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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시, 왕소군, 초선 및 양귀비 중국의 4대 미인에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일반상식 2024. 4. 9. 03:41

    서시는 물고기가 넋을 잃었다는 미인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저라산 기슭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시이광이다. 아버지는 나무꾼이고 어머니는 빨래를 업으로 삼았다. 저라산 아래쪽에는 두 개의 마을이 동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서쪽 마을에 살던 시이광을 서시로 부르게 되었고 서시 따라잡기를 했던 동쪽 마을의 한 처녀를 동시라고 부르게 되었다. 서시의 아름다움이 부러웠던 동시는 서시의 화장, 옷차림, 말투, 걸음걸이를 모두 따라 했다. 서시는 평소 위장이 안 좋아 통증이 올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곤 했는데 그 모습 또한 아름다워 많은 남성들이 그녀를 흠모했다고 한다. 동시도 서시의 미간 찌푸리기도 놓치지 않고 따라 했는데 그 모습이 역하고 추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고사성어가 동시효빈(시비선악의 판단없이 남을 흉내냄)과 동시빈축(눈살을 찌푸리고 얼굴을 찡그림)이다. 서시는 가무의 스파이로 오나라를 멸망시켰다는 경국지색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왕소군은 기러기도 날아가다가 넋을 읽고 떨어졌다는 미인으로 기원전 1세기경 인물로 흉노의 호한야 선우의 처로 원래는 한나라 원제의 궁녀였다. 서시와 양귀비는 국가를 멸망시킨 나쁜 이미지와 달리 평화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 숭고한 여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당시 흉노와 전한은 평화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시기 흉노의 지도자인 호한야는 한족의 궁녀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되는데 이에 전한은 적당히 후궁을 보내기로 한다. 원제는 왕소군을 보내기로 결정하는데 가기 전날에 보니 천하절색이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 초상화를 그린 모연수는 처형되었다. 미인도에서 그녀는 호복의 모피옷을 입고 비파 같은 현악기를 든 그림으로 그려진다

     

    초선은 그 미모에 달이 부끄러워 모습을 감추웠다는 폐월의 미인으로 동탁의 애첩이고 여포가 흠모해서 동탁을 죽이게 했다고 한다. 그녀는 서역 출신으로 어릴 때 노예로 낙양에 끌려왔는데 왕윤이 데려와 노래와 춤을 가르쳤고 16살이 되자 여러 재주를 지니게 되었다. 왕윤은 친딸처럼 아끼면서 연환계를 써서 동탁을 여포를 통해 죽이게 한다. 동탁은 십상시를 물리치기 위해 지방 호족을 불러모으는 하진의 실책을 틈타 정권을 잡고 헌제를 옹립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여포를 수하에 금은보화로 주면서 자신의 호위무사를 삼아 철옹성을 쌓고 있었다.

     

    중국 공식 인정 초상화

    양귀비는 꽃들도 부끄러워할 정도의 미인으로 8세기 중엽 당나라 현종의 며느리 출신 후궁이다. 4대 미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평가하고 있다. 양귀비는 가무에도 뛰어났고 눈치 빠르게 행동하는 총명함도 겸비하여 당 현종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래서 해어화라는 별명을 붙어주었고 그때 이백은 그녀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해서 당대 사람들은 그녀의 미모에 꽃이 지었다며 수화란 애칭을 썼다. 현종은 양귀비가 온천을 좋아하여 온천 궁궐인 화청궁으로 조정을 옮겼고 옷 전문인력만 700명을 두었다. 틈만 나면 현종은 양귀비와 달을 보는 놀이를 즐겼는데 이 놀이는 당나라 민간에도 널리 퍼져 오늘날 중국 중추절의 달보기 풍습이 되었다고 한다. 양귀비는 체구가 둥글고 풍만한 느낌의 미인으로 묘사되었다. 옛 벽화나 그림에서 통통하게 그려져 풍요와 부유의 상징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안사의 난의 원인이라고 하여 경국지색으로 보고 있다. 한편 마약으로 쓰이는 꽃인 양귀비는 그녀에게서 따온 이름으로 마치 마약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는 것에 양귀비에게 빠져서 나라를 피폐시킨 당 현종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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