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만물은 물이다라고 말한 철학의 아버지가 된 탈레스와 물의 말속에서 의미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철학 2023. 11. 28. 03:41

    동양 철학에서는 물을 비유의 대상으로 생각했던 것에 비해 서양철학에서는 물은 탐구의 대상이었다. 서양철학에서 최초로 물을 언급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 탈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철학의 아버지라고 추켜세운 인물이다. 이는 만물은 물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주장은 고대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기원전 6세기 사회는 신화가 지배했다. 사람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가뭄과 홍수는 하늘에 있는 신이 노했기 때문이고 바다의 풍랑이 심한 것은 바다를 지배하는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가뭄이 길어지거나 홍수가 심해져도 풍랑이 거세도 역병이 창궐해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노한 신을 달래기 위해 제를 지내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런데 탈레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보고 마시는 물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말은 하늘에서 날씨를 관장하는 신도 바다에서 파도를 지배하는 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비가 오는 것도 파도가 치는 것도 단지 자연현상일 뿐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일 수 밖에 없다 탈레스의 주장을 시작으로 이성과 과학을 통해 세상의 원리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바야흐로 철학이 시작되었고 탈레스가 철학의 아버지로 추앙받은 이유가 된다. 탈레스는 물은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며 우주의 근원과 자연의 이치를 물로 설명하고자 했다. 탈레스가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이 물이라고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생명체가 물에 의지해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탈레스는 물은 스스로 움직이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물이 자연상태에서 고체, 액체, 기체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이라는 사실도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고체, 액체, 기체는 물이 변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액체는 물, 고체는 얼음, 기체는 수증기가 변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믿었다

     

    탈레스의 이 생각을 출발점으로 철학자들은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원리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연적인 존재 또는 과학적인 물질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은 공기다라는 주장을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은 물, , , 공기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했고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원자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연금술이 시작되고 다양한 원소가 발견되면서 주기율표가 만들어져 눈부신 과학 발전의 토대가 된다. 이야기꾼의 스토리텔링의 세상의 시대가 끝나고 이성과 과학으로 풀어내는 세상이 되었다 한편 탈레스가 인류 역사에 끼친 영향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명언을 남겼던 갈릴레이에 비견할 수 있다. 대부분이 천동설을 믿는 와중에 갈릴레이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그래서 인류는 새로운 역사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물이 들어간 표현은 물 건너가다. 헛물켜다 물먹다 물 좋다 등이 있다. 물이 소중한 자원임에도 물은 흔하고 하찮은 것, 쉬운 것, 헛것 등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물이 좋다와 물 오르다도 순수 긍정적인 의미로 보기는 어렵다. 물은 어디서나 흔한 것으로 보여 부정적 이미지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물이라는 글자를 어떤 단어 앞에 붙이면 정반대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물수능, 물주먹으로 만만해 보이고 맞아도 아프지 않는다는 의미다. 또한 물 건너가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물은 강을 의미한다. 강을 넘으면 다른 세계였고 마을을 구분하는 마을 동과 고을 주의 한자에는 모두 물이 들어가 있다. 물건너가다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표현은 불교에서 유래하는데 물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강인 삼도천을 의미한다. 일단 건너가면 영영 이승으로는 돌아올 수 없다고 한다 즉 물 건너가다는 말은 이 삼도천을 건너 저승으로 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에는 요단강이 있다. 삼도천은 전설 속의 강이지만 요단강은 존재하는 강으로 물 부족과 영토 분쟁이 심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발원해 사해로 흘러드는 강이기 때문에 이 강을 차지하기 위한 주변국가의 갈등은 전쟁을 불사한다. 한편 성경에 등장하는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품고 있는 의미는 약속한 축복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간다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찬송가에서 요단강 건너서 천국에서 만나리라고 그 죽음을 나타내고 있다 헛물켜다도 또한 헛고생의 의미이고 켜다는 동사로 물이나 술 따위를 단숨에 들이마시다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물을 먹다과 비슷한 의미로 보고 있다. 우리는 물이 생명의 근원이고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하지만 우리의 말과 생각 속에는 헛물켜다와 물 건너가다처럼 정반대의 의미로 자리 잡고 있다. 물은 우리 주변에서 늘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약한 사람을 보면 물로 보다라고 하고 있다. 물은 소중한 것인데도 말은 다르다

    댓글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