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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에 파문을 일으킨 공정하다는 착각의 마이클 샌델
    아들을 위한 인문학/철학 2024. 9. 12. 03:12

     

    2020년에 출간된 공정하다는 착각은 능력주의에 대한 마이클 샌델의 비판적 시각을 담아낸 책으로 그 흔한 아메리카 드림으로 대표되던 노력하면 된다는 신화에 대해 과연 그런지 의문을 제기하며 능력주의가 우리 사회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설득력 있게 펼쳐놓는다. 2019년 미국 상류층 자녀들의 명문대 부정 입학 스캔들은 능력과 기회의 평등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에 역행하는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단지 경제적 사회적 필요성 때문에 그럴리는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대해 샌델은 불공정한 사회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즉 돈이 많아서 고위직에 오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자기 능력으로 고위직에 오르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운동장은 이미 기울어져 있다. 행운을 거머쥔 승자들은 스스로의 성취까지 탐내며서 나는 노력하니 됐는데 너는 왜 못 하냐며 시작의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패자들을 노력 부족이란 이유로 손가락질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공정한 평등의 기회란 있는 것일까

     

    능력주의란 용어는 1950년대에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처음 만든 것이다. 집필 당시 영국 사회는 급변하여 오래된 계급 체계가 흔들리면서 노동자 계급이 더 많은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영은 2033년에 예상되는 미래의 관점에서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을 지적했다.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실패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영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불평등이 증가할 것으로 예견했다. 고학력과 고위직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강한 편견을 갖고 굳이 그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2034년에 포퓰리스트 반란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샌델은 2016년에 이미 트럼프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 마린 르 펜 같은 포퓰리스트의 등장으로 반란이 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샌델은 능력주의에 기초한 사회에 두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1. 완벽한 능력주의가 공정한가 2. 공정하다고 좋은 사회일까. 한편 능력주의는 환경적 요인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사고 방식은 시민적 감수성에 유해하다고 했다. 세계 각국은 이제 GDP와 공동선을 동일하게 본다. 그러나 시장 자본주의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힘을 합쳤던 전후 시대처럼 공공재를 제공하는데 실패했다. 이제는 누가 가장 많은 이득을 뽑아내는 경쟁사회에 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 정치적 판단은 시장에 내맡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며 그랬다가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 근본주의, 민족주의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문화는 초기 프로테스타트 신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프로테스탄트 교리에서는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갈지 말지가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에 달려 있어 평생 자신이 선택받은 사람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신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소명에 충실히 따르는 것뿐이었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다. 그러다 보니 지극히 성실하게 일하고도 그 결실을 누리기 원하지 않는 삶의 태도가 형성되었다. 소비의 절제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가치관은 바뀌었다.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훌륭하다는 증거였다. 경제 경쟁에서 도덕론이 더욱 고조되었다. 이는 승자를 추켜 세우고 패자를 깎아내린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근면, 노력, 긍정적 사고, 신분 상승, 부의 획득을 강조하는 미국식 번영의 복음에서도 그러한 사고 방식이 두드러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번영은 미덕의 표시라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가 글로벌 인재 시장을 조성한다면 그 막대한 이득은 소수에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삶의 시장화를 막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가 단지 부와 명성 같은 시장의 척도가 아니라 정의와 봉사를 반영하여 명예와 관직을 수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다른 방법은 우리 사회에서 대학 학위에 중점을 두지 말고 경력과 직업 및 기술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도덕과 정치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샌델은 오늘날 사회의 각계각층과 다양한 소득, 계층, 인종의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가 드물다는 사실을 개탄했다.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면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쇼핑하며 저마다의 생활방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요한 공적 문제에 대해 서로 합리적으로 토론하거나 심지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할 힘조차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모이는 건강한 시민 공동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과거의 주인의식이 있는 미국인과 달리 세계화와 금융화의 여파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사람들은 동료 시민에게 감사하다는 인식이 줄어들었고 연대의식과 공유하는 비전에 마음을 열기가 힘들어졌다. 사람들은 자신을 키워준 사회에 모든 것을 빚졌다고 느끼기보다는 내가 혼자서 해냈다고 믿게 되었다 소비자의 이기심이 시민의 자부심을 대체해 버린 것이다

     

    샌델의 논지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샌델은 스티븐 잡스 같은 사람들을 향해서도 출생의 복권에 당첨되어 탁월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출생의 우연에 기초한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없고 과거의 세습 귀족이 이제는 매우 똑똑하거나 창의적인 귀족으로 대체되었을뿐이라고 말한다. 잡스는 정말 평균 이상의 지능이나 상상력을 갖고 태어났올지라도 그가 성취한 바는 손수 만들어낸 것이다. 샌델은 환경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도전 위험과 노력, 독창성을 등한시하는 함정에 빠진 듯하다. 후자는 사람들이 태어날때부터 지닌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발한 것이고 그 시간이 쌓아질수록 성공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런 점에서 그는 충분히 성공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또한 샌델은 세계화, 개인주의, 시민 생활의 붕괴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경제적 성공보다 시민의 기여를 중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식 사회철학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인이 만든 생산물의 시장 가치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실질적 기여를 혼동했다고 비판하며 시장이 모든 가치를 결정하는 것에 반대한다 한편 이책은 우리가 단지 경제인으로 살고 싶은지 아니면 시민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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