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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20세기 뛰어난 철학서인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대해아들을 위한 인문학/철학 2024. 6. 4. 02:46
존재와 시간은 마르틴 하이데거의 대표작으로 1927년에 출간되었다. 이 책은 원래 하이데거가 프라이부르크대 철학과 정교수 자격을 받기 위해 제출한 것이었는데 일거에 20세기 철학의 거장 반열에 올려놓았다. 존재와 시간은 근대 철학 이후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론을 다시금 철학의 중심으로 가져다 놓았다. 제목에서처럼 존재와 존재의 시간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하이데거는 여기서 인간 대신 현존재란 새로운 개념을 내세운다. 현존재란 지금 있는 존재로 자기 존재 방식이나 자기 주위의 사물에 관심을 가지는 존재다. 하이데거는 죽음 앞에 놓인 유한한 존재의 우리가 진정 알고 싶은 것은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의미며 따라서 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이데거는 이 책에서 그동안 철학자들이 존재 자체를 당연시 여기고 존재자를 제대로 탐구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비판하며 서양 철학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한다. 존재와 시간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철학서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대 총장까지 올랐으나 열렬한 나치당을 지지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적 환경과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 존재란 무엇인가 >
존재와 시간에 하이데거는 고대와 중세에도 분명히 존재에 의문을 품은 철학자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제대로 탐구하지는 못했다고 지적한다 모든 사람이 존재하고 있고 그래서 존재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별도의 의문을 불필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철학적 분석의 측면에서 존재의 의미는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거기에 있음을 나타내는 현존재라는 문자로 인간을 비롯해 스스로 생각하는 의식 단위를 가리켜서 이 단어를 사용했다. 한편 하이데거가 중요한 것은 인격이란 무엇인가 ? 시간과 공간으로 제한된 이 세계에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등이었다. 하이데거는 과연 외부세계가 존재하는지, 우리가 실제 알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철학이 천착하는 것은 시간 낭비로 보았다. 그는 세계-내-존재 즉 우리가 의미와 기능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의식이 자아라고 생각했지만 하이데거는 중세 기독교 신학의 영향을 받아 자아를 세상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완전히 다른 길로 나아갔다 데카르트에게 자아의 명제가 나는 생각한다라면 하이데거는 나는 관심이 있다였다. 이 말은 정서적 호감을 표현하는 통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고 연구하며 만들거나 다루고 구축한다는 의미에 가까웠고 그 대상은 사회적, 정치적 의미에서 타인들 속의 내 위치와 나 자신의 발전 또는 전개였다. 하이데거는 세계를 바라보는 세가지 방식이 있었다. 둘러봄, 다른 존재에 대한 돌봄, 자신에 대한 꿰뚫어 봄 등이다. 각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고 데카르트의 단순한 심신이원론의 차원을 넘어선다.
<세계에 내던져지다>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제자이자 조교였던 하이데거는 현상학이라는 용어를 스스로를 보여준다는 의미로 드러내다라다에서 유래했음을 밝힌다. 하이데거는 현상학은 만물이 스스로를 보여주는 방법 특히 인간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을 규명하는 학문이 되었다. 인간을 어떤 영원한 본질이나 영혼의 발현으로 보는 온갖 종류의 신학적 개념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이라는 무대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존재로 설명했다. 현존재의 본성은 지속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위치를 탐색하면서도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자기 정체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이런 본성 중 하나는 스스로를 세계에 보여주거나 드러내는 것이며 인간이라면 이 경우 말과 행위를 이용한다. 삶이란 결국 자신이 처한 환경 내에서 모든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다. 피투성은 존재와 시간에서 결정적인 개념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 가족 속에 내던져지고 인생이란 이러한 시간과 공간 영역으로의 내던져짐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나는 어떻게 이곳에 왔을까 ?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가 ? 우리는 모종의 책임감을 느끼고 다행히도 말과 행위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다. 이런 능력을 활용할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를 발견한다. 죽음 역시 한 사람이 자기를 보여주는 과정의 끝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 기분이란 무엇인가 >
하이데거는 기분과 감정에 대해 종래의 심리학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 상태로 본다. 우리의 느낌이나 기분은 실생활이나 일에 비해 무시되거나 간과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중심이다. 우리는 한 순간에도 감정을 경험하고 있거나 적어도 자신이 무언가를 대하는 방식을 느끼고 있다. 기분이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계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유발한다. 기분 때문에 우리는 중립적으로 남아 있을 수가 없다. 기분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를 늘 의식하게 만든다. 실제로 우리는 중립적인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성향이나 기분에 따라 세계를 이해한다. 독일어로 기분은 악기의 조율을 의미했다. 기분이란 우리의 존재를 주변의 세계에 조율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불협화음을 낼 수도 있고 조화를 이룰 수도 있으며 우리를 새로운 기분으로 몰아넣는 사건이나 장소, 사람과 마주칠 수도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세상에 맞춰 조율해가고 있는 셈이다
< 본래적 자아 >
하이데거가 말하는 본래성이란 우리의 실존을 인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의미다. 비본래적인 인간의 삶은 사회적 그늘에 의해 형성되지만 본래적인 개인은 적어도 시간, 공간, 공동체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자신이란 존재의 주인으로서 충분한 자유를 만끽한다. 그러나 본래성에는 언제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껏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공동체나 사회의 목소리, 하이데거가 말하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적은 없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실존의 본질적 속성은 그것이 나의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에게 보다 자연스러운 존재 양식은 자아실현이나 힘겨운 자기 성찰의 길을 걷기보다는 그냥 수많은 인간 중 하나로 살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자아실현이나 자기성찰을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온전히 자기 힘으로만 만들어진 사람 같은 건 없다. 인생을 대처하는 적절한 방법은 세상의 여론과 별개로 실재나 진리의 결론으로 이르는 길을 따라 인생에 몸을 내던지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자신이 이 세상의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점을 정확히 찾을 수 있다
< 불안과 결단성 >
하이데거에 따르면 불안의 감정은 인간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자기 집에 있지 않음의 자연스런 결과다. 그러나 불안은 본래적인 삶의 필연적 요소이기도 하다. 본래성의 본질은 우리가 이런 고립감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실로 받아들여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떤 사람이 인생과 충분히 일체감을 느끼며 완전히 집에 있는 듯 편안하다면 그것은 비본래성의 신호다. 그가 아직 우발적이고 완전히 불가사의한 실존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 존재의 수수께끼를 궁금해 하면서도 그런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어떤 경우에도 인생에서 무엇이든 해보기로 선택한다는데 있다. 하이데거의 양심은 도덕적인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자기 성찰의 길을 걸으며 독자적으로 행동하라고 일깨우는 것이다. 또 결단성이란 우리가 대중적인 습관과 의견을 가진 그들이나 사람들에 흡수당하지 않고 세계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수행해야 할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기로 분명히 결정하는 것이다
< 시간 속의 존재 >
하이데거가 볼 때 존재의 결정적인 특성은 그것이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는 것이다. 시간 속의 존재란 항상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고 있으므로 인간이란 존재의 본질은 미래 지향성이다. 우리는 과거의 산물로서 과거를 반추하지만 인간의 진정한 본질은 앞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가능성인 것이다. 하이데거는 철학이 감각이나 이성 중 어느 한가지를 통해 얻어진 자료에 기초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세상이 단지 우리 마음의 투영물일 뿐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개념도 전적으로 부정했다. 우리는 분명히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고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아무 의미도 없이 존재하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사랑하고, 나는 행동하며, 나는 영향력을 지닌다. 이것이 나란 존재의 본질이고 이런 자각을 평생에 걸쳐 명확해진다. 한편 하이데거는 사르트르를 비롯한 실존주의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본인은 인간이나 실존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관심사고 인간은 존재의 가장 발전된 표현 양식일 뿐이라고 강조하였다. 존재와 시간은 인간의 가능성과 존재라는 특권에 대한 열정으로 끓어오르는 작품이다. 실존으로 내던져진 당혹감을 극복하고 시간 속에서 강인한 자아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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