 1960-70년대 유럽에서는 콘돔이 경구피임약과 자궁 내 장치 같은 다른 피임 기구에 점차 자리를 내주었다. 성관계를 매기로 한 전염병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성병은 더 이상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에 에이즈가 퍼지자 콘돔이 다시금 예방책으로 떠올랐다. 에이즈 예방 단체들은 유일한 백신인 콘돔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면 시끌벅적한 행보도 서슴지 않았다. 가령 199312월 액트업 파리 지사는 콩코르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에 콘돔을 씌우기도 했다 콘돔은 성생활의 변화에 따라 변모했다. 이제는 더 편리한 사용을 위해 윤활제가 첨가되었고 색상도 다양해졌으며 두께도 얇아졌다. 오늘날 콘돔은 여성과 남성, 동성애와 이성애 구분 없이 보편화되었다. 1980년대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콘돔 브랜드는 영국의 듀렉스다. 가톨릭을 필두로 해 종교계의 금지가 계속되는 한 콘돔의 세계적 확산은 제한적일 것이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