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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를 양분하는 근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던 커피와 홍차 대해서
    아들을 위한 인문학/음식 2023. 10. 31. 03:29

    스타벅스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세계역사를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스타벅스는 뉴욕, 파리, 런던, 서울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전 세계 커피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는 전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된 점포에 화려한 오픈 테라스, 효율적인 주문방식이 있다. 또한 미국적인 성공을 동경하는 젊은 비즈니스맨의 감성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거기에 글로벌리즘과 일맥상통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엘리트라면 스타벅스에서 공부하고 일한다는 새로운 신앙과도 같은 묘한 인식이 생겼다. 그 바람에 스타벅스라는 미국 자본주의가 낳은 부산물이 도시의 성지처럼 되어버렸다. 한편 우리가 커피를 마시는 것도 커피를 좋아하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서서 커피에 의해 각성한 의식이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커피가 가진 잠이 오지 않는 속성이 세계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커피맛에 눈을 떴다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고 현대인이 되는 것이다. 종세시대의 어른 음료는 와인이나 맥주같은 알코올이다. 알코올은 이성을 흐리게 하는 욕망을 자극한다. 사실 커피처럼 각성 작용이 강한 음료는 프로테스탄트를 중심으로 유럽에 보급되었다. 프로테스탄트는 카톨릭보다 훨씬 금욕적이다. 그들은 알코올을 금하는 것으로 욕망에 눈뜨지 못하도록 제어하려 했고 커피를 마심으로써 의식을 각성상태로 만들어 이성적으로 생활하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남녀의 난잡한 관계를 금하고 자신을 엄격하게 규제하기 위해서는 늘 깨어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런 냉정하고 엄격한 의식에 커피라는 음료는 제격이었다. 산업혁명기의 깨어있는 의식에 커피는 가장 잘 맞는 음료였고 따라서 근대에 이르러 감성의 음료인 중세의 와인을 대신해 이성의 음료인 커피의 시대가 도래한다

     

    수피교도(파키스탄)
    커피하우스

    커피를 마시는 습관은 이슬람권의 수피교로부터 시작되었다. 수피는 8세기경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나타났던 이슬람 신비주의 집단이었다. 커피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에티오피아에서 자생하는 커피 열매를 으깨어 동물성 지방과 함께 경단 모양으로 빚은 것을 갖고 다니며 먹었다. 그후 AD 6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아라비아 반도에 전해졌고 그것을 수피교도가 이용하면서 식용이 아닌 음용으로 변화되었다. 수피교도가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은 밤을 세워 명상하는 수행시 커피가 가진 각성효과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식욕을 억제하는 특성도 있다. 수행시 굶주림과 갈증을 극복하는 절식을 실천하는 수피교도들에게 환영되었다. 그리고 수피의 이동과 함께 16세기에는 이집트에 전해졌고 오스만 제국이 아랍지역을 병합하면서 당시 그 지배 아래에 있었던 발칸제국에도 커피가 전해졌다. 그리고 17세기에 이르러서는 커피가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었다. 커피를 마시는 공간인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는 다양한 의견교환과 정보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시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프랑스혁명도 커피하우스의 토론의 장의 제공 덕분으로 보고 있다. 지금의 보험이나 금융 같은 자본주의 세계를 지배하는 구조가 처음 생겨난 것은 사실은 커피하우스에서이다. 이것은 국가가 지시와 통제가 아닌 시민들이 자기 취향에 맞게 모여서 토론을 거듭하여 공공성이 생기고 근대사회의 초석이 된 것이다

     

    상대적으로 추운 유럽에서 커피나무 재배가 불가능하였다. 유럽의 식민지에서 커피 재배를 시작했다. 1700년에 네덜란드가 자바에서의 생산에 성공하였고 1723년 프랑스가 칼리프 해의 서인도제도에 묘목을 갖고 간 것을 계기로 남미에 대규모 커피 재배가 이루어졌다. 커피 재배는 사람 손이 많이 가고 혹독한 노동을 필요로 하는 농업이었다. 힘든 노동으로 원주민 수가 줄자 격감한 사람의 일손을 채우기 위해 이번에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와 서인도제도의 커피농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노예신분으로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의 수는 무려 1500만명이나 되었는데 이후 18세기 미국에서 살아남은 흑인 노예의 수는 300만명 정도에 불과했다. 흑인노예의 가혹한 노동으로 만들어진 유럽의 커피는 니그로의 땀이라 불렸을 정도이다 그후 커피 재배는 브라질과 아프리카로 옮겨갔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의 유럽인들이 마시는 커피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적도를 따라 이어지는 커피 벨트 지역의 사람들이 가혹한 커피재배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처럼 커피를 마시는 국가와 가혹하게 혹사 당하는 국가 사이의 빈부의 격차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차의 전파

    커피와 함께 세계를 양분하는 음료로 차를 꼽을 수 있다. 차는 전혀 다른맛과 향을 가진 중국차, 일본차, 홍차가 있는데 모두 차나무에서 만들어진다. 맛과 향의 차이는 제법에서 오는 것인데 녹차는 나무에서 딴 찻잎을 가열처리 한 것으로 발효는 하지 않는다. 우롱차나 보이차는 발효 도중 찻잎을 가열함으로써 발효를 멈춘 반발효차이다. 완전 발효한 차가 영국인이 좋아하는 홍차이다. 차는 중국 윈난성에서 인류 역사상 최초로 재배되었다. 처음에는 음용이 아닌 채소로 조리되다가 후한시대에 탕약의 전통을 갖고 있던 한인에 의해 개발되어 오늘날처럼 차로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서민까지 보급된 것은 당나라 때이고 이 시대의 견당사를 통해 일본에도 비로소 차가 전해진다. 유럽에서 처음으로 차를 마시게 된 나라는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가 처음으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차를 대량으로 구입해 본국에 보내기 시작한 것은 1610년 무렵이었는데 이때의 차는 홍차가 아닌 녹차였다. 홍차는 일설에 중국에서 영국으로 찻잎이 운반되는 도중 온도와 습도가 높은 적도를 통과할 때 찻잎이 발효되어 홍차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은 18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반발효차인 우롱차를 개량해 만든 것이 그 뿌리라고 한다. 한편 녹차보다 독특한 홍차가 발달한 이유를 서인도제도의 플랜테이션에서 설탕 대량생산이 성공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맛과 향이 강한 홍차에 단맛이 나는 설탕의 조화가 홍차를 발달시켰다고 보고 있다

     

    커피와 차 문화권
    홍차 세금전쟁

    차와 커피는 세계를 움직이는 음료인데 세부적인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음용의 차이이다. 커피 문화권에서는 뭔가 일의 피치를 올리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데 차 문화권 사람들은 한숨 돌리며 쉬고 싶을 때 차를 마시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커피 마시는 시간을 Coffee Break라고 하고 차를 마시는 시간을 Tea Time이라고 하여 단어의 차이에서 알 수 있다. 한편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도 처음에는 차 문화권에 속했다. 지금처럼 커피 문화권으로 바뀐 것은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프랑스와 벌였던 프렌치 인디언 전쟁으로 막대한 부채를 떠안게 된 영국은 미국에서의 홍차 판매 독점권을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주고 동시에 그 차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려 했다. 이 관세에 반발해 보스턴 항구에 정박 중이던 동인도회사의 배를 습격해 배 안에 있던 342개의 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린 것이다. 이 사건 후 미국은 비싼 찻잎을 영국으로부터 사들이는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일설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가 비교적 연한 것은 관세로 비싸진 홍차를 그리워한 탓이라고도 한다. 이로 인해 홍차에서 각성작용이 강한 커피로 전환한 것이 그후 미국이 세계를 재패하게 된 하나의 보이지 않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홍차는 진하고 감칠맛 나는 부드러운 분위기와 격조있는 문화와 예술을 만들어냈다 반면 커피는 활력있는 분위기와 사업적인 발전, 격적인 진보를 이룸으로써 근대 이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차와 커피는 여전히 세계음료 시장을 양분하며 그 나라의 국민이 무엇을 주로 하느냐에 따라 국민성도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금주법시대(미국 1920년)
    제 2차 세계대전

    현대로 넘어오면서 차와 커피라는 음료시장 점유율 전쟁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것이 코카콜라이다. 코카콜라는 원래 약으로 개발되었다가 차츰 음료로 팔리게 되었다. 코카콜라가 도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20년대에 미국에서 발효된 금주법에 의해 술 판매가 전면적으로 금지된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무렵부터 코카콜라는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되었다. 그후 1939년부터 시작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코카콜라는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되는 군수품으로 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어느 곳에 파병되든지 미국 병사는 코카콜라를 마시게 되었고 정부 출자로 세계 60여 곳에 Bottling 공장이 세워졌다.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원액만을 수입해 세계 각지의 버틀공장에서 시럽, 설탕, 탄산수를 한데 혼합해 완제품으로 제조한 뒤 출하했다. 이 원액의 레시피는 Formula로 불리는데 그 내용은 거의 국가기밀 수준으로 취급된다. 미국 본사로부터 원액을 수입해야 하는 닫힌 구조로 되어있다. 전시에 미국을 위한 세계 각지에 코카콜라 버틀링 공장을 세운 것도 미국의 중요한 세계전략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형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확산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근대 이후 인류의 각성에는 대단한 가속도가 붙는데 그 원천이 된 커피와 콜라가 인간이 만들어낸 비자연적인 음료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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