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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원형 아치를 기초로 만든 콜로세움 건축물에 대해서아들을 위한 인문학/건축 2024. 6. 18. 03:23
로마는 기원전 146년 코린토스 전투에서 그리스에 승리하면서 그리스를 지배한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로마는 고대 그리스의 영향 아래 있었다. 로마는 그리스 문화를 존중했고 그리스의 예술 형태를 물론이고 그리스의 신화와 종교도 계승했다. 황제 네로는 기원전 66년에 그리스를 직접 방문하여 그리스의 올림피아 경기를 참가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그리스의 문화 교류를 촉진했다. 로마는 로마 왕국, 로마 공화정, 그리고 로마 제국으로 진화한다. 이후 서로마 제국과 동로마 제국으로 나뉘어 존속한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의 소수 이주 왕국으로 시작하여 고대 카르타고, 헬레니즘 제국, 켈트 등을 정복하고 결국 유럽과 지중해 연안 대부분을 손에 넣는다. 한편 로마시대에 건설된 도로 중 일부는 현재도 이탈리아와 남유럽, 동유럽 일부 국가에서 보존되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도로는 로마 군사의 발 빠른 파견과 물류 수송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교량과 수도시설이 건설되고 욕장, 극장, 경기장 등 다채로운 기능의 건축물도 만들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건축 예술적 유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건축 기술과 자재를 창조적인 디자인과 결합하여 새로운 건축 구조들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탄테온, 콜로세움, 카라칼라 대욕장이 만들어졌다. 로마건축은 힘의 표상이자 기술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로마 건축의 대표적 구조 공법으로 반원형 아치를 들 수 있다.
코벨이란 원래 건축에서 위에서 가해지는 압력을 지탱하거나 구조적인 지지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되는 돌, 나무, 쇠 등으로 만든 구조적 장식물 또는 지지체를 가리키는 용어다. 이러한 구조물은 종종 벽면의 아래 부분에서 처마나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사용한다. 코벨은 보통 프로젝트의 아치형 부분에서 벽면에서 밖으로 뻗어 나와 구조적인 지원을 제공하며 시각적인 장식적인 역할을 한다. 벽돌을 조금씩 빼내며 쌓아올리는 코벨링 기법으로 만드는 코벨 아치는 고대 이집트나 지중해 연안 등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된다. 코벨 아치 윗부분에 하중이 가해지면 서로 맞물린 부재들은 아래로 기울어져 떨어지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부재들끼리 밀어붙이며 힘이 발생한다. 이렇게 하중이 어느 정도 균등하게 전달되며 돌이나 벽돌을 서로 지탱할 수 있다. 코벨 아치에서 한 단계 나아간 것이 반원형 아치이다. 높이가 넓이가 절반이 되는 반원형 모양의 아치이다. 이처럼 근대 이전 건축사는 곧 아치 구조 시스템이나 근대 건축사는 새로운 재료인 철, 유리, 시멘트의 대량 생산과 함께 발전한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로 시작된다. 한편 로마 시대에서는 아치를 확장시키는 방식에 따라 볼트나 돔을 사용하여 대공간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아치를 일렬로 배열하면 공간이 형성되는데 배럴 볼트라고 하고 배럴 볼트를 교차하면 교차볼트, 360도로 회전시키면 돔이 된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반원형의 터널 모양으로 공간을 확장할 수 있다. 배럴은 대형 통이다. 반원형 아치를 유닛으로 활용하여 만든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 콜로세움이다
콜로세움은 로마 제국 시대에 건축된 거대한 경기장으로 자그만치 8만명 정도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콜로세움은 언덕이나 자연지형에 의존하지 않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건설된 건축물이다. 그 길이는 189m, 너비는 156m, 면적 24000㎡의 규모다. 콜로세움 외벽은 높이 48m에 달하며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다. 외벽에는 도릭 양식, 이오닉 양식,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층별로 달리 사용되어 외벽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2층과 3층의 아치에는 신화 속 등장인물의 조각상들이 세워져 그 화려함을 더했다. 콜로세움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복원사업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기원후 5세기에 일련의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손상되었고 방치되다가 20세기에 들어서는 원래 건물의 거의 2/3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닛을 기반으로 만들어낸 이 고대 대규모 공간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대형 운동 경기나 관중들이 모이는 스타디움들은 현대에도 이러한 구조를 따르는 경우가 많다. 콜로세움 내부에는 200여개의 가죽 차양이 설치되어 관중들에게 태양빛과 비를 차단할 수 있도록 했다. 콜로세움에는 약 80개의 출입구가 있어 관중들의 빠른 유입과 퇴장을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고려되었다 각 게이트 앞에는 로마 숫자로 표시된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관중들은 입장 시에 도자기 파편 형태의 입장권을 받아서 그 번호로 자리를 찾았으며 출입구와 통로를 통해 좌석으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사람들을 빠르게 대피시킬 수 있는 역할을 했다. 콜로세움은 층별로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구축되어 있다. 1층은 무거운 돌로 하중을 지탱하도록 설계되었고 그 위에는 더 가벼운 벽돌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무게를 줄였다. 이러한 구조적인 설계는 건물 전체의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적절한 무게 분포를 통해 건축물을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층별로 다른 재료와 스타일을 사용함으로써 콜로세움은 더욱 아름답고 독창적인 건축물로 완성될 수 있었다. 콜로세움 내부의 좌석 배치는 로마 사회의 계급과 신분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경기장과 가까운 하부의 좌석을 사용할 수 있다. 특히 황제와 베스타 사제들에게는 가장 전망이 좋은 북쪽과 남쪽의 자리가 할애되었으며, 바로 옆에 원로원 의원들을 위한 넓은 연단들이 배치되었다. 귀족이나 기사들은 그 위의 좌석들을 사용했다. 다시 그 위의 좌석들은 로마의 평민 중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로 나누어져 배치되었다. 오늘날의 극장과 공연장도 좌석 가격이 이와 유사하다. 경기장 자체의 크기는 모래를 덮은 나무 바닥의 경기장 아래에는 복잡한 지하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이 지하 구조물들은 노예와 검투사들이 경기 직전까지 대기하는 장소이다. 경기장 내부에는 엘리베이터와 도르래와 같은 기계 구조물을 설치하여 동물들을 빠르게 경기장 내부로 이송할 수 있게 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 경기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주로 개인으 주최하는 행사로 권력과 부를 과시하고 가문의 명예를 높이는 기회로 여겼다. 특히 동물사냥이 인기였다. 코뿔소, 타조, 호랑이, 사자 등이 주요 구경거리였다. 검투사 경기 또한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주요 경기였다. 검투사들은 주로 노예나 전쟁포로 들 중에서 선택되었다. 검투사가 훈련을 받고 승리를 거두면 영웅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또한 검투사들은 관중들에게 애국심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그런가 하면 콜레세움 초기에는 모의해전이 열렸다는 기록도 있다. 로마 황제 티루스는 경기장을 물로 채워 해전을 재현하여 경기를 했다. 물이 경기장으로 흐르게 하여 해전을 모방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은 클라우디오 수도의 한 지류에서 끌어와 물을 저장하는 시스테르나에 두고 수로로 북쪽에 있는 콜로세움에 전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콜로세움은 종종 실제 관목과 숲이 옮겨져 전시되기도 했다. 이것은 신화와 영웅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소개하는데 사용되었으며 때로는 범죄자들을 짐승들에게 던지거나 화형을 처하는 등 잔인한 행사의 배경으로도 활용되었다. 콜로세움은 놀라운 건축기술과 독창성으로 인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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