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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의 진보는 비연속적이다라고 밝힌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 대해
    아들을 위한 인문학/철학 2023. 9. 19. 03:23

    1962년에 처음 출간된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을 나왔다. 이는 과학사뿐 아니라 철학사를 뛰어넘는다. 즉 쿤이 이책에서 제기한 하나의 세계관이 다른 세계관을 대체한다는 패러다임의 포괄적인 개념은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그동안의 과학발전은 연속적이란 개념을 단번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패러다임의 전환은 하나의 상식적 용어가 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실제로 쿤 본인도 패러다임이 과학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이해하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방식이라고 여러번 언급한다. 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다가 그의 운동법칙이 그저 어설픈 뉴턴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완전히 다른 방식임을 깨닫고 이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쿤은 과학의 진보를 개인들의 위대한 발전의 관점에서보다는 기존 데이터의 재해석을 허용 또는 불허하는 당대의 지적 풍토와 과학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보다 개방적이고 겸손한 입장을 추구했다. 그의 핵심은 과학자들이 단순히 자연의 작동방식을 설명함으로써 발전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는 패러다임 내에서 활동하는 것이고 그 패러다임 자체도 일단 현상을 설명하기에 미흡한 것으로 판명되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는 개념이었다. 한편 과학적 진보관은 기존의 관점에서는 한쪽에 사실이 있고 다른 한쪽에 그것을 발견하는 과학자가 있다. 그러나 사실이란 관찰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이 말은 과학자의 관심이 현행 과학을 구성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과학의 진보에는 새로운 사실 발견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던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각도 포함된다 그리고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뀔 때에는 세계 그 자체가 변하는 듯 보인다

     

    쿤의 획기적인 통찰 중 하나는 패러다임의 당대 대부분의 질문에 대부분의 대답을 제시할 만큼 정합성이 있으면서도 근본적으로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동설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을 만족시키며 훌륭한 우주론으로 인정받았으나 어느 순간 그 가설에 맞지 않는 이상 현상이 무시하기 힘들 만큼 많아지면서 지동설의 패러다임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확실성을 선호하는 인간의 본성상 패러다임의 혁명은 언제나 저항을 유발한다. 진정한 발견은 자연이 예측과 다르게 움직이는 이상 현상의 감지에서 시작된다. 과학자들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 사실을 기존 이론에 끼워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패러다임은 스스로 제기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점점 불안해질 때 흔들리기 시작한다. 패러다임이 위기 상태에 빠지면 그때 비로소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이나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의 이론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진다

     

    쿤의 관찰에 따르면 새로운 분야의 초기 단계에는 보통 확립된 패러다임이 없고 단지 자연의 일부 측면을 설명하려는 단계들이 서로 경쟁한다. 설령 이런 견해들이 전부 기존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고 있더라도 그중 하나만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모든 사람이 그 견해에 동의하기 떄문이 아니라 단일한 패러다임을 유지하는 쪽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정하려는 수준보다 훨씬 더 크게 인간의 심리가 작용하는 셈이다. 그래서 쿤은 과학이 그 자유 의지에 따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이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쿤은 정상과학과 우리의 세계관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과학적 사고나 연구를 구분한다. 정상과학은 과학계에서 이 세계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는 전제에 입각하는 것이다. 과학활동에서 대부분의 활동에서 대부분의 성공은 그 사회가 필요하다면 상당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그 가정을 기꺼이 옹호하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정상과학은 미리 정해진 이론적 경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이상 사실을 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고 해서 기존 패러다임을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은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가며 기존 패러다임 내에서 연구를 계속한다. 극소수의 과학자들만이 진정으로 틀에 박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연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어떤 과학계에 참여하려면 그 패러다임을 연구하는 것이 기본이고 대다수 과학자들은 그 패러다임 내에서 보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보완적 연구를 수행하는데 평생을 바친다. 반면 혁명적 과학은 정상 과학의 전통에 갇힌 활동에 전통을 파괴하는 활동을 보완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론은 단순히 새로운 사실이 아니라 우리가 그 사실을 바라보는 시각의 총체적 변화다. 이런 변화는 이론의 재구성으로 이어지고 이는 한 사람의 힘으로 하룻밤 사이에 완결되기란 거의 불가능한 본질적으로 혁명인 과정이다 한편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성적인 과정이 아니다. 서로 다른 패러다임 사이에는 일종의 관점상의 심연이 존재하므로 패러다임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은 물론이고 그 문제를 정의하는데 필요한 용어조차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 쿤은 패러다임이 서로를 판단할 공통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비교 불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각각의 패러다임이 우주의 객관적 사실에 더 가깝거나 더 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결국 패러다임의 요체는 그것을 만들고 제안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각기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쿤은 막스 플랑크의 다음 말을 인용한다 -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하게 하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둔다기보다는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떄문에 승리하게 된다 - 실제로 코페르쿠스의 주장이 지지를 얻기까지는 그가 죽고 나서 100년도 더 흘러야 했고 뉴턴의 사상이 널리 수용된 것도 그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출간된 지 50년도 넘어서였다. 패러다임에서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은 강제될 수 없는 개종 경험이다. 그럼에도 과학 사회는 마침내 지지를 얻어 새 패러다임이 옳다고 주장하는 바를 입증하는 과정에 돌입한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과학이 우리에게 경험적 관찰을 축적함으로써 세계의 실재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탄탄대로를 제시하는 것(계몽주의 관점)이 아니라 실은 인간의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주장으로 큰 충격을 던졌다. 만약 과학이 우리의 이론에 자연을 맞추려는 시도라면 우리가 먼저 다루어야 할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이해가 늘어나거나 변화하는 것을 기대한 진보의 일환으로 여기지만 쿤에 따르면 과학 자체는 아무런 목표가 없고 그저 과학적 설명과 실재를 최대한 일치시키려 노력할 뿐이다. 쿤은 과학은 마치 진화론처럼 뭔가 단순한 것에서 시작해 진화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최종 목표나 지향점이 있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쿤은 패러다임이 정립되었다는 것은 그 분야가 어느 정도 성숙해졌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적어도 그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동의할 만한 일련의 규칙이 형성되었다는 의미기 떄문이다. 패러다임은 결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단지 우리에게 세계를 바라보는 프리즘을 제공할 뿐이다. 그 진정한 가치는 패러다임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우리의 진실이 가정에 지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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